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스님을 생각한다.

by 조덕현

나는 버섯칼럼을 쓴다. 재미있고 유익한 컨셉의 주제가 별로 없는 때가 많다. 재미있는 컨셉이 있어도 한 칼럼을 채워야하는 나의 지식의 한계로 만족스럽지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제나 내 신변 잡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 쓰면서 가끔 일연스님을 문득 문득 떠 올린다. 일연스님은 삼국유사를 쓰신 분이다. 승방의 어느 골방에서 삼국유사를 썼을 것이다. 그 내용이 호랑이 담배 피든 이야기다.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그도 알면서 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도 지금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그는 꼬투리가 되는 이야기나 생각이 떠오르면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재미 있게 꾸며서 전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그것이 자기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썼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구상을 한다는 것에 나는 머리가 숙연하여진다.

나도 별 이야기 답지않은 글을 쓰면서 감동적인 글을 쓰지 못하면서 일연스님을 떠 올리는 것은 내가 쓰는 글을 변명하기 위함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여러번 읽곤하였다. 사실 반복하여 읽었다. 그것을 읽는 노라면 지루한 시간도 지나고 머리가 텅 비어서 좋았다. 현실에 맞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로 하여금 현실에서 비껴나서 여유러운 마음을 갖게 하였다.

일연스님은 거의 2000년이 지난 어느 한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자기를 문명이 발달된 곳으로 끌어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쓴 글을 몇 천년 후에 읽을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없으리라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래도 쓴다.

나는 백두산 버섯을 채집하면서 생활 했든 여러 가지 후일담을 “버섯,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나오다”를 출간한 적이 있다. 백두산은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한다. 그 후의 백두산 주변은 어떻게 변하였가를 상상해 보곤한다. 백두산이 큰호수, 아니면 황량한 용암의 자갈 덩어리로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도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균류는 발생 할 것이다. 누가 아는가. 황량한 백두산의 흔적을 찾아서 어떤 균류학자가 균류를 조사하면서 내가 쓴 색바랜 “백두산버섯도감”을 옆에 끼고 가면서 채집한 균류를 찾아 같은 군류가 있을 가를 맞추어 보면서 황량한 용암지대를 조사하는 꿈을 꾼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가 조사한 균류가 도감에는 하나도 없음을 알고 이 엉터리도감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면 똑같은 버섯을 발견하고 감탄을 할까를 상상하여 본다.

그는 아득한 저편의 시간 언저리에서 이 도감을 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한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까를 상상하여본다. (202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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