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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디지털 사진 정리

by 미국의 할배

사진은 우리의 추억과 순간을 간직하게 해 주는,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다. 아주 오래된 빛바랜 사진에서부터 최근에 찍은 생생한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놓고, 가끔 그 사진을 보며 지난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필름 카메라 대신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필름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빛에 색깔이 변하지도 않아서 좋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사진이 컴퓨터나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정리를 하지 않으면 찍어놓은 사진이 중복되거나 중요하지 않은 장면도 많다. 그래서 그 아무렇게나 저장된 사진을 다 보려면 며칠이 걸릴 정도로 방대한 양이된다. 이럴 때는 오히려 사진이 추억이 아니라 ‘디지털 쓰레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집도 그랬다. 우리가 정리해야 할 사진이 대략 75GB 정도 쌓여 있었다. 특히 심장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컨디션이 좋을 때마다, 그동안 필름으로 찍어 인화해 두었던 모든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다시 찍어 보관했기 때문에 디지털 사진이 늘어났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나간 과거를 정리해서 자녀들에게 남겨주려는 생각에서였다, 힘은 들었지만 이제는 그 많은 앨범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USB나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으니 참 편리하다. 다만, 오래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추억을 떠올리던 그 낭만이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디지털 사진을 정리하면서, 너무 많은 양을 다 보기 어려워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에 시대별로 몇 장씩 선별하여 슬라이드 쇼로 만들었다. 그렇게 정리한 분량이 334페이지였고, 한 페이지에 평균 7장 정도가 들어 있으니 대략 2,300장 정도가 된다. 슬라이드 쇼로 이 간단하게 정리된 사진을 보는데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오늘은 예비 사위가 시간이 있다고 해서, 이 사진들을 함께 보며 우리 가족의 지난 세월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사진의 시작은 내가 할머니 무릎에 앉아 찍은 첫돌 사진부터였다. 이 사진은 60년도 넘은 흑백 사진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디지털 사진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흑백으로 누렇게 색이 변해 있다. 그리고 나와 아내가 결혼하기 전까지의 사진과 결혼 후 체코로 떠난 신혼여행 사진, 독일 유학 시절의 사진과 귀국 후의 사진을 1편으로, 그리고 미국 이민 후의 생활과 일상을 2편으로 수동으로 넘기면서 함께 보는 데만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예비 사위에게 이렇게 가족의 사진을 보여준 이유는, 곧 딸과 결혼하게 될 그가 우리 가족, 특히 딸이 자라온 과정과 환경을 보며 우리 가족과 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부부로 살아가다 보면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각자의 가족 분위기를 잘 몰라 생기는 갈등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진을 통해 우리 가족의 정서와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물론 사진이 아니라 비디오테이프나 동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생생했겠지만,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는 재생할 기기도 없고, 동영상은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정리한 사진으로 대신한 것이다.

나는 이미 정리 과정에서 여러 번 본 사진들이었지만, 예비 사위와 함께 다시 보니 지나온 세월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주 어렸던 딸이 어느새 자라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세월의 빠름을 느끼게 했다. 또 젊은 시절의 나와 아내의 모습, 그리고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 해진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그 사이 흘러간 시간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처럼 사진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사진 한 장이 과거로 우리를 데려가 추억에 잠기게 하는 그 묘한 힘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해진다. 기억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시기가 되면, 사진은 그 어느 것보다 귀중한 기억의 창이 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많고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는 날이 오면,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된 사진이 아니라 모든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잊혀 가는 기억을 다시금 회상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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