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추억

by 조덕현


나이가 들면 과거의 추억을 들추면서 잊혀진 과거를 회상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회상 할만한 것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만큼 너무 바쁘게 산 탓인지 아니면 덧없이 산 탓인지 회상 할만한 것없이 살아온 인생이다. 나의 어린 초등학교 때 나의 윗학년에 의사의 딸이있었다 시골서 의사의 딸이니 부유하고 알아주는 집이다. 그러니 나의 윗학년이니 일년 선배다. 학교 조회때 그녀의 반과 우리의 반이 바로 옆에 학생들이 줄서 있었다. 반장은 자기반의 앞에 서있었기에 얼굴을 잘 볼수 있는 위치다. 그녀는 반장이었고 나는 우리반의 반장이었기 때문이다.

그후 그녀는 도시의 좋은 여고로 진학하였다. 나도 그녀가 진학한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였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초등학교시절에 동네의 나를 시기하는 애들이 나를 놀려대었다. 내가 그녀가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무슨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놀려 대기도하였다. 그당시는 얼마나 창피하였는지 모른다. 그당시에는 여핵생과 말을 건다는것은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할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같은 놀림이 오늘날에 있다면 얼마나 나는 좋았을 지모른다. 하여튼 그당시는 왜 창피하였는지 모른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문득 문득 그녀가 생각나든 적이 있었다. 그녀와 한번 인사나 말을 걸어 본적이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야말로 못나도 정말 못난 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한 여학생으로 내 머리에 남아 있다. 나보다 한학년 위였으니 말을걸기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내 어릴적 공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집은 대가족이어서 한방에서 온식구가 함께 잤으니 그 불편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집에서 숙제를 제대로 하기도 어려웠다. 방바닥에 엎드려서 하는 것이 전부였다. 연필로 학습장에 꾹꾹눌러서 하든 시대였다. 우리집은 장사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집에 비하여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어느날 우리들이 공부할 수있는 책상을 사왔다. 오늘날같은 책상이 아니고 밥상같은 네모난 책상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로는 우리집의 큰 경사였다. 엎드려서하는 숙제를 하든것을 앉아서 한다는 것은 우리 형제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같은 책상을 본적이 없다. 그래도 그런 책상위에서 글를 쓴다든지 숙제를 하는 것이 마음속으로 얼마나 흐믓했는지 모른다. 지금은 그런 책상은 골동품상이나 박물관에서나 찾아 볼수가 있지 시중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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