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던 중

by 언노운

몇 년 전쯤부터 개인 운동 프로그램에 조깅을 끼워 넣었다. 처음에는 3키로 정도의 거리도 엄청나게 힘들었던 것이 차차 익숙해지더니 5키로, 7키로 거리를 늘려도 소화해낼 만했다. 또한, 다른 근력 운동과 혼합하여 코스를 짜 봤더니 힘은 더 들었지만, 나름 재미적 요소가 가미되어 훨씬 큰 성취감도 맛볼 수 있었다. 조깅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서서 1키로씩 줄어드는 몸무게를 보면 보상이 됨과 동시에 다음을 기약하는 기폭제도 되었다.

그렇게 주 1회 정도를 수 년 간 달리다 보니, 달라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조깅하는 여성들이 늘었났다는거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하는 것은 행복을 챙기는 과정임이 분명하다. 그것에 남녀 차이가 있을 수는 없을텐데, 그간 운동이며 여가 활동의 영역에서 여성의 모습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조깅을 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늘어가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95학번으로 대학 생활을 할 당시, 그렇게 보수성이 있는 사회였음은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말 못하게 꽉 막힌 사회였었다. 더군다나 그 지역은 대구이기까지 했다. 어느 날 대자보를 보니, 여학생이 담배를 핀다고 연장자+알지 못하는 남학생이 여학생의 뺨을 때렸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소문으로 들은 것을 기억해 보자면, 그 남학생은 사과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폭행죄에 더해 여성이라는 약자에 대한 차별에 관한 처벌까지 받아야할 터이다. 여성도 대자보를 붙일 것이 아니라 경찰서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여학생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20년도 더 지난 지금이라고 하여 확연히 나아졌는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쉽게 나온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니, 대략 1,985년쯤 될 것 같다. 친구의 엄마는 포니1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녔었다.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여성 운전자였다.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는 거의 유일한 여성 운전자였지 싶다. 여성운전자인 이유만으로, 동물원 원숭이 정도의 따가운 호기심 세례를 받고 다녀야 했다. "여자가 어떻게 운전을 하지??" 라며 말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노예 제도도 모자라 흑인을 동물원에 가둬 놓기도 했었으니, 인류의 만행은 그래도 개선된다고 해야 할까?

1,999년이었지 싶다. 내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간 때가. 중국 상하이를 경유해 첫 도착한 유럽의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10시간 가량을 날아와 입국 수속 후, 공항 밖에서 잠시 대기 하던 중 마주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맞담배를 피며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어디론가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엄마 담배+아빠 담배)÷유모차의 아기x여유 = ??

그게 맞는 것인데, 지극히 가능한 행위인데,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20년이 훨씬 넘게 지난 지금 한국에서 그게 가능할까? 행위의 가능성 여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행위를 타인들이 받아들여줄는지의 여부 말이다. 안 된다.

여성의 권리 신장이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휠씬 뒤에 꽁꽁 숨겨져 있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약자들의 권리 바로 앞단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눈에 보이는 인간으로서의 여성 권리가 존중받지 못함은, 그 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빈곤층의 그것에는 다다르지도 못함을 나타낸다. 그런 상징성을 배경으로 하고서는, 나는 여성들이 아무런 눈총도 받지 않고 더 떳떳이 흡연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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