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 절교

by 언노운

가을의 초입, 기분좋게 절교를 해 버렸다. 카톡을 차단하고, 그래도 전화가 자꾸 오길래 전화까지 차단해 버렸다. 뭐, 그럭저럭 관계를 연명해 가며 아는 사람과 친구 사이의 무언가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맘은 좀더 확실한 손절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녀석은 예전에 나에게 무언가 영감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배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배움보단 감정, 돈, 시간에 있어서 소모만 이어져 버린 관계가 되어 버렸다.


"한 번 보자!".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 안에서 자연스레 오고 가는 말이다. 보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쓰고,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소비하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이 친구와 한 번 보자며 약속을 잡은 이후, 보통 얼마가 지나지 않아 벌써 무언가 기울어진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미루자거나 당기잖다. 자기 편의적이다. 시간을 보내자고 온 놈이, 자기 딸 학원 때문에 일찍 가 봐야 한단다. 딸은 중3으로 장성하여 충분히 그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술 한 잔 하자고 보자더니,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술을 못 마시겠단다. 내가 청하기 보단 본인이 청한 약속인데 말이다. 어느 날은 뜬금없이 보자더니, 사업제안서를 파워포인트로 작성해 달란다. 또 어떤 때는, 일본에 견적 받을 것이 있다고 하여 내 돈과 시간과 노력을 써서 결과를 줬더니, 진작에 알고 있었단다. 나에게 무언가를 물을 때는 내가 웬만한 정보를 주기까지 내 전화에 불이 나게 하지만, 반대의 경우 얄짤없다. 성질까지 내며 거부한다.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었단 생각을 했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대략 알 것은 같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가만히 두면 퇴보한다. 쉼없이 단련하고 점검해야 한다. 청년과 중년, 그리고 노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근력은 떨어지고 불필요한 지방은 쌓여 간다. 배는 나오고, 엉덩이는 쳐지고, 팔다리는 가늘어진다. 운동이라는 고된 과정을 수행하는건 고도의 의지를 요한다. 그래서 작심삼일이 이어진다. 마음도 그러하다. 가만히 두면 꼰대니 개저씨니 하는 그런 심적 괴물이 되어 버린다. 심적 근육을 키우는 일련의 행위들을 소홀히 하면 막무가내 인간이 되어버리고야 마는거다.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최고이고, 말이 많아지다 못해 거짓말까지 섞여 버리고, 배려 없는 질문들을 명령처럼 쏟아낸다. 그렇게 있는 환경이 오래되고 굳어지면 그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동시에 그 세상에 지배당한다.


독서, 명상, 글쓰기, 여러 루트를 통한 지식 습득, 양질의 인간 관계를 통한 객관적 자아 파악은 그 막무가내 인간화를 막는 일련의 치료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나는 중요하지 않다. 남에게 보여지는 객관적인 내가 중요하다. 내가 내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없듯이, 나의 진정한 모습 역시 나로서는 보기가 어렵다. 나에게만 주어지는 너그러움이라는 필터가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모습으로서의 나를 더 가치있게 하려면, 깊은 성찰을 해야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여러 교류를 통해 나 자신을 늘 돌아보아야 한다. 이것은 몸을 단련하는 것 보다 한층 더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노력을 하여 얻은 결과물도 쉽게 보여지지 않으니 더 어렵기 마련이다.


내가 손절한 그도 그런 과정을 밟아 왔을 것이다. 특히나, 사업을 차린 이후, 거의 내내 일인 오너로 지내 왔으니 그 상황은 더 빠르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눈치볼 직원도 동료도 없으니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생성되는 견제와 타협의 기능이 그의 사회에서는 작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의 사업 과정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도 기세등등하게 자랑을 했으니 말이다. 그 기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꺽였고, 지인에게 투자겸 돈을 빌려주었는데 모두 떼였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던게 그 직후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겨우 겨우 사업을 지속하는 듯 보였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이 손절의 사건을 통하여도 배울 점이 있다. 내가 알던 상대가 그 상태 그대로 있는게 아니라 늘 악화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인간으로 변한다면야, 그거야 환영할 일이겠으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세간살이를 정리하고 버리며 새 것으로 교체하듯 인간 관계에도 그게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절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심적 괴물로 비춰지는 것은 생각하기 끔찍하다. 오늘 쓴 이 글을 교훈삼아 내 마음의 근육들이 퇴보하지 않도록 잘 돌보고 단련시켜야겠단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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