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같지만, 그 시간을 체감하는 속도는 순간마다 다르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은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얼마 전 「2024년을 보내며」를 쓴 것 같은데, 어느덧 다시 「2025년을 보내며」를 쓰고 있다. 예전에는 보통 그해의 마지막 날에 이 글을 썼지만, 블로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해부터는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고려해 이곳 미국 날짜로 12월 30일에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창밖에서 연말을 알리는 폭죽 소리도 들리지 않아 한 해의 끝자락이라는 느낌은 약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분명 또 한 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 역시 세계 곳곳에서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특히 우리 가족에게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올해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자연재해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지진이 잦았던 해로 기억된다. 미얀마, 일본 아오모리현 인근, 필리핀, 캄차카반도, 타이완 등지에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비교적 낮은 규모인 6.0의 지진에도 불구하고 천 명이 넘는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손실이 발생했고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지진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섭씨 46.6도를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고, 중동 지역에서도 40도를 웃도는 고온이 지속되었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단 4시간 만에 3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최소 78명이 사망했고, 한국에서도 ‘백 년 만의 폭우’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비가 내려 곳곳에 피해가 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워싱턴주 역시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폭우로 주택들이 침수되고 도로가 유실되어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립되거나 대피해야 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300년 만의 폭우로 수천 명의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손실이 발생했고,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대형 산불로 광대한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홍콩에서는 아파트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도 있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갈등 역시 전 세계 곳곳에서 비극을 낳았다. 이란에서는 핵 협상이 진행되던 날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40여 명이 사망하고 천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도에서는 보잉 737 맥스 8 기종이 의과대학 기숙사로 추락해 탑승객 242명 중 241명이 숨지고, 기숙사에 있던 학생 33명도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중동에서는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극에 달해 미국이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의 핵시설 두 곳을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공습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올해도 계속되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북한은 인력과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하면서 사실상 참전국이 되었다. 예멘과 가자 지구, 그 주변 지역에서는 전쟁과 휴전이 반복되었고, 국경 문제로 촉발된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지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반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면서 일시적인 휴전이 성사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도 변화가 많았던 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파면되고 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국회의원 판공비 문제로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네팔에서는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친중 성향 정권이 붕괴되었다. 미국에서는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서 청년 보수 인사 찰스 커크가 연설 도중 암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국가 주석과 군부 간의 갈등설이 제기되며 시진핑 국가 주석의 권력 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내각제 시행 이후 최초로 여성이 총리가 되었고 새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으로 중국과 극도의 긴장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로 선종하셨고, 그 후임으로 미국 출신의 프리 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는 역사적인 변화도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무역전쟁의 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 사이에 관세 인상과 협상이 반복되었다. 한국은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 달러의 직접투자를 포함해 총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이는 원화 약세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해 한때 환율이 달러당 1,483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수출은 사상 최초로 7,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6위에 올랐지만, 물가 상승으로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는 이야기가 연일 유튜브와 언론을 장식했다.
이처럼 세계는 자연재해와 전쟁,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한 한 해였고, 우리 가정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어진 한 해였다. 시카고에 살던 둘째 딸의 남자친구가 결혼을 전제로 2월에 우리 집에 합류했고, 10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서 웨딩 촬영을 했던 큰딸 역시 12월에 혼인 신고를 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졸업 후 기념으로 필리핀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 뒤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 관련 학업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심장병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했던 나는 장애인 은퇴가 인정되어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연금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내 이름으로 되어 있던 큰딸의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받는 감사한 일도 있었다. 아마도 은퇴 연금만으로는 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 모양이다. 금년에 있었던 이 모든 과정과 일들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은혜라 믿으며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동안 심장병으로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던 내가 하나님의 치유하심으로 이제는 지붕을 고치고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2025년은 분명 쉽지 않은 해였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들에 경고를 보냈고, 세계는 갈등과 불안을 멈추지 않았으며, 개인의 삶 또한 크고 작은 결단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세계의 역사는 이어졌고, 감사하게도 나와 우리 가족의 삶 또한 계속되었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2025년을 보낸다. 다가오는 새해가 완전히 평온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금년보다 조금이라도 적은 자연재해와 전쟁, 그리고 조금 더 넉넉한 경제사정과 개인이 평화가 이어지기를 희망하면서 2026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