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상태다. 경력 단절이라기 보단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하는 때라고 해두자. 주재 5년 동안 아이들의 학교 생활 정상화와 남편의 주재 내조를 위해서 내달렸는데 돌아와 보니, 상황은 연속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떻게 한국에 적응할지에 대해서 걱정이 컸는데, 그것은 순전히 나의 오판이었다. 남편은 알아서 회사에 잘 적응하겠거니 믿었는데, 그것 또한 오판이었다. 그에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 아이들에게도 '내 나라'다.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둘은 서로 영어로 소통하고 있다. 아이들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착각을 한다. 아이들은 미국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내가 한국에 이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까지도 든다.
이 죄책감 또한 정답이 아니다. 그들은 두 개의 언어를 말하면서 살고 있을 뿐, 한국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자라고 있기에 여기가 내 나라다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해나갈 것이다. 독일에 있을 때에는 나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겐 한국이었구나라고 깨닫는다. 타인에게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상 아이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에 도착했으니, 이제 나의 한국 역할 놀이는 끝났다. 업무의 종료를 깨닫는 순간, 상실감이 컸다. 이제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받나 싶다. 주부, 엄마, 아내라는 역할을 즐거이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한 명쯤은 있을 테지만, 나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하면 할수록 더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세 가지 역할이라서 도망갈 구석을 찾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다.
남에게서는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매번이기 때문이다. 머릿속 생각은 세계의 석학들 저리 가라 싶을 만큼 조리가 있는데 음성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얽히고설킨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열에 아홉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성공 케이스는 어떤 것일까 하고 들여다본다면, 이야기를 들어줌을 베풀었던 이에게는 말이 잘 나온다. 내가 이미 해준 바가 있으니, 주고받고의 역할 놀이에서 상대에게 받을 몫이 있으니 들어달라 요구하기가 당당해진다.
가족들에게도 기대라는 것을 하고 있나 보다. 내가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주었다. 그렇다면 나의 소리도 잘 들어주겠거니 하나보다. 나의 고충에도 답을 주겠거니 하고 기대한다.
기대를 품고 기대어 본다.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내가 쏟아부었던 만큼, 가족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10년 전에 구두로 꿔 준 돈을 찾으러 돌아왔다. 그런데 꿔갔던 이는 잊었다. 화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꾸어주면서 내가 누렸을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셀프 위안을 일단 해본다. 저 사람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은 내 덕이야 라며 자화자찬해본다. 가족이 아니라면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며 잊으려고 노력해볼 테지만, 한 공간에 있으니 빚 독촉이 멈추지를 않는다. 꿔준 돈이 계속 생각나 살림이 팍팍할 때마다 심심하면 한 번씩 내 돈 돌려놔라 하고 싶다. 코로나라 온 가족이 한 집안에 있을 일이 잦으니 잊을만하면 원금이 생각나곤 한다.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집들이를 함으로써 주재원 생활의 스타트를 멋있게 끊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보다. 그만큼 그는 주재원이라는 역할 주어짐을 감사해했고 잘하고 싶어 했다.
내가 탕수육이 먹고 싶어, 집들이 메뉴에 탕수육을 넣어 보았다. 독일 돼지의 부위명과 육질을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 이가 잘 안 들어가게 딱딱하게 튀겨졌다.
술이 약한 남편이지만 본인이 호스트니 권하는 술을 다 마시고는,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손님으로 오신 법인장님과 법인 동료들은 닫아둔 방문도 뚫고 나오는 맹렬한 코 고는 소리를 30분 정도 듣고 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깨워야 하나를 고민하며 30분을 시계만 쳐다보았다. 호스트가 화장실 들른 길로 들어가 자버렸으니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야겠다. 술기운에 말이 많아지신 법인장님 건너에 앉아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가고 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6명의 손님을 집에서 치렀으니 기진맥진인데, 굳이 치우고 자지 않아도 될 터인데 어느새 치우고 있다. 남편이 부스럭 일어난 소리가 들려 화장실 가나보다 했는데, 화장실의 복도 정 반대편인 현관문 쪽으로 오더니 와인을 다 토해냈다.
집주인이 하얗게 칠해둔 독일 집 페인트 벽은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그가 안쓰러워야 하는데, 비위가 약한 탓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손에 물티슈를 쥐어주며 치우고 자라고 했다. 비몽사몽인 그는 주저앉아 치우다 바닥에 자꾸 누웠다.
그를 방으로 밀어 넣고, 그의 토사물을 치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에 깼을 때 이 집들이의 자취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설거지도, 거실 정리도 모두 하고 자리라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도 모르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가족이길 바라는 마음은 세상 밖으로 밀어내 볼까 한다. 내 가정의 평화 그리고 내 현업의 성공을 바라는 사심 가득한 글이다. 이미 빌린 돈은 잊은 채무자에게 시간이 흘러간 뒤에 빚 독촉을 해본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사정을 들어달라 구걸해 본들 소용없다는 깨달음 가득한 글이다.
기록으로부터 한결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오늘은 제법 부드러운 채권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평온한 일요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키보드에 앉았구나 하고 나를 바라보게 된다. 멋진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