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반도체특별법'으로 정했습니다. 한국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하루 8시간씩 주 5일, 총 40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연장 근로는 일주일에 1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정해놨는데요.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사양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만든 고성능 AI를 출시하면서 큰 위기감이 닥쳤죠.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해당 분야의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논의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은 반도체 산업 종사자에게 주 52시간제 적용을 예외로 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종사자의 소득 수준, 업무 수행 방법 등을 고려해 필요성이 인정되면 당사자 간 서면 합의로 근로시간과 휴일 근로 등에 별도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죠. 하지만 산업계와 노동계 의견은 첨예하게 엇갈렸습니다.
경영계는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제품 개발과 납품이 늦어지고 있다며 예외 조항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연구직은 대체가 어려운 인력이라 사람을 더 뽑아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라는 말도 하고요. 대만의 TSMC 연구직 노동자들은 주 70시간을 일하기도 하고, 미국과 일본도 R&D 분야 노동자는 근무 시간 규제가 없다는 점을 예로 들었습니다.
반면 노동계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예외를 두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번 예외를 두면 추후 다른 산업으로 주 52시간 예외 방침이 확대 적용될 수 있다고 반발했죠. 노동시간을 늘리면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했고요. 반도체 기업 위기의 원인은 주 52시간제가 아니라고 질타했는데요. 장시간 노동이 반복되면 반도체 업계 인재들이 더 좋은 근무 조건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거나, 아예 업계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주 52시간 예외 조항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치며 법안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죠. 해가 바뀔 때까지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는데요. 딥시크의 여파로 한국의 반도체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이재명 대표는 지난 3일 관련 토론회를 열고 "논의해 볼 수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감지하고 반도체특별법을 빨리 통과시킬 것을 주문했는데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도체 산업 종사자의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을 반드시 제외해야 한다"며 "2월 국회에서 반드시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