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은 시간

by 미국의 할배

평일처럼 짧은 수면을 뒤로하고 침실을 나와 내 작업방으로 향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의 고요함을 혼자 즐기며 성경을 읽고 기도를 마쳤다. 늘 하던 대로 유튜브를 켜고 이 영상 저 영상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몸 전체에 한기가 느껴졌다. 손발은 차갑게 식었고, 식은땀이 피부를 적셨다. 동시에 가슴이 서서히 조여 오는 듯한 답답함이 몰려왔고, '혹시 심장이 멈추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급히 맥박을 짚어보니,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세했다. 지난해 9월,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그 순간, 곤히 자고 있는 가족들을 깨워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참아봐야 할지 갈등이 생겼다. 언제든 심장이 멈출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번 위기를 잘 넘기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예전에 겪었던 것처럼 심정지가 찾아와, 익숙한 얼굴들과 기억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이런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솔직히 말해, '정말 기분이 더럽다'는 표현 외에는 딱히 어울릴 말이 없다. 비슷한 느낌을 경험했던 건, 뇌경색과 뇌출혈 이후 찾아온 뇌전증 때문이었는데, 발작이 오기 전의 전조증상 역시 이와 비슷한 기분이었지만, 그때는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느낌은 아니었기에 지금만큼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다행히 몇 년이 지나면서 뇌전증 증상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그 전조의 기운이나 심장의 이상 신호가 느껴질 때면, 다시금 ‘남은 시간’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겪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응급실에 가야 할지, 참아야 할지 판단은 늘 어렵다. 이번에도 잠시 갈팡질팡하다가,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런 증상을 겪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급처치는,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히터를 켠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다. 그렇게 죽은 듯이 누워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혹시 이대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면, 가족들을 깨워 얼굴을 보고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나? “사랑한다”, “그동안 고마웠다"라는 말이라도 남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갈등을 하게 된다.


이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도는 동안에도 맥박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전히 미세했지만 살아는 있었다. 얼마나 잤는지도 모를 시간이 흐른 뒤,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음을 느끼며 가족을 깨우지 않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동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심장의 박동은 조금 강해지고, 식은땀도 가셨지만 여전히 완전히 괜찮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약간만 추워도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은 여전했다. 이런 증상이 왜 오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 최근에는 하루에 1시간 걷고, 4분씩 달리는 운동을 5개월째 이어오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건강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다시 찾아오니, 그 모든 노력이 헛된 건 아닌지 허탈한 마음도 든다.


건강했던 내가 단 몇 분 만에 중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짧은 순간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죽음은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하더니, 내 심장도 마치 도둑처럼 들이닥쳐 정신을 헤집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그 여운은 길고 이전처럼 완전히 회복되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앞으로 며칠은 운동은 물론, 외출도 어렵다. 하지만 너무 오래 이 상태가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는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치와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