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어쩔수없는 경쟁을 하게된다. 사회서든 직장에서든 부딪치는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한 경우보다는 불편한 관계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때론 상대방을 죽이고 싶도록 미운적도 있게 된다. 이유야 어떻든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면
어느 한쪽은 패배하게 된다. 그렇게되면 그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원수아닌 원수로 된다. 그래서 패배자는 언젠가 상대방을 날려버릴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라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소위 복수를 생각하게 된다. 옛날의 복수는 상대방을 죽이거나 멀리 귀양보내는 것을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지금의 복수는 정말 다양하게 우리에게 닥아온다. 모함, 질투, 투서 등으로 별의 별 것이 다 동원된다. 그런것에 대처하기는 사람에 따라 버거운 것이 많다. 생존경쟁을 통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꼼짝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복수다.
그러나 언제나 그 상대방을 영원히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맞부딕치는 것이다. 그러다 헤어지면 까막히 잊어 버리기도한다.
옛날의 복수는 상대방을 죽이는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철천지원수라는 말을 사용하엿다. 그리고 원수를 죽이기 위해서 대를 이어 복수극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우리가 옛날 이야기나 책에서 보아온 것이다.
오늘날의 복수는 억울하면 소송을 걸어서 해결을 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소송에서 이기면 다행이다. 이것은 자기가 억울한 것이 정당성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불행이도 소송에서 지면 다시 불복하여 소송을 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법원의 심판으로 원수를 갚는 수도 있다. 현대의 복수는 이러것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수는 철천지 원수같은 일은 드물다. 그러면 오늘날의 그 많은 상대방을 상대로 복수를 할것인가. 복수도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 많은 상황에 대처하여 복수할 것인가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게 된다.
복수라는 것이 자기가 상대하는 사람보다 오래사는 것이 복수다. 상대방보다 잘사는 것이다. 오래 살아야 끝장을 보게된다. 오래사는 것은 자기가 정당하기 때문에 신이 주는 것으로 생각해보자. 상대방보다 잘 사는 것은 상대방보다 내가 훨씬 정당하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면 복수도 과거에 비하여 진화하였다면 진화 한것이다.
현대는 사람들 대부분이 복수하면서 산다. 오늘은 상대방보다 더 나은 멋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직접 부딪치지는 않지만 원격으로 복수하며 사는 것이 지금의 세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