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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의 인류애

by 연산동 이자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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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피란민 판자촌 화재가 부산역으로 옮겨 붙으면서 29명이 사망합니다. 미군군수기지사령관이던 위트컴(1894~1982) 장군은 3만 명 넘는 이재민에게 식량과 천막을 나눠줬다가 “군법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된 위트컴 장군의 당당한 태도에 의원들은 오히려 기립박수. 장군은 이재민 주택단지도 건설합니다. 현재의 양정3 재개발구역 일대가 그 중 하나입니다.


위트컴 장군은 부산대를 일으킨 주역이기도 합니다. 1946년 9월 부산 서구 충무동에서 개교한 부산대는 캠퍼스가 좁아 애를 먹었습니다. 윤인구 초대 부산대 총장은 위트컴 장군에게 호소합니다. “교육에 대한 내 꿈을 사 달라.” 감동한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현재의 장전캠퍼스 땅을 확보한 것은 물론 25만 달러 상당의 건축자재 제공과 온천장~부산대 연결도로 건설까지 책임집니다. 메리놀·침례·성분도·복음·독일적십자병원 건축비 마련을 위해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모금 캠페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산에 종합병원이 많은 이유입니다. 부산의 지식인들이 위트컴 장군 기념조형물 건립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이제는 은혜를 갚아야 할 때라는 겁니다.

21764_1627289623.jpg 위트컴 장군이 부대를 예방한 이승만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국제신문DB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었죠.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산역 대화제 이재민들이 1954년 11월 세운 ‘위트컴 공덕비’의 행방을 찾는 겁니다. ‘화재민을 위하여 이곳에 학교·조산원·교회를 짓도록 후원하여 주었다. 우리들은 영원히 그 공적을 찬양하는 바이다’는 글이 적힌 공덕비는 안타깝게도 사진만 남아 있을 뿐 사라졌습니다.


피란수도였던 부산이 한 발 더 나아가 위트컴 장군의 인류애를 세계인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한다면 2030 부산세계엑스포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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