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으러 생각한다. 망망한 바다의 한복판에서 저 멀리에 빈짝이는 등대를 보면 뱃사람들은 아 드디어 항구가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시무룩했든 했든 뱃사람, 허기지고 힘빠진 뱃사람도 힘이 솟구치면서 등대를 향하여 항해를 계속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등대를 지키는 사람이 불빛을 망망대해를 비추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렸을 적에는 그런 등대생활을 해보았으면 하기도 하였다. 사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도 해보았다. 사실 등대의 생활은 알고보면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 생활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상상속의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고독속에서 망망 바다를 몇 달 아닌 몇 년씩을 바라본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버텨내기 힘든 것이다.
지금은 등대가 거의 무인 등대다. 사람이 등대 속에 없고 자동기계로 작동하는 등대를 운영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아련한 꿈을 빼앗아 가고 있다.
바다의 물결을 보면 그림이나 영상에서 보면 한번쯤 도전하고픈 생각이 든다. 스포츠로 즐기는 파도 타기를 보면 바다는 인간에게 한번쯤 도전 해볼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 생각된다. 바다의 악몽을 경험한 사람들은 바다하면 몸서리 쳐지는 곳으로 생각한다. 90년대에 자연보전협회의 종합학술조사단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떠났을 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말그대로 해상국립공원이라 남해안 상당부분을 아우루는 지역이다. 그중에서 연도, 안도라는 곳의 해안가에서 일어 났다. 조사단원을 태운 행정선이 해안가를 항해할 때 배가 기우뚱하여 물에 침몰하는 줄 알았다. 배가 갑자기 반쯤 기울어져서 원래대로 중심을 못잡고 달리니 그 무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갑판위에 있었다. 우한정박사. 백남극박사 3명이었고, 나머지 조사원들은 선실에 있었다. 바다에 가면 특히 물에 빠지면 몸이 가벼워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메고 있든 배낭을 바다에 던지고 최대한 몸을 가볍게하려고 하였다. 그때 뇌리를 스친것은 이제는 죽었구나였다. 사실 우리배는 해안가에서 그리 멀지는 않았다. 거리로는 내 생각에 2-3백터 아닐까 생각되었다. 언뜻 들으면 가까운 거리지만 바다의 파도등을 생각하면 만만치않은 거리다. 수영를 많이 해보고나, 선수가 아니라면 먼거리다. 파도라는 것이 웬만한 사람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다.
그런데 이배가 몇분 반쯤 비스듬히 항해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바로 서는 것이다. 그래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그 때 갑판에 같이 타고 있든 위의 두분은 이미 타계하셨다. 그런데 선실에는 아비규한이 일어나고 있었다. 출입구로 조사대원 몇십명이 몰려드니 오히려 빠져 나올수가 없었든 것이다.
그때 터득 한것은 바다에 나가면 나무로 된 배를 타야한다는 상식을 얻었다.. 이 행정선이 기울어진 것은 그때 여수 MBC방송국이 협회의 조사 활동과 이곳의 풍경을 촬영하기위서 같이 탔든 MBC카메라멘들의 몸무게 때문이었다. 카메라멘들의 몸무게로 배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당시 촬영카메라가 엄청커서 무게가 많이 나갔고 그장비를 운반하는 청년들의 등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 몸무게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