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에스프레소 철학] "음식예술" 제10강)
• 텔퍼(Elizabeth Telfer)의 ‘미적 반응’의 개념을 중심으로
미적 반응은 쾌락(즐거움)의 한 종류다. 그것은 어떤 대상이 나의 감각에 어떻게 나타나는지에만 관심을 두고, 그 사물(음식)의 모양이나 맛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이다. 미적 반응은 그 사물(음식)이 나에게 어떤 이익(유용성)을 가져다주는지와는 무관하다. 예를 들면, 내가 그 맛과 질감(質感) 때문에 코티지 치즈(cottage cheese)를 좋아한다면, 나는 미적 반응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열량이 적고 섬유질이 많아서 건강에 좋기 때문에 코티지 치즈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미적 반응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텔퍼는 미적 반응이 객관적인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그런 객관성을 엿볼 수 있다.
① 맛집의 음식 맛의 객관성
나는 어느 맛집의 음식을 개인적으로 또는 주관적으로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 맛집의 음식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그 맛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내가 그 맛집의 음식 맛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맛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1)
② 와인 소믈리에와 커피 바리스타의 맛의 객관성
와인 소믈리에(sommelier)는 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다. 그들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고객이 주문한 요리에 적합한 와인을 추천하고 와인의 맛과 특징, 원산지 등을 설명한다. 바리스타(barista)는 전문적으로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 고객의 주문에 맞게 추출된 에스프레소에 물, 우유, 각종 시럽 등을 첨가하여 커피를 만든다.
와인 소믈리에와 커피 바리스타는 그들의 맛과 향에 대한 “미적 반응의 객관성”(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다. 소믈리에와 바리스타는 와인이나 커피의 영양가와 상관없이 그‘맛’과‘향’만을 판단하며, 맛과 향에 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은 예술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과 유사한 것이다.
우리는 음식을 배고픔을 해소하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먹는다. 음식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며 유용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이든 그것이 유용한 것이라면 예술로 간주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모든 예술은 전혀 유용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술 작품은 현실의 삶에서 전혀 쓸모가 없으며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은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부르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주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순수 예술(건축, 조각, 그림, 음악, 시) 중에서 특히 건축은 우리의 삶에 커다란 유용성을 준다. 우리는 예술 작품과 같은 건축물에 들어가 살 수도 있다. 또한 예술 작품과 같이 만들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도 있다.
우리는 요리법의 개발자를 작곡가로, 요리사를 연주자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랠(Prall)은“음식은 예술로서 대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음식의 맛과 냄새는 즐겁고 아름다운 것으로 지각될 수 있고... 특별히... 인식되고 기억될 수 있으며, 객관적일 수 있다”(2) 아름다움 것, 인식되고 기억되는 것,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은 곧 예술 작품의 특징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의 맛과 냄새는 예술 작품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은 3분 이내에 변질되는 물감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물감은 변질되고 소비된다. 그러나 물감이 소비되어 그려진 그림은 오랫동안 즐기고 평가(감상)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에 그려졌다. 우리는 그것을 10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감상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음식을 먹어서 소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식을 먹고 소비한 뒤에 그 “맛과 향을 즐기고 평가(감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물감을 소비함으로써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① 미술 작품의 재생산: 캔버스(Canvas)에 물감을 배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그림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
② 음식의 재생산: 요리의 레시피에 의해서 음식을 만들 수 있으며, 그런 음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
음식의 영양학적 지식은 미적 감상과 연관되고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 “칼로리가 높은 휘핑 크림(Whipping cream)과 초콜렛을 사용해서 정교하고 섬세한 질감으로 ‘풍부한 맛’을 지닌 디저트를 만들 수 있다.”(3) 요리 전문가의 작품은 미적 감상의 대상이자, 잠재적인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마리 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ême, 1784~1833년)은 프랑스의 요리사다. 그는 나폴레옹, 알렉산드르 등 유럽 왕실과 지도자들을 위해 요리를 했다. 프랑스 소스를 4개의 큰 범주로 분류한 그의 소스 체계는 지금도 서양 요리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는 음식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었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페이스트리와 설탕으로 된 놀라운 건물을 갖게 될 것이고, 그것들로 지어진 환상적인 건축물을 보게 될 것이다 ... 순수 예술은 건축, 그림, 음악, 조각, 시 등 다섯 가지다. ... 그것들은 과자로 된 것들이다.”(4)
음식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건축, 조각, 그림, 음악, 시 등 순수 예술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을 매체로 하는 예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한계점을 갖는다. 즉 음식은 일시적인 것이고, 의미를 갖지 못하며,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음식은 먹어서 소비되거나 먹지 않으면 상하게 된다. 그것은 건축이나 그림과 같이 오랫동안 보고 감상할 수 없다. 그래서 음식은 오랫동안 존재하는 건축, 조각, 미술 작품과 같은 지명도를 가질 수 없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오랫동안 존재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감상된다.
그림, 조각, 건축, 문학, 음악 등과 같은 순수 예술은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표현한다. 그러나 음식은 문학이나 시각 예술과 같이 어떤 의미를 표현하지 못한다.
음악은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음식은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요리사는 요리를 통해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요리된 음식 자체는 사랑의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각주]
1) Elizabeth Telfer, Food for Thought: Philosophy and Food,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6, p.43.
2) D.W. Prall, ‘The elements of aesthetic surface in general’, in Eliseo Vivas andMurray Krieger (eds) The Problems of Aesthetics, New York and Toronto: Rinehart & Co., 1958, p.187.
3) Marienne L. Quinet, “Food as Art: The Problem of Function”, British Journal ofAesthetics 21(2), 1981, p.169.
4) M.F.K. Fisher, The Art of Eating,New York: Vintage Books, 1976,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