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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기 휘날리며'

by 연산동 이자까야

어느 순간 성조기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상징'이 됐습니다. 외국인의 눈엔 매우 생경한 장면입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이어집니다. 이에 외신도 하나둘 분석을 내놨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한 보수층이 탄핵을 찬성하는 측을 종북 세력으로 간주하고, 한국 민주주의 수호에 미국의 도움을 기대한다'는 게 대체적 해석입니다. 2020년 대선에서 낙선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둘을 '동지'로 여긴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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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보도를 몇 개 보겠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 국가를 부르고, Stop the Steal(도둑질을 멈춰라)을 외쳤다'고 소개했는데요. Stop the Steal은 2020년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사용한 구호입니다. WP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성조기를 든 이유에 관해 '많은 이가 고령층이고, 한미 동맹은 이들 정체성의 핵심이다'고 했습니다.


미국 NBC뉴스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에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성조기를 흔든다. 트럼프 대통령 슬로건도 보이는데, 둘을 정치적 동지로 판단한다'고 정리했네요.


영국 가디언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미국이 한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했고, 한국전쟁에서 보호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을 민주주의 수호자로 묘사한다'고 썼습니다. '미국을 우상화한다'고도 했습니다.


싱가포르 언론 스트레이츠타임스는 '한국 극우세력에 냉전적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것'이라며 '성조기는 북한이나 다른 위협에 대응하는 상징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보도도 있네요.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의 위기를 트럼프 대통령이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취지의 글을 덧붙이기도 했죠.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을 어떻게든 조사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분명한 것은 미국 대통령에게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전복시킬 만한 힘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극명하게 다른 장면도 있습니다. 최근 성조기 휘날리는 집회 현장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는데요. 2006년 12월 21일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군 고위층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있던 시절. 전직 국방부 장관 등 군 원로들 사이에서 "아직 대한민국 국방력으로 북한에 맞서기 어렵다"며 조기 환수는 안 된다는 반발이 거셌죠.


노 전 대통령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 국민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 격정적인 연설은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 군대, 지금까지 뭐 했나 이거예요.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작통권 가져오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직무 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발언 수위는 더 높아졌습니다. "남의 나라 군대를 가지고 왜 우리 안보를 위해 인계철선으로 써야 합니까.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 그런 각오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무슨 경제적인 일이나 또 그 밖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미국이 호주머니 손 넣고 '그러면 우리 군대 뺍니다' 이렇게 나올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하고 당당하게 '그러지 마십쇼'라든지 '예, 빼십쇼'라든지 할 수 있어야 말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거리에 휘날리는 성조기, 2006년 감정의 핏대를 세운 노 전 대통령의 연설. 이 두 장면은 완전히 대치됩니다. 어느 장면이 더 바람직한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즉시 무역전쟁에 불을 붙인 데 이어 4일(현지시간)엔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할 것"이라고 선언해 중동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최강대국을 뒷배로 세계를 주무르려는 듯한 기세입니다. 우리도 위협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끊임없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합니다. 후보 시절 한국을 "현금인출기"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100억 달러(약 14조 원)라는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기도 했죠.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또다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에게도 맞설 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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