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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 독일은 멜론이 맛있다.

by 호박씨

겨울 치고는 맑은 날이었다. 한국의 겨울을 이르는 말에 강추위란 말이 있다. 물기 없이 바싹 메마르다는 표현의 '강마르다'란 말속 '강'이 접두사로 붙은 추위다. 눈비 없이 세찬 바람이 불어 바삭하게 마른 추위란 말이다. 독일의 겨울이 해를 내어주는 날에는 왠지 모를 용기가 난다. 집 안에서 보면 강추위의 날씨 같아 보인다. 익숙한 날씨니 왠지 운수 좋은 날일 듯한 예감이 든다.


맑은 창밖 풍경을 보고 있다가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주워 담았다.

" 멜론 먹고 싶어."

그래. 멜론 사러 가자. 하우스 농사를 짓지 않는 독일은 겨울에는 과일 판매대가 썰렁하다. 남부 스페인,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멀리 배 타고 비행기 타고 온 과일들이 가판에 가득하지만, 그들에게서 생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독일에서 작황이 좋은 유일한 과일인 사과는 봄을 향해 갈수록 습기를 머금어 푸석푸석 해진다. 깨무는 맛이라곤 조금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먹을만한 것이 멜론이다. 속까지 노릇한 칸탈 로페 멜론, 참외를 뻥튀기 기계 속에 넣었다 뺀듯한 허니듀 멜론, 한국에서도 흔히 보던 머스크멜론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생명의 기운이 떨어지는 매대를 채우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겠다. 문제는 멜론의 사이즈. 가로 50cm 세로 40cm의 내 장바구니에 멜론이 들어가는 경우 다른 먹거리를 사기가 힘들어진다. 당시 아이들이 독일 가자 마자 주로 먹던 것이 snack mohren( 한입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세척 당근)이나 오이, 우유, 치즈였다. 이렇게 싸고 싱싱한 것은 처음 봐 라고 내지를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템들이다. 이 필수 아이템들도 사고, 멜론까지 넣고 나면 혼자 아이들 둘을 데리고 장본 것을 나르기가 쉽지 않다.

3월에서야 차가 생긴 나는 그때까지도 뚜벅이로 만 6세, 만 4세 아이들을 장 보는데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 가면 마음이 바빠져서 장보기가 쉽지 않았다. 마트에 있는 먹거리들이 대부분 낯설어 아이템마다 고르는데 시간이 걸렸다. 난생처음 보는 것을 시도해볼 때는 특히 아이들이 집어 들게 했는데, 혹시 맛이 없더라도 본인들이 고른 것이니 끝까지 먹으라고 우기려는 속셈이었다.


Edeka나 Rewe 같은 일반 마트에 가면 Aldi처럼 저렴한 마트에는 없는 어린이용 미니 카트가 있다. 마트를 처음 간 날부터 아이들은 이 카트와 사랑에 빠졌다. 카트 옆에는 어린이 자동차가 달려있는 카트 겸용 자동차가 있었는데 이 것은 둘이 서로 타겠다고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자동차 카트가 다 나가고 없다면 미니카트 한 대를 쥐어주었다. 둘이 서로 운전하겠다고 옥신각신하거나 분노의 질주 버전으로 미니카트를 둘이서 몰고 나가는 바람에 마트에서 애들을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당시 나에겐 미니카트가 참으로 유용했다. 미니카트에 담길 정도의 장보기면 내가 집까지 옮겨가는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양이다. 독일 마트는 야채, 과일과 같은 신선코너를 온도가 낮은 외부 가까이에 배치하여, 들어가자 마자가 과일 코너다. 일반 카트에 멜론을 싣고 난 다음, 다른 물건들을 카트에 넣다 보면 나는 조바심이 나곤 했다. 집에 다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무거울까 봐 미리 걱정한다. 미니카트는 멜론을 넣고 나머지 장을 보아도 카트가 금방 차 들어가니 장 본 양이 가늠이 되어 좋다. 미니카트를 아무리 꽉 채워도 집에 못 들고 갈 정도에 이르진 않는다.


그간 무거워 사지 않았던 멜론, 오늘은 이거 사러 온 거니까 싶어 미니 카트에 실어 본다. 기분이 좋다. 나만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아이들도 기분이 좋다. 멜론 탓에 방심했나 보다. 나는 아들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과일 코너에서 유제품 코너로 잽싸게 미니 카트를 몰고 가는 아들. 미끄러져 가는 미니 카트는 제동거리가 필요한데 아들은 속도를 낮추지 않는다. 아이와 카트는 미니카트와 키 높이가 얼추 비슷한. 몸집이 작은 독일 할머니의 뒤에 부딪혔다.

" 악!"

할머니 몸집은 꽤 작은 편이신데 소리는 크게 지르신다. 주변 사람들 모두 우리를 쳐다보고도 남을 정도의 데시벨이다. 나는 아들의 팔과 카트를 꽉 잡고 할머니에게 거듭거듭 사과한다. 사과를 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신다. 많이 아프신가 보다 싶기도 하다가 저렇게 소리를 지르실 정도면 많이 안 다치셨나 보다 싶기도 하다. 매서운 눈으로 큰 아이를 째려보는 할머니는 나의 사과를 아랑곳하지 않고 앙칼진 독일어를 아들에게 퍼붓는 중이다. 이럴 땐 내가 더 무섭게 아들을 혼내야 하는 건데.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초짜라 요령이 없었다. 카트에 실린 것은 멜론 한 개라 무게는 많이 안 나갔으나, 카트 높이가 할머니 키와 차이가 안 나는 데다 갑자기 뒤에서 받힌 할머니는 많이 놀라셨을 테다. 할머니는 놀람을 아이에게 다 쏟아붓고서야 유제품 코너를 뜨셨다.

다른 것도 사야 하는데 할머니랑 또 마주칠 까 봐 걱정이다. 아들이 혼난 건데 나의 사과가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머릿속이 하얗다. 멜론만 든 미니 카트를 몰고 계산대로 갔다. 오늘 장 볼 것이 적지 않았는데 그걸 계산하기엔 감정들이 뒤죽박죽이다. 두근두근한 심장을 부여잡고 계산을 마쳤다.


날이 쨍해도 해는 정말 금방 진다. 마트로 걸어올 땐 날이 밝았는데 장을 다 보고 나서니 날이 어둑어둑하다. 마트는 U-Bahn 우반은 지하철이지만 우리 동네 구역으로 들어오면 지상으로 다니는 기차다. 마트에서 집까지는 고작 두정거장이라 걷기도 하고 우반을 타기도 한다. 카트 사고에 기운도 없고, 날도 어둑해서 우반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두 아이들을 데리고 우반 정거장으로 와 전광판을 살폈다.

눈을 의심했다. 기차 도착까지 30분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독일어를 전혀 읽지 못해 무슨 일인지 감을 잡지 못했으나, 후에 알고 보니 우반의 연착은 흔한 일이었다. 지하철들이 얽혀있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야 연착이 있으면 다른 것을 이용해도 되지만 서울로 치면 소요산이나 의정부 같은 종점이 내가 이용하는 정류장이었으니 우반이 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기다려보았다. 숫자가 혹시 줄어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 담배 있어요? "

아이들과 정류소 의자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김나지움,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가 나에게 묻는다. 등에 맨 까만 가방, 검은 잠바의 차림새가 그들의 나이를 말해준다.

독일의 담배 가격은 한 갑에 최소 만원 정도, 한 개비에 평균 천원이 넘는다. 두 명이 물었으니 두 개비만 넘겨준다 해도 삼천 원은 삥 뜯기는 셈이다. 호박씨는 비흡연자라 담배를 갖고 있지 않다. 나오는 담배 한 개당 한 대씩이라고 협박한데도 나올 담배가 없긴 하다. 독일 도착한 지 며칠 안되었고, EC카드, 신용카드가 나오려면 한 달쯤 걸렸던 바라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장보고 남은 10유로짜리 몇 장이 다였다. 할머니의 퍼 부움으로 겨우 건진 멜론도 하나 있다. 나의 양손을 잡은 아이 두 명이 내가 가지고 있던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긴 하다.

운수가 최악인 날은 아니었다. 담배 없는데 하니 이 남녀 알았다고 물러난다. 알았다고 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아이들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플랫품을 내려와 집으로 향했다. 연착된 우반을 기다리기 위해 정류소에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날이 어둡지 않았더라면, 내가 아시안이 아녔더라면 담배를 묻는 그들의 질문 따위는 아무것도 아녔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카트에 받친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더라면 담배를 묻는 그들에게 담배가 얼마인지 아냐며 지금 나 삥 뜯는 거냐고 영어로 응수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더 당차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담배 피워서 쓰겠냐고 훈수를 둬보는 상상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어느새 집이다. 퇴근한 남편에게 멜론 좀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신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본다. 독일이 꼴도 보기 싫다고 그에게 말할 수는 없으니 멜론이라도 몰아세워본다. 날씨는 좋았으나 운수가 좋지 않은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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