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사는 사람

by 언노운

예전 회사 후배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 한 번 보는게 응당의 예의인데, 만나니 너무 반가웠는지 적정량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까지 음주를 해버렸다. 아내의 관찰에 의하면, 말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밤 9시쯤 헤어졌는데, 하품과 하품+눈물을 선보이는 후배 아내의 피곤을 배려한 내 아내의 진두지휘에 의해 부드럽게 이사 환영 파티를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한 달 여행을 다녀온터라, 짐바브웨에서 구한 100조 달러 지폐를 기념품으로 건넸다. 자연스레 아프리카의 이모저모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사는 사람]으로 이야기 되어지고 있었다. 술자리의 감상들을 걷어내고 다음 날 생각해보니 그게 꽤나 많은 이들의 시선임을 깨달았다. 흘러가는 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주요한 배경에는 삼 년째 이어진 장기간의 해외 여행이 있었다. 그전에도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다니긴 했어도 10일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23년 한 달간의 발리, 24년 한 달간의 스리랑카, 25년 한 달간의 아프리카 여행이 그러했다. 발리에서는 절반은 혼자 나머지 절반은 아내와 함께 했고, 스리랑카와 아프리카는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그것을 기꺼이 허락해 주는 아내의 너그러움, 또 계획과 용기를 내어 가는 실천력, 또 다른 하고 싶은 항목들을 읊어내는 무모함. 이런 것들이 나를 그런 모양새로 모는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또한 5년 넘게 이어온 미술 활동도 추가할 배경이 될 것 같다. 조금 배우다 말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인데, 여태껏 하고 있다고 하니 끈기가 있다거나 결과물에 관심이 있다거나 하는게 아닌, 하고 싶은걸 다 하며 사는 사람이구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


또 무엇이 있을까? 내가 그들에게 직접 어떤 배경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으니 상세히 알 길은 없으나 어렴풋이 추측은 해 본다. 30대 중반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온 것도 추가 요인일테다. 그러한 도전들에는 나의 노력도 투입이 되었겠으나, 아내의 지원과 이해가 한 몫했음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버스 운전으로 전직을 준비하고 있음을 말하며, 예전부터 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라고 말하였는데 적잖이 놀라는걸로 봐서는 이 또한 추가 요인이라면 요인일테다. 어쨌든 이러한 것들을 다 아울러, 나를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사는 사람]으로 통합-이해를 해 버린 모양이다.


사실 하고 싶은걸 다 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 입에 담아 내기는 쉽겠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이뤄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다 안다. 하고 싶은걸 다 하려면 제일 먼저, 바로 나 자신이 하고 싶은걸 알아야 하는데, 그걸 알아내는 것 부터가 큰 숙제이다. 이 순간 떠 오르는 이가 있다.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진짜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옛 직장 나의 후임 K군이다. 본인의 인생이 정처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은 두려움에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였는데, K뿐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걸 잘 알지 못한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걸 찾는게 여전히 큰 과제라고 여겨진다. 인생은 다른 사람들을 쫓는 듯 하지만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인 것 같다. 여러 노력과 과정을 거쳐 내가 하고 싶은걸 알아냈다면 이제 시도하는 것인데, 그것 역시 쉬운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두려움과 염려가 앞서기는 하겠으나 해 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 피아노를 배워 캐논변주곡을 연주해 보고 싶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 왜 오로라를 보면서 그들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이유를 내가 가서 좀 챙겨 경험해 보고 싶다. 남극으로 가는 크루즈에서 그녀와 재미나게 졸릴 때 까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시간이 문제될지, 돈이 문제될지, 노력이 문제될지 모르겠으나, 맘 속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다. 비상금은 없지만 웬지 비상금이 있는 것 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희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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