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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이 옥중에서도 챙긴 '청년'
보수가 젊어졌다

by 연산동 이자까야

'반공' '반중' '멸공' '백골단' '빨갱이'.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맞닥뜨린 한국 사회 청년 사이에서 '극우의 단어'가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수는 고령층, 진보는 청년층'이라는 프레임이 있었는데요. 이를 부정하듯 보수 집회에 참석하는 청년이 늘었습니다. 여태껏 고령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보수 집회가 젊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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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보수화'는 지난 19일 새벽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소속이 전해지자 서부지법 앞에서 집회를 하던 시위대 일부가 법원 경내에 침입한 것인데요. 그들은 경찰 방패를 빼앗아 유리창을 깨고, 외벽을 파손하고, 법원 내부 서버를 고장 내거나 컴퓨터에 물을 붓는 등 난동을 부렸죠. 저지하는 경찰관과 취재하는 기자를 폭행하는 과격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사태로 체포된 90명 중 46명(51%)이 20대와 30대였다는 점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남성이었죠. 앞서 윤 대통령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2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 전에는 일부 지지자가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군사 독재정권의 탄압을 상징하는 '백골단'을 조직해 국회에 등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요. 백골단은 특전사와 의무경찰 출신의 20, 30대 남성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 정국 초기 같은 연령대 여성에 비해 적극적으로 광장에 나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030 남성의 침묵을 놓고 '사회적인 조직화를 해볼 기회가 없었다' '연대할 의제나 공간이 부족했다' '군대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등의 해석이 쏟아졌는데요. 사라졌던 2030 남성은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통과와 체포·구속영장 집행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멸공봉'을 들거나 '0010(윤 대통령 수인번호) 티셔츠'를 입고, '탄핵 반대'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 피켓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한 청년이 적지 않았죠.


지금까지 보수 집회 참가자는 대부분 고령층이라는 인식이 많았습니다. 대표적 보수 단체 '태극기 부대'를 구성하던 어버이연합·박사모 등의 주요 구성원이 중·노년층이었죠. 고령화가 뚜렷했던 보수 집회에 청년이 등장하자 주목도가 고조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도 자신의 지지세가 20, 30대 남성을 중심으로 회복되는 것을 알아채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메시지를 여러 차례 던졌습니다. 체포 직전에는 "우리 청년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여기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구속된 후에는 "청년이 좌절할까 걱정"이라는 설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죠.


2030 남성의 보수화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는데요. 전문가들은 '성별 갈등'으로 불만을 품은 남성이 '극우 유튜브·커뮤니티'를 통해 결집하며 점점 보수화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 남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특권을 누렸지만, 현세대 남성은 사회가 평등해지는 과정에서 지위를 위협받으며 스스로를 가장 피해 보는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빼앗겼다'고 믿는 2030 남성의 피해의식을 여당에서 잘 건드려 보수 결집에 성공했다는 것. 예컨대 청년 세대 내 성별에 따른 갈등 기류를 감지한 여당이 지난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걸고 2030 남성을 집중 공략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워 대선에서 이긴 경험을 토대로 정치권이 계속해서 이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요즘 신남성연대 같은 유튜브 채널, 디씨인사이드·펨코 등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온통 '성별 갈라치기'에 대한 말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한번 씨를 뿌려놓으면 자기들끼리 물도 주고 거름도 뿌리면서 그 사상을 키워나가요. 보수 쪽에서 이런 사상과 흐름을 활용해서 청년을 동원하고 있는 거죠. 이런 식으로 조직화된 청년들이 동원돼 서부지법 사태와 같은 과격한 행동으로까지 이르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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