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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에서 느끼는 것들(고등학교 졸업식)

by 미국의 할배


지난 화요일은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 졸업식을 위해 샌디에이고에 사는 큰딸도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된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주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참석을 걱정했던 나도 힘은 들었지만 무사히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 졸업식은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세 번째로 참석한 고등학교 졸업식이자, 나에게는 마지막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미리 초대권을 받아야 했고, 입장 시에는 작은 손가방조차 허락되지 않을 만큼 철저한 보안 검사가 이루어졌다. 행사장이 약 6,500석 규모였는데, 무대를 제외한 약 5,000석이 거의 다 채워졌고 중앙에는 400명이 넘는 졸업생과 밴드, 합창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행사장 주변의 주차장도 이미 가득 찼지만, 다행히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빠져나가는 차량이 있어 어렵지 않게 주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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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식처럼 졸업생 모두가 사각모와 가운을 착용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에는 대학 진학률이 27%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 62%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로 삼는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식은 온 가족이 함께 축하하는 큰 행사로 여겨진다.


1시간이 넘게 이어진 졸업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가족과 친지들이 큰 환호로 축하를 보내는 장면이었다. 우리 가족도 아들의 이름이 불리자 모두 일어나 크게 환호하며 축하를 전했다. 졸업식이 끝나면 대부분 가족들이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없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준비해 조촐한 축하 자리를 가졌다. 다음 날은 모두 휴가를 내고 파스타와 연어 그리고 새우튀김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하루를 더 기념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참석 여부를 걱정했지만, 무사히 아들의 졸업을 함께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제는 마지막 대학 졸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세 자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시킨 지금, 한결 가벼운 마음이 든다. 물론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은 대학 생활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겠지만, 그 역시 자기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독립을 하려고 하고 자기 삶을 책임지려는 의식이 강하다. 많은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한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이라면 부모의 지원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나 역시 두 딸의 대학 생활을 경제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지만, 그들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통해 대학을 마치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직장 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이민 후 아이들에게 별다른 과외나 사교육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건강을 잃고 퇴직하면서 막막한 마음으로 선택한 이민이었지만, 돌아보면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만약 한국에 머물렀다면 과연 지금처럼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어디에서 살든 인생은 쉽지 않다. 어디에 살아야 행복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결국은 각자의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 아닐까?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우리 인생도 나름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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