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낯이 익은 할아버지 부부가 도서관엘 들어오셨다. 보니 안면이 있는 우리 아파트 주민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몸이 매우 불편해진 기색이었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할머니는 병원엘 가야 한다며 떠나셨고, 할아버지는 굽은 등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신문을 읽으셨다. 할아버지도 내 얼굴 정도는 기억을 할 것이다.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며, 도서관이며 가끔 얼굴을 마주쳤으니 말이다. 내 기억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또 한 가지는, 할아버지가 처음 우리 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에 피트니스 센터를 처음으로 안내해 준 사람이 바로 나였단 것이다.
어쩌다 할아버지는 급작스레 몸이 불편해진 것일까? 혼자 맘 속으로 궁금함을 가져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열심히 런닝머신 위를 걷고 있었는데 말이다. 몸이 매우 불편해 보였지만, 도서관까지 나온 걸 보면 최악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해 부터였을까? 내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노년의 삶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일반적 노인 문제, 노환, 노인 고독사, 신체의 노화, 노인의 운동 및 인지 능력, 실버타운, 죽음까지... 그러던 와중 안면이 있는 같은 동네 할아버지의 병세를 보자니 서글픔이 더해진 것 같다. 그 서글픔의 중심에는, “나도 좀더 있으면, 더 늙게 된다면, 저렇게 되겠지?”라는 걱정이 있기도 한 것이다.
대학 시절, 멋 모르던 그 때, 친구들과 치킨집에서 맥주 한 잔 하는 중에 치킨집 사장님께 제법 이상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이들어 힘들다는 말을 쉽게 쉽게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실제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좀 쉽게 설명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일단 체력이 약해지고, 무언가를 할 용기도 쉽게 나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다. 사장님의 설명은 쉬웠으나,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다. 허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의미는 상당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체력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에 함부로 다 쓸 수가 없고, 또 그 최대치도 여러 조건에 따라 현저히 몹쓸 정도로 내려가곤 한다. 나라는 사람을 보자니, 용기가 많이 사라진 것 같지는 않으나, 주변의 사람들을 보자면 그게 맞는 현실인 것 같다.
어느 날, 차를 운전하고 있던 중, 신호로 잠시 정차를 하며 옆을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운전석에 타려고 하는 중이었다. 시간이 꽤 지나 왜 이리 신호가 기냐며 속으로 투덜대다 옆을 보니 아직 그 할아버지는 운전석에 앉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도??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난 운동을 하다 무릎을 다쳤고, 내가 그 상황에 봉착했다. 운전석에 앉는 것이 새삼 어려운 동작 중의 하나가 된 것이었다. 언제 내가 다칠지 알 수 없고, 언제 기력이 쇠하여 그런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는데, 경솔한 생각을 잠시라도 가진 것이 후회스러웠다. 키오스크로 이루어지는 카페와 식당의 주문, 스마트폰으로 대거 옮겨온 은행의 업무, 스마트폰 앱으로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택시 호출... 노인을 위한 기술 개발은 늘 인색하다. 나조차도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던 중 쿠폰 적용을 하지 않아 손해를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노안이었다. 글씨가 너무 작아,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노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회를 그나마 잘 대처하며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작년 나와 블로그 이웃이 된 업글할매라는 분이 계신다. 70이 넘은 할머니이신 것 같은데, 본인의 우울증 치료를 애플 제품으로 했다고 할 만큼 디지털기기와 열애를 나누고 계신 이이다. 며느리에게도 최신 아이맥을 사주며, 디지털 문화 전도사가 되어 활발하게 여러 디지털 공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의외로 20~30대 젊은 층과 업무를 할 당시, 스마트폰 활용을 주저하며 어려워하는 걸 종종 목격하게 되었다. 실상 따져보면, 노년에 필히 오게 되는 노안과 급격한 문물의 변화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일 뿐이라고 한다면 문제를 너무 간단화한 것일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변화라면, 스마트폰이건, AI 건 즐거운 마음으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할테다.
영국의 어느 연구에 의하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큰 관점으로 보았을 때, 노인들의 건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서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용을 좀더 보자면, 운동량이 그렇잖아도 부족한 노인들이 버스에서조차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은 다시 한 번 운동량을 줄여 버리게 되는 것이라는 배경 설명이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운동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것이다. 노인의 삶에 많은 관심이 있는 나는 주위의 노인 분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운동을 하는지 주의깊게 보는 편이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대다수의 노인 분들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는 런닝머신-유산소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근육 운동도 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덤벨 혹은 장비를 다루는 방법에 생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그걸 통해 부상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될 정도이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정식으로 운동을 배워보심이 어떨까 한다. 노년에 특히 중요하다고 하는 근육량을 지켜내려면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헬스장에서 운동을 배우는 것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가진 적이 있었으나, 실제로 배워보니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이자 기술인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주위에 꼭 웨이트 트레이닝을 정식으로 배우라고 권한다.
어쩌다 잘하게 된 신체 관리와 행운으로 비교적 큰 병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던가? 건강에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들이는 부유한 개인들도 이런 저런 병명으로 유명을 달리 하는걸 쉽사리 접하지 않았던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길 일이다. 겸허히 하루 하루 몸이 녹슬지 않도록 움직여 주고, 적절한 부담이 되는 수준의 강도로 다양한 활동을 병행한다. 몸 뿐 아니라, 마음이 퇴화하지 않도록, 내 맘 속을 깊이 들여다 보고 반성하고 무엇을 마음에 담아야 할지 늘 고민해야겠다. 이웃의 할아버지를 보고 많은 생각을 갖게 된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