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인생

by 조덕현

덤이란 물건을살 때 따로 더 얹어주는 것을 말한다. 보통 시골의 5일 장이 설때에 많이 행하는 우리네 장사 거래다. 시골장의 거래는 정확이 측정해서 물건을 팔고 살 때 일어난다. 한무더기에 얼마하고 거래를 하지만 한무데기보다 따로 더 주는 것을 보통 덤이라 말한다. 시골장의 재미는 이 덤이 장사의 거래가 훨씬 묘미가 있다. 그러니까 덤이란 더 주어도 그만 안주어도 그만이다. 이미 팔고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시골장에서의 거래는 덤이 없으면 무언가 서운한 흥정이 되어서 물건을 잘 샀는 지, 비싸게 산건지 가늠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사는 쪽에서 흥정이 끝나도 무언가 하나 더 달라고 요구하기도하고. 어떤때는 파는 상인이 미리 알아서 하나 더 얹어 주기도 한다.

정년이 되어도 교장, 총장이라는 직책을 맞게 되면 정년에 무관하게 그 직책을 이어나가게 된다. 어느분이 정년을 넘기고 학교의 중요 보직을 수행하는 분이 자기는 덤으로 산다고 한다. 이것은 교장을 하든 총장을 하든 덤으로 하는 것이니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덤같은 인생을 사시는 분들이 많다. 생각하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 부담이 없게 된다. 그렇다 보니 마음의 씀씀이가 너그러운 경우가 많다. 자기의 인생을 한번쯤 덤으로 산다고 상상을 하여보자. 그러면 우리주위의 모든 것이 편안해 진다.

나도 그런 부류의 속할런 지모른다. 내가 북에서 “단양호”라는 큰 배에 실려서 군산으로 피난을 나왔다. 소위 피난민 생활을 하든시절이다. 엄마와 누님, 형들은 돈을 벌기위해서 장사를 하였다. 형들은 신문 팔이도 하였다. 나는 아직 어려서 무엇을 하였는지 기억이 없지만 어머니, 누님, 형들을 도왔을 것이다. 그러니 먹는 것이 부실하고 위생 상태는 엉망진창 이었을 것이다. 내가 몸이 이상하고 더욱이 성기가 붓고 하였다.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아니어서 피난민들은 시청에서 발급하는 특별배려로 진찰을 받게 되었다. 진내과라는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의사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어머니가 눈물울 흘리든 기억이 난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죽는다는 말에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병원에 여러번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았다. 어린 내 마음이 어떠 했을가를 어머니는 후일담을 하셨다. 그러다가 다시 대야로 피난아닌 피난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병원에서의 치료도 흐지브지 되었다. 그후 병원을 가는 것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먹고 살기도 어려웠든 때라 치료받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내었다. 신기한 것은 살다보니 전연 성기에 대한 병은 잊고 살았다. 후유증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야말로 죽었을 지도 모르는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정말 덤으로 살아온 인생인지 모른다. 그래서 더 멋진 내 인생의 마무리를 짓고 싶다. 그것이 덤에 대한 나의 보답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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