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뭍은 개가 겨뭍은 돼지를 나무란다.
이말은 우리속담에 있는 말이다. 이속담은 자기의 허물은 모르면서 남의 허물은 무슨 큰 잘못인양 떠벌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실업계 고등하교에서 근무하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긴적이 있다. 그런데 실업계에서 인문계로 오면 교과 내용이 많이 달라서 문제가 있다는 등 투덜되는 선생이 있었다. 사실 할 말이 없엇다. 사실 알고보니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였다고 한다. 자기는 불어를 공부한 사람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가늠이 안가는 상황이다. 그당시는 과학전람회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도 과학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특상(최고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 딴에는 그 선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아 준적이 있다. 지방의 소도시여서 그런 상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도시가 생긴이래 처음있는 일이라 하였다.
나는 버섯을 공부하였다.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공부 한 것은 아니다. 버섯(균학) 것은 대학의 학부에서는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또 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서 미생물학을 강의하였다. 나는 버섯에 관한 논문을 썼다. 어떤 교수가 우리대학은 보건대학이니 세균학을 전공하라고 학장에게 이야기하였다고 하낟. 학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버섯은 분류군상 미생물에 속히는 학문이다. 미생물중에서 전공이 버섯분야다. 균학이라는 분야로 불리기 시작한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를 시기하는 교수는 버섯도 학문이냐 학생에게 수업시간에서 빈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꾹 참고 버섯학문에 매진하였다. 세균학도 열심히 연구하여 가르첬다. 나를 빈정되든 교수는 학부만 나온 교수가 나를 헐뜯기위해서 남의 학문 분야까지 서슴치않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대놓고 조롱하든 교수도 있었다.
자기는 학부만 나왔음에도 남을 그런식으로 학생들 앞에서 수어시간에 조롱하였다. 나는 오직 한길을 갔다. 남이 무어라하든 상관없이 나의 길을 갔다. 별 이름없는 지방대학교수라는 것에 대해서 서울의 대학들의 교수들은 아주 무시하였다. 나를 시기하고 헐뜯는 것은 학교만이 아니고 학회에서도 무시 당하였다. 이런 무시를 무릎쓰고 학회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한국최초로 신종도 국제학회에 발표하고 한국의 버섯 DB구축도 하였으며 국제 DB 학회에 한국의 버섯를 소개하였다. 자기들이 못하느 것에 시기를 하고 질투하는 속에서 오늘도 굿굿이 헤쳐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