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는 일본어 비라에서 나왔다고 한다. 비라는 영어의 bill을 일본어 식으로 읽은 것이구나 싶다. 계산서인 빌이 광고 선전물인 의미의 일본어 비라가 되고, 대남 선전용 인쇄물인 우리말 삐라가 되었다.
15살의 여중생인 호박씨는 초등생인 동생과 하굣길이다. 약국에 출근하신 부모님 대신에 친할머니가 집에 계신다. 친할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지, 동네 마실을 나가셨을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 전학을 와 할머니 댁도 동네도 학교도 낯설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중간에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이 있다. 오르막길 옆은 좁고 가파르며, 옆엔 교회 하나가 그 오르막길 오른쪽가에 좁게 비비적 자리를 잡고 있다.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길 끝에 바닥에 빨간색이 보인다. 점점 빨갛게 보인다. 선명해지고 나니 빨간 바탕 속 노란 글씨도 보인다. 그야말로 삐라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바닥의 삐라를 주워서 어디라고 갔다 줘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하며 동생의 얼굴을 보니 울상이다. 마치 손으로 삐라를 만지면 우리가 빨갱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방공 교육이 철저히 된 우리니 주워서 학교나 경찰서에 갔다 주는 것이 방공의 정답일 테다. 나와 동생은 잠시 삐라 앞에서 멈칫하더니, 못 본 셈 치려고 느긋이 삐라를 지나친다. 애라 모르겠다. 무서우니 일단 모른 척하자. 소심하기 짝이 없는 자매다.
2016년 가을, 나와 S는 동네 수제 버거 집에서 카푸치노와 버거를 여유롭게 먹고 있다. 나는 S가 독일에 와서 몹시 기쁘다. 그녀는 나의 두 번째 직장 내 옆 부서 직원이었다. 각자의 부서 막내라 그녀와 나는 부서는 달라도 자리는 바로 옆자리이다. 사는 동네도 같고, 나이도 한 살 차이이니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친해지는 데에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쁜 데다 스타일까지 너무나 좋다. 길쭉길쭉한 팔다리가 뭘 입어도 잘 어울릴 텐데, 무엇을 입어야 본인이 가장 돋보이는지 너무나 잘 아는 센스 넘치는 그녀가 한눈에 좋았다. 업무에는 도통 정을 못 붙이고, 대학생 마냥 그녀와 출퇴근을 같이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그녀와는 늘 콜라처럼 알싸하고 가벼우며 달콤한 기억들 뿐이다.
그런 그녀가 내가 독일 도착한 지 딱 6개월 만에 독일에 왔다. 난 정말 운이 좋다. 내가 독일 발령이 나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남편을 따라 독일에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했었는데 진짜 그녀도 올 줄이야. 그녀와 출국 전 전화를 나눌 때 나의 남편이야 들으면 아는 대기업 직원이고 우리야 주재 발령으로 나온 것이야 뻔한데, 그녀의 독일 도착은 그 목적이 미스터리였다.
그녀의 남편이 하는 일은 더 미스터리인 것이, 그녀의 남편은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늘 오후 3시가 출근시간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하며, 늘 그녀와 점심을 먹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그녀의 자랑은 늘 늘어졌다. 하루에 남편의 신용카드로 천만 원을 써도 아무 말이 없는 남편이라 했다. 집을 구할 때까지 스위스나 슬슬 돌아보겠다며 여행 기간 동안에 우리 집에 맡긴 그녀의 귀중품을 보관해 달라고 한다. 샤넬 가방이 자그마치 3개나 되었다. 그 또한 도착하자마자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의 명품거리인 Goethestrasse 괴테 거리에서 샀을 테다.
그녀의 남편이 부럽기도 부럽거니와 그의 직업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그녀에게 물은 적은 없었다. 그녀와는 시간들은 가볍고 알싸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녀가 오늘은 선을 넘는다.
" 언니, 요새 말馬때문에 골치 아프게 됐어."
말이라... 말을 수입하는 것이 그녀 남편의 직업일까? 비싼 유럽 말을 수입하는 것이라면 이제 그녀 남편 생활에 대한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말이라니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한다. 바닥에 붙어 있던 빨간 삐라 떠오르면서 열기가 얼굴 쪽으로 차오른다. 연일 한국서 들려오는 게이트에 대한 소식에 한인들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도 전화만 드리면, 독일말에 얽힌 비선 실세에 대한 소문을 말하시기에 바쁘시다.
" 나한테 사정 이야기는 안 해도 괜찮아. 머리 아플 텐데."
짐짓 그녀를 위하는 척하면서 도망가본다. 남편이 점심 전에 출근하는 날이면 혼자서는 심심하다는 그녀를 나는 종종 만났다. 같이 점심도 먹고 쇼핑도 했다. 그녀의 남편이 종일 없는 날은 그녀의 집으로 가 우리가 모두 그리워하는 탕수육 찍먹을 해 먹었는데, 그 맛이 한국서 먹던 맛 그대로라 나의 아이들은 그녀를 탕수육 이모라 불렀다. 3개의 샤넬 백은 뜯어먹을 수도, 뜯어먹어 본들 탕수육 맛도 안 난다. 독일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결핍된 것에 대한 공통분모를 나누며 함께 한국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혼자 한국으로 갔고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지내던 프랑크푸르크 시내에 위치한 고가의 월세 아파트에서 나가야 한다고 한다. 영어와 독어가 서툰 그녀는 이삿날 집주인과의 일처리에 언니가 와서 통역을 해달라고 한다. 냉큼 답하진 않았으나 당연히 그녀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한국서 출국금지가 된 상태며 그녀는 누구도 없이 혼자다. 그간 우리가 공유한 그리움의 시간들까지 도와주고도 남을 일이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가 말한다.
" 언니, 내가 100유로 줄 테니 와서 통역해줘요."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내 안에서 고개를 든다. 출국 금지된 남편을 둔 그녀에게 돈을 받고 그녀를 돕는다면, 삐라를 주은 내 손은 빨갛게 될 테다. 내 손이 붉게 물드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그날 애들 학교 행사가 있어서 안될 것 같아. 진짜 미안해. 대신 통역 필요하면 아무 때나 전화해줄래? "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의 소심함은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도 건너 한국까지 이를 태세다. 그녀가 혼자 독일인 집주인과 의사소통을 하고, 혼자 이사를 하기엔 쉽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급히 눈을 돌리며 못 본 척이다. 삐라 본 듯 피하는 나다.
말 Pferd의 독일어는 알파벳 조합이 자음 P와 자음 F가 연달아 있는 신기한 형상이다. 영어에는 없는 조합이라 처음 단어를 보고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나, 제대로 쓰인 건가 한참을 쳐다보았다. 발음은 여느 독일어와 같은 방식으로, 소리 나는 그대로 읽어 페아트라 읽으면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독일어 중 나에겐 삐라마냥 빨간 단어가, 마주치면 눈 마주치기 망설여지는 단어, Pferd페아트다. 읽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단어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