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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는 목검木劍

by 호박씨

눈칫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말에는 먹는다는 말이 많다. 먹는 일이 중한 민족이다.

말이 행위를 설명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눈치를 본다. 오해 사고 싶지 않은 것, 하고 싶은 말은 그 순간에 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다. 독일에서 나는 눈칫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말로 나의 행위를 설명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시민의식이 높다고들 한다. 눈에 띄는 어김이 있으면 거침없이 그 자리에서 말하고 표현하는 그들 덕에 무엇이 그들이 말하는 옳음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서 길거리만 나서도 교육받을 수 있다. 모범생인 바라, 오해 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라 한번 알려주면 다시는 같은 소리는 듣지 말자 싶었다.


슈퍼에서 아기 카트로 장보는 할머니를 들이받았고(https://brunch.co.kr/@a88fe3488970423/57 ), 자리를 바꿔주는 인자함을 발휘해주지 않는 독일 할아버지 때문에 울음을 터트렸다.(https://brunch.co.kr/@a88fe3488970423/1 )할머니에게도 죄송하단 영어 대신에 괜찮으시냐 또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또는 아이를 앞으로는 조심시키겠다는 말을 하고 상대가 내 말을 받아들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 그 사건에 대해서 여적까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할 말을 다했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기차간의 할아버지에게도 어르신, 그렇게 팍팍하게 생각하지 마세요를 돌려 말하거나, 할아버지로부터 자리를 바꿔줄 수 없던 피치 못한 사정 따위를 듣게 되었더라면 나는 그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한 서린 귀신이 억울한 사연을 들어줄 이를 기다리며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머물듯이 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말들 때문에 눈칫밥을 키웠다. 그리고 배 터지게 눈칫밥 먹은 이야기들이 오늘도 나를 또 키보드로 잡아 이끈다.


주재기간 동안 5년을 머물렀던 집은 전임자의 집을 이어받은 것 있다. 그 전임자는 그의 전임자에게 이어받은 집이었다. 한 회사 직원들이 4년, 5년씩 연거푸 지낸 월세 지낸 집이라, 오버 오젤이라는 독일 시골 동네 속 한국 영혼이 서린 집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아는 전임자만 셋이었으니 짧게 잡아도 이 집은 10년은 독일 속 한국이다.

전임자가 후임에게, 해외라는 상황에 닥치자마자 꼭 필요한 가재도구들도 남겨두고 가기도 한다. 전임자의 부인의 연락처를 남편으로부터 건네받았다. 독일 도착하자마자 막막하여 몇 번 연락을 했었더랬다. 그분도 독일을 떠나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라서 거의 답을 안 주셨다. 그리고 남편이 선배인 전임의 부인에게 연락하지 말고 알아서 살라 핀잔도 주었다. 주방에 남겨 두고 간 공짜로 받은 유리컵과 식기는 첫날의 낯섦을 잠재워주기는 했다.


큰 아이방구석에 기다란 목검이 독일인만큼 키 큰 붙박이장 위에 숨어있다. 한국으로 실려가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흔히 다른 주재원 가족들은 이삿짐을 붙이고 짐이 도착할 때 즈음에 주재에 합류하지만, 나는 남편의 주재 업무 시작일에 맞춰 함께 왔다. 짐 없이 난민처럼 텅 빈 집을 한 달 반을 살았다. 집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전임자들의 자취를 보물 찾기처럼, 유적 발굴단처럼 할 시간이 주어졌다. 텅 빈 집도 즐기던 아이들이 구석에서 뭔가를 들고 나오면 이 물건은 몇 년이나 전부터 여기 있던 것일까 했다.


목검의 주인이 짐작은 가지 않았으나, 대륙 반대편에서 늘씬한 목검과 마주하니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집안에서 휘둘러대어도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 텅 빈 집이라 별 문제가 없었는데, 목검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컨테이너가 도착하고도 목검을 휘두르니 밖에 나가 놀라 했다. 5층 단층 아파트 앞 공동 정원이나 주차장에서 휘두르면 되겠지 싶었다.


스타워즈 로그 원 개봉으로 집에는 "즈우위이잉."하는 소리를 내는 장난감 레이저 건도 있었다. 목검의 상대로는 적당하다. 아이들은 검을 하나씩 들고 집 앞에서 결투 놀이를 하고 있다. 마실 것을 갔다 주자 싶어 슬리퍼를 신고 아이들에게 내려갔다. 우리 집은 1동, 뒤따라 오는 동은 1A동, 1B동으로 같은 도로명 주소를 쓰는 건물이 3 채다. 똑같이 생긴 3개의 건물, 독일어로 보눙이라 부르는 3개 동이 한 단지라고 보면 되겠다.

눈에 익은 1B동 할머니가 지나가신다. 장바구니를 들고 에데카 슈퍼를 들락 거리는 그녀는 차가 없어 그녀와는 자주 마주친다.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아이를 향해서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한다.


눈칫밥을 실컷 먹어온 터라 장바구니를 들고 단지 입구로 할머니가 진입할 때부터 사실 예민해지고 있었다. 이 신무기를 보고 위협을 느끼면 어쩌나, 아이들이 휘두르다가 할머니라도 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이들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길 쪽으로 서서 할머니의 시야로부터 목검을 가리는 이동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아니다 다를까, 그녀가 말을 건다. 보나 마나 혼날 예정이다.


" 이건 나무라서 안전해요. 얘네들은 지금 놀이 중이고요. "

나의 영어를 들은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내가 봐온 그녀는 영어가 서툴다. 그러니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가 건넨 말.

" 검 멋있네. 아이들이 춤추는 것 같아."


눈치 준다고, 눈치 받는다고 어찌 되는 것은 아닌데 그게 그렇게 싫어서 애들을 잡는 것이 일상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집에 있다가는 반 미치광이가 되어 아이들을 쥐 잡듯이 잡을까 봐, 그렇게 변하는 것이 무서워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좋자고 나갔는데 나가면 해프닝 거리 하나쯤은 만들어 오곤 했다.


집 주변에서 마주치던 할머니와는 눈인사를 하며 지내는 정도였다. 그녀도 이 보눙에 산지 한참일 테니 1동에 사는 한인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건넨 말속에는 관심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문장 속에서 짧은 영어를 눈치챘기에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녀의 따뜻함에 미리 변명한 내가 우스워져 머릿속이 하얘짐을 느꼈다. 말없이 1B동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녀가 1B동 현관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거둘 수 없어 멍하니 서 있었다.


모든 독일인을 만난 것이 아니다. 한국에 살았다 하더라도 아이를 키움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별별일을 겪으면서 양육을 했을 터이다. 한국에 살았다 한들 타인과의 갈등이 없었을까? 말로 오해는 더해지고 감정은 증폭되었을 터였다. 그러니 눈치 보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자신만만해하는 호박씨는 사실은 삶에 대해선 아는 게 많지 않았다. 한마디 한 독일인들이 마치 전 독일인 냥 싸잡아서, 주재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며 독일이 날 환영하지 않는 다며 퉁쳐 게으르게 생각하며 지낼 태세였다.

세상은 나를 이상하다고 보는 소수와, 나를 다르게 보는 소수, 나에겐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주재 생활이 일러준다. 이보다 더 좋은 인생학교가 어디 있을 싶다. 그러니 주재 생활은 선물이며, 나는 혜택을 누림에 분명하다. 주재는 선물이다. 눈칫밥은 사은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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