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그리움

by 조덕현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막상 무엇을 기억하면 좋은 것인지 생각이 안난다.

긴 세월을 살아왔으니 기억이 될만한 것이 많이 있으련만 기억이 나는 것이 별로 없다. 생각나는 것이 있지만 뚜렷이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없다. 떠 오른다해도 희미한 것이 대분이다. 떠오른 것의 기억이 도무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확실치가 않아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헷갈리는 것이 많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진이다. 친구와 같이 강릉을 갔다오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어머니에게 줄 조개로 만든 브로치를 사왔다. 나는 서울서 어머니를 보러 군산(대야) 으로 내려 갔다. 너무 놀랬다. 너무 야위어 있었다. 눈물이 왈칵 날 정도였다. 그래도 나를 보니 환한 웃음과 기쁨이 있었다. 그동안 아프셔서 알으셨단다.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자식이 뭐가 필요하겠나. 편찮으신것도 모르고 지냈으니 말이다. 얼마나 나를 보고 싶어 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뭉쿨하여 진다. 나를 보니 마음이 상당히 안정되시는 모양이다. 말로 표현 할수 없을 정도로 야위어서 뼈만 앙상한 느낌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어머니가 혈압약을 드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으로서 아들로서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사실 이것이 불효이다. 지금 뉘우치니 정말 나같은 인간도 사람일지 한심한 사람이다.

나는 브러치를 어머니 옷에 새로 달고 사진을 찍으러 갔다. 왜 갑자기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사진을 큰 액자에 걸었다. 사진속의 어머니 얼굴이 너무 야윈것이 또 나를 슬프게 하였다. 그리고 이사진은 서울로 이사올때 가지고 왔다.

내가 광주보건대로 부임한 3월에 어머니는 갑자기 고혈압으로 세수를 하시다가 쓸어 지셔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다행인것은 걱정만 드리든 아들이 대학으로 교수로 가는 것을 보시고 눈을 감은 신것을 어머니한데 위안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어머니 영정사진이 되었다. 장례가 끝나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의 사진도 변변이 없고 어머니 사진을 찾으니 어디로 간지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가진것은 대학 졸업식때 두루마기 입고 학교 교정에서 짝은 사진이 유일하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이 내개 남겨진 것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그당시는 사진기도 없었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어머니를 더 그리워하라고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나는 때가 있으면 상상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본다.

이제는 세월속에 묻혀버린 어머니 얼굴을 나는 그려본다. 그리고 끔찍이도 나를 사랑하였든 어머니 생각에 가끔은 눈시울이 진다. 지금 내 나이에도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상상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도록 하여준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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