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전히 추웠던 토요일 저녁, 예전 직장의 동료였던 "말"형을 만났다.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여 내가 "말사랑"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고, "말"은 이니셜인거다. 한 해 전쯤 만났을 때, 회사의 일거리가 상당히 줄어들었음을 알려주었는데, 이번에는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표현을 썼다. 불과 일 년 사이 바뀌어진 상황의 전달에 크게 놀랐다.
그 회사를 퇴사한 다다음 해 쯤, 거래처의 사장님이 연락을 해 왔다. 대금 지불이 안 되어 이래 저래 전화 한 번 해 봤다는 것이다. 이미 회사를 떠난지 오래된 상황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뭐가 있었겠냐마는, 자금 담당 과장과 꾸준히 통화를 해 보는게 좋겠다며 통화를 맺었었다. 그 이후, 상황이 나아졌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비교적 적은 금액의 결제도 하지를 못해 원자재를 수급해 오지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통상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 큰 덩어리의 금액 지불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소액 결제까지 막혔다는건 굉장한 위험신호인 셈이다. 오너격에 해당하는 이가 두 분 계셨는데, 아주 비싸 흔히 볼 수 없는 차들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탔었다. 물론 법인의 소유였다. 듣자하니 그 차들도 반납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있었을 때만 해도 잘 나가던 회사였다. 내가 관여한 마지막 프로젝트도 비교적 순탄히 준비되고 있었다. 그 즈음, 공장 이외 사무소를 따로 내, 생산팀 이외에는 깔끔하게 돈치레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본업 이외의 투자에도 주저없이 뛰어들어, 경매물의 공장을 낙찰받아 오기도 했다. 그 이후 시세가 많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탄하였던 큰 금액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대금 회수가 제법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큰 금액이자 다년간의 프로젝트이기도 한 공사의 특성상 직원들의 성실한 협조가 단계별 수금과 공사비 증액-증빙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다수 직원들의 태도는 퇴근만 바라는 태엽로봇 같았다. 늘 그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무실 별도 이전을 직접 진행하면서, 그 건물을 매입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랬었다. 나는 단순 임차인 줄로 생각했었다. 내가 인테리어로 집행했던 돈만도, 2억이 넘었는데, 그걸 사는데는 얼마나 큰 금액이 들었을까? 내가 아는 한, 은행의 대출을 받아 매입을 했을 것이다. 또한, 상당한 액수를 이자를 은행에 지불해야 했을테다. 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면, 늘 항공기를 이용했고, 충분히 이용이 가능했던 열차나 버스, 자차 등의 다른 옵션 등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거의 해마다 아시아권으로 워크샵이라는 타이틀로 해외여행도 갔었다. 타사 손님들의 방문이 빈번하다는 이유로 음료와 스낵은 넘쳐났고 버려지는 것도 태반이었다. 법인카드로 회식을 하는데도 별 제한이 없었다.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원자재를 구입하는데에 특히 오류가 많았었다. 수 천 만원의 자재들이 한 번의 쓰임도 받지 못하고 방치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안타깝게도 실수를 일으킨 장본인은 일말의 양심에 대한 가책도 없다. 관리자의 질책도 없고, 사후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한 두번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회사의 살과 피가 되는 돈은 그렇게 줄줄 새 나갔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계약에도 없는 헤택을 고객사에 주는 매국노 직원들이 있었으니, 이건 어찌 해야 할까?
그 문제들에 맞섰던 나는 늘 아웃사이더였다. 세상의 흐름은 늘 악인의 이치에 더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 [사필귀정]은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라 하는게 맞다. 내가 그런 부조리에 맞서서 일련의 이익을 지켜내기는 했겠으나, 회사가 영속하는 자원을 대지는 못했다. 내가 오너도 아니었으며, 내 직무의 범위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회사가 잘 되는 것은, 오너-최고 리더의 역량에 더해 운-Luck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운이 거의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80~90년대 우리 경제가 호황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역할을 우리가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뭘 잘 한게 아니다.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그 시대에 그들이 받았던 배움과 영향을 펼칠 적당한 세계가 도래했기 때문에 성공이란걸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회사가 잘 안 되는 때도 있다. 그 역시 운이라는 요소가 작용하게 마련이다. 그 업종이 그런 경우도 있겠으나, 전 세계적인 불황이 오는 수도 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이나, 적어도 그것을 대비하는 것은 관리의 영역이다. 충분히 그런 어려움이 있으리란 예측을 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적절히 지출을 관리하고, 원가 관리를 하고, 나 몰라식의 태도가 조직의 우위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항상 점검하는 자세가 리더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 때 리더는 필히 오너급이어야 한다. 중간 관리자가 제 아무리 용을 쓴다 하더라도 오너의 권위와 지속성이라는 파워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래야, 생존이 가능하다. 생존을 하여 다음 행운이 더할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던 그 조직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니 맘이 편치 않다. 옮겨진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인원도 다시 예전 공장으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그 사무실은 임대를 내 놓았다고는 하는데, 찾는 이는 없다고도 한다. [흥망성쇠]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어느 겨울의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