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식탐
김치기호, 김치의 어느부분을 드시나요?
나는 스스로 내가 식탐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언니랑 비교했을 땐 더더욱 그렇다.
내가 정의하는 식탐 있는 사람이란,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같이 먹는 사람보다 먼저, 더 많이 먹는 무의식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가족들과 밥이든 후식이든 무언가를 먹을 때, 언니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서 다 먹는, 식성이 매우 매우 좋은 사람이다. 가족 중엔 천천히 오래 자리를 지키고 먹는 사람은 엄마, 언니 딱 두 명이다. 언니는 식탐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식탁을 지키는 사람인 거고, 엄마는 이가 좋지 않아서 유난히 천천히 드셔서 그렇다.
먹을게 귀한 그런 시대를 살고 있지도 않고 꽤나 풍족한 식탁을 가진 집이지만 가끔 특식이라 느껴지는 식탁에선 일부러 내가 배부르다면서 내 밥그릇을 치우고 보면 그 두 사람이 마지막까지 식탁에 남아있곤 했다. 특히나 언니가. 난 건강을 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부러 포만감을 과하게 느낄 때까지 먹지 않고 입에는 배부르다는 말을 붙이고 산다. 그리고 자리를 슬쩍 비켜주면 그럴 때마다 언니가 해치우는 느낌적 느낌을 받으면서 정말 눈치 없는 큰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엄청 곱게 자신의 식성을 표출하며 성장한 언니가 시집을 가고 엄마와 둘이 남았을 때, 난 엄마가 소탈한 식성의 사람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엄마는 배고파서, 밥을 먹어야 해서 먹는 사람인지라 그냥 김치 하나면 그걸로 족한 식욕도 식탐도 없는 사람이다. 생선은 눈알과 머리 발라먹는 걸 과하게 좋아하는 식성 파괴자라 생각했었다. 나와 달리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 무식욕자 내지 무식탐자.
그런데 둘이 먹다 내가 수저를 내려놓으면 이젠 혼자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엄마가 다 먹었다. 엄마는 느끼하다던 치즈케이크도 너무 달다는 마카롱도 시큼하다는 애플망고도 퍽퍽하다던 고기살도, 생선살도 못 먹는 것도 안 먹는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먹는 김치! 알고 보니 김치도 잎사귀보다 배추 대를 더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흐늘거리는 배추 잎 쪽을 안 좋아해서 식감 있는 배추 대 쪽을 무의식적으로 주로 먹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엄마도 흐늘거리는 배추 잎 부분보다 배추 대를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남겨진 김치에서 배추 대를 먼저 집어먹는 엄마를 여러 번 인지하고 그제야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부분이 더 맛있어?’ ‘원래 이파리보다 배추 대가 더 맛있지’라고 말하는 엄마 말에 난 충격을 먹었다.
그동안 우리의 식탁에서 난 내가 배려를 나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완전히. 우리의 식탁은 그냥 엄마의 길고 긴 오래된 배려였고 난 그저 식탐 있는 딸이었다. 그동안 그 많던 배추 잎 김치는 엄마가 매일 먹었던 거다. 알타리김치도 난 엄마가 이가 좋지 않아서 식감이 있는 무청 부분을 잘 안 먹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보니 충분히 알타리김치의 무청 정도는 씹고 맛을 느끼는 분이었다. 그저 내가 무청 부분을 좋아해서 잘 안 드시는 거였다.
그래서 어느 날 작정하고 정정해줬다. 이젠 배추 잎이 더 맛있다고 양념이 많이 묻어있어서 좋다고, 그리고 아삭하게 씹히는 알타리무가 더 좋다고. 그러자 자연스레 무청과 배추 대는 엄마 몫이 되었다.
엄마 앞에선 모두가 식탐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닌 척 언니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배려심 있다고 격려하던 나 조차도 엄마 앞에선 맛있는 것만 골라먹는 식탐 있어 배려해야 하는 딸이었을 뿐이다.
이젠 나에게도 김치의 어느 부분을 먹든 상관없게 된 지 몇 년이 흘렀다. 난 한 번도 언니에게 보이는 식탐도 엄마의 감춰지고 비워진 식성을 말한 적도 없다.
언니가 집에 놀러 와 같이 밥을 먹다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아주 오랜만에 나왔고 식탁엔 알타리김치 한 개가 접시에 남겨 있기에 언니는 당연하게 자기가 먹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홀랑 먹어버렸다고. 눈앞에서 그런 엄마의 모습은 처음 봤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한다. 무덤덤하게 물었다. ‘왜,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 ‘아니, 이젠 양보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가 먹고 싶은걸 엄마가 먹을 수 있게 됐구나 싶어서 그 낯선 모습에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더라’ 이젠 두 아이의 엄마인 언니가 대답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언니 앞에 놓인 이전과는 맛이 많이 달라진 얻어온 무청이 없는 알타리김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