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행복이라 말합니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공통된 목적은 존재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과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애써 얻은 행복의 순간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잠시 머물렀다가 곧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긴 사람이 실제로 많은 돈을 벌게 되더라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곧 새로운 욕구가 생깁니다. 결국 또 다른 행복을 좇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게 되면, 일시적인 만족감은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공허함이 밀려오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목적을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말합니다. 참된 만족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중심에서 비롯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닌 더 본질적인 가치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생존’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생존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생존은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먹고, 입고, 추위와 위험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살아갑니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오늘 하루 먹을 것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과입니다. 즉 생존을 위해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리고 이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행복’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고,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마치 음식의 ‘조미료’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존이라는 본 요리를 만들어 가는 중에, 가끔씩 찾아오는 기쁨이나 사랑, 성공 같은 것들이 인생을 더 맛있게 만들어 주는 조미료인 셈입니다. 조미료가 없다면 밍밍할 수는 있지만, 음식 자체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미료인 행복을 삶의 본질로 착각하게 되면, 즉 주객이 전도되면 인생은 오히려 더 불행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음식인 생존이라는 삶을 제대로 요리하지 않고, 양념에만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삶은 때때로 쓰고, 짜고, 맵고, 예상치 못한 조미료들이 섞여 들어옵니다. 외로움, 실패, 슬픔, 고통 등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은 생존이라는 본질적 삶을 더욱 깊이 있게 해주는 재료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방향입니다. 조미료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인 생존이라는 음식에 집중한다면 의외로 행복이라는 조미료를 덤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