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학년의 시작은 8월 중순이다. 6월 초순이 되면, 학교에서 장문의 이메일이 날아온다.
" 같은 반이 꼭 되었으면 하는 친구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반편성에 참고하겠습니다."
꼭 되어야 하는 친구보다는 꼭 피해야 하는 친구가 더 중요하다. 국제학교는 머무는 자와 떠나는 자가 학기마다 존재하는 곳이지만, 떠났으면 하는 자를 피하기 위해서 전학을 가기가 힘들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주재 기간 동안 국제 학교 옮기기란 입학만큼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학교와 회사와 주재원 가정의 조율과 긴 대기가 이루어지는 타국이라는 낯선 환경 때문에 입학만큼이나 전학도 난이도가 높다.
지인분의 자녀와 자녀의 친구 간에 갈등이 컸다. 지인분의 자녀가 아니라, 친구가 전학을 감으로써 마무리되었는데 전학을 간 친구도 남겨진 지인의 지녀도 두고두고 좁은 주재원 사회에서 회자가 되었다. 도저히 서로 함께 하기 힘든 상황으로까지 치닫았을 때에는 쌍방 과실일 테니 말이다.
'같은 반이 꼭 같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친구 리스트를 제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큰 아이는 친구라면 물불을 안 가리며, 앞뒤 전후 안보는 의리 소년이기에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작은 아이는 친구가 문제가 아니라, 선생님이 관건이었다.
Teacher's pet은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비꼬는 투로 많이 쓰이는 단어다. 딸아이는 teacher's pet을 자처했는데, 그만큼 선생님들을 따랐다. 칭찬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안다.
학교에서 오는 메일의 하단에는 이런 문구가 블록체로 쓰여있다.
" 반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요구하거나 지정할 수 없습니다. 담임 선생님에 대한 정보는 개학식 날 알게 될 예정입니다."
사립학교에서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려면 이러한 원칙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을 사랑하는 아이의 엄마에겐 담임선생님이 중요하다.
Homeroom이라는 담임선생님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제학교의 홈룸은 아이들의 베이스다. 미술, 체육, 과학, ESL 수업으로의 이동과 조정 또한 홈룸 선생님의 관장 하에 이루어진다. 반에서 일어나는 일의 책임자는 홈룸 선생님이다.
해가 바뀌어도, 선생님의 교실은 고정이다. 교실 번호에는 선생님의 이름이 붙어있고 선생님이 담당 학년을 바꾸지 않는 한은 그 교실엔 늘 그분이 계신다. Room 201, Ms. Fiona, 이런 식이다. 201호 교실로 반배정이 되면, 피오나 선생님 담당인 것이다. 피오나 선생님이 다른 학년으로 이동하시지 않았다면 그 교실에선 늘 피오나 선생님을 뵐 수 있다. 국제학교 유치원을 떠나 초등학교로 옮긴 딸이 짬이 나면 유치원 교실로 들어가서 피오나 선생님께 안부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공간이 갖는 힘이다.
한국의 개학은 삼일절 덕에 3월 2일이며, 두 번째 맞은 3월 1일에 딸아이는 들떠했다.
" 엄마, 담임선생님 어느 분이 되실지 궁금해."
" 그 선생님만 아니면 될 것 같다, 그렇지?"
2년 전, 한국 와서 첫 수업은 코로나 때문에 4월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온라인 수업이라는 형태 자체가 낯설고, 한국 와 맞게 된 첫 학기라 버벅거림의 연속이었다. 학생도 교사도 그 시간을 무탈히 지나왔음에 감사해야 하지만, 순간에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지만은 않다. 챙기는 것이 여의치 않은 학생들, 온라인 수업 태도가 좋지 못한 학생들은 주로 남자아이들이었는데, 그때마다 담임선생님의 호통이 쏟아졌다. 집에서 아이들의 한국 학교 적응과 온라인 수업을 도와주고 있을 때라, 두 아이의 방문을 열어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길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니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의 소리가 아이카메라를 통해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칭찬만을 듣고 싶어 하는 아이니, 긴장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때 조금만 더 따뜻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이 담임선생님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한국 학교에 있었더라면, 국공립 학교를 계속 다녔더라면 담임선생님이 이런 분이었으면 좋겠다, 저런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지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 학교 elemtary 초등 학년에 반 수는 대략 5-6개 정도이다. 각 교실과 선생님 얼굴, 이름은 외우고도 남는다. 학교를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며 자원봉사를 하니 다음 학년 딸아이 선생님이 궁금하다면, 다음 학년 층을 들러 선생님들의 관상과 반 아이들의 표정을 둘러보는 방법이 있다.
북스토어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점심식사를 하러 온 선생님들을 모두 볼 수 있다. 북스토어 건너 카페테리아는 아이들의 식사 장소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도 식사를 고르기 위해서는 카페테리아를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관찰하기 좋다. 기운을 모아 '올해는 이 교실에 배치되게 해 주세요' 하고 독일 새벽달을 보며 정화수라도 떠다 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원하는 교실에 에너지를 집중해본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긴 하다. 5년이란 시간 동안 서른 명에 가까운 선생님들의 관상을 머릿속에 데이터하고 지내는 시간이었다. 올해 담임선생님이 아이와 찰떡궁합이었다면, 다음 해는 그보다 못하기 마련이더라. 그래서 어느샌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맡기는 국제학교 4년 차가 오기도 했었다.
딸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서 온 e- 알리미에는 그 선생님의 성함이 떠있다. 바로 그분, 어제 삼일절을 맞아 딸아이와 쇼핑을 나갔다가 돌아오며 우리가 떠올렸던 그분이 올해 아이 담임선생님이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다. 삶.
하지 말아야겠다. 말.
말 대로 이루어진다.
e-알리미를 보고 있으니, 아이가 들어온다.
" 엄마, 나는 우리 선생님의 top 3 안에 들어가. 걱정 없어."
칭찬을 듣기 위해, 혼나지 않기 위해서 노트북 화면과 씨름하던 아이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 중의 한 명이다. 아이가 '우리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My homeroom teacher이라고 말하던 딸이,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란 한국말도 모르던 딸이 '우리' 선생님이 애정 하는 학생이 되었다. 엄하고 어려운 선생님에게도 칭찬을 듣는 학생이다.
이렇게 딸아이가 믿음직스러워지는 한국학교 3년 차가 오는구나 싶다. 독일로 떠날 때 서른 후반이던 호박씨가 마흔의 중반을 달려가듯, 딸아이도 낯설게 훌쩍 커버려 맡기면 되는 때가 왔다. 선생님 관상까지 외워 가며 아이의 학교 생활에 집중하는 시간이 지나가서 좋다. 담임선생님이 누가 되든, 새롭게 좋은 사람을 만날 예정이라는 생각에 개학 전날 설레어하는 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