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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샤삭 Nov 10. 2023

온 가족 ADHD입니다

-00-더 이상 찢어 버리지 않는 용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표현한다.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것에 대한 느낌, 감정, 그리고 여러 가지의 욕구들에 대해 표현하고 설명하고 표출한다. 그렇게 상대에게 나를 전하고 소통하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보통 그 표현방식으로 그림을 그려내는데 나는 그림 대신 글이었다. 문자를 배우면서부터 나는 언제나 글을 썼다.


나의 모든 시작은 언제까지고 ~ing. 나는 "한 가지를 꾸준히 끝까지"가 불가능한 ADHD이다.


내가 가진 모든 노트의 앞 6~8장은 글이 써져 있었다. 가족들은 내 노트들은 언제나 "사용 진행 중"이라고 놀렸다. 노트를 이것저것 쓰듯 재료도 이것저것 바꿔가며 썼다. 여름에 가족끼리 방문한 계곡에서 주워온 큰 돌에 글을 쓰기도 하고 가을이면 커다란 낙엽을 들고 와 글을 쓰기도 했다. 나중엔 각 재료별 사용할 연필이나 펜의 종류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다.


ADHD는 충동조절 능력의 부제와 집중력 저하로 말실수가 많은 편이다. 

(안 해도 될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를 끼어들거나 상대의 말에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뜬금없이 갑자기 떠오른 생각으로 대화 주제를 점프하기도 하는 등 대화 소통에서 어려움을 자주 겪는다)


말과 다르게 글은 언제든 수정이 가능해 실수가 없고 내 생각을 가장 있는 그대로 남겨둘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느껴졌다. 문뜩 생각날 때 꺼내서 읽어 보면 그 순간의 시간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글쓰기는 방을 정리하듯 머릿속의 정리 정돈 시간이었다. 어릴 때 하던 순서가 엉킨 선 긋기 문제 풀이처럼 글을 쓰는 것은 뒤엉킨 사실과 그 옆에 있어야 할 감정선을 알맞게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ADHD들은 언제나 머릿속이 그들의 주변 환경처럼 뒤죽박죽이라 잃어버리기 싫은 기억과 지워져도 될 기억이 뒤엉켜서 결국엔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기록해 두면 언제든 그 시간 그 순간의 나의 감정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었고 그때의 소리와 주변 냄새까지 떠올라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시간들은 어린 시절 내게 가장 즐거운 놀이의 순간들이었다.


ADHD의 기억의 각인은 일반인보다 강하게 남는다. 부정적 사건은 하나의 트리거가 되어 영원히 그 상황을 다시는 마주하지 못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트라우마로 남는다. 잘 먹던 음식을 어느 날 싫어하는 식감으로 경험 했을 때 다시는 그 음식을 못 먹게 되고 하물며 억지로 라도 먹으면 몸이 아프게 되기도 할 만큼 예민성을 가졌다.


열 살 되던 어느 해 학교에서 주제를 주고 글을 적어내게 했고, 그 글들을 모두 취합해서 간단하게 표지를 만들고 집으로 보내주었다. 어린 마음에 내 글이 공개적으로 실린 그날이 너무 설레고 신기했다. 고작 내 가족과 반아이들이 읽게 되는 것이지만 내 글의 1인 독자인 나 외에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책을 집에 들고 온 날부터 그 설렘은 악몽이 되었다. 부모님은 그 책자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나는 부모님이 편히 보실 수 있도록 내 글 부분을 펼쳐서 가져다주었다. A4용지 반도 안 되는 분량의 글과 그림을 보고 부모님은 비웃기 시작했다. 틀린 띄어쓰기 혹은 어색한 단어 선택 등 을 지적 하며 비웃음 가득한 평가를 내렸다. 그날의 창피함은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남겨졌고 그것을 이겨내는 데 30년 이 걸렸다. 그리고 몇 달 뒤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부모님은 그 글을 큰소리로 읽었고 모두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비웃음 소리와 함께


그러지 마 열심히 썼네 나름 그림도 그리긴 그렸어

라는 말을 듣고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열 살 인생에 가장 큰 수치스러움과 말로 다 못할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내 책자를 가져가 내가 쓴 글의 페이지만 아주 잘게 찢어 (누가 보면 창피하니까) 동네 쓰레기통 여러 곳에 나눠서 버렸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역시나 글 쓰는 걸 멈추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쓴 글들을 여전히 찢어서 버리거나 혹은 모았다가 불에 태워 버렸다.


그날의 기억은 한번 쓴 글을 다시 읽지 못하게 만들었고(읽다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소름이 돋는 기분 때문에) 그저 내가 적어둔 글들을 버리게 된 것이 아닌 나의 시간들을 통째로 잃어버리게 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누리는 큰 즐거움 하나를 뺏겨 버리게 되었다.


브런치 신청은 정말 오랜 시간의 고민이었다. 신청을 하다가 취소하는 일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는지 모른다. 신청 축하 메일이 왔을 때 나는 나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정시켰다.


내 글을 남들이 읽는다고?

브런치에는 좋은 글들이 넘치고 멋진 레이아웃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주는 글들이 넘쳐난다. 적절한 강조와 축약된 표현으로 높은 공감과 이해를 전달하는 잘 써진 글들, 이미지를 사용해 글을 더욱 집중력 있게 전달하는 다른 작가들이 넘치고, 그 글들을 보다 보면 내 글은 고루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고 볼품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뒷걸음 질도 그만하고 하고 싶고 두려워서 도망치는 일도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한 다짐 하나는 어떤 평가가 되더라도


더 이상 찢어버리지 않는 용기로 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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