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밖에 나가면 내 나라가 보이고, 생전 처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하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보인다. 지금의 첫아이 임신 전에 계류 유산이 있었던 탓에 첫 아이 임신 소식 후 피가 비치자 나는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갔다. 그리고 한 달을 꼬박 집에 누워있기를 권고받았다. 또 아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 나는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정답에 맞춰 행동했다. 정답보다 더 옳게 행동하려 했다. 갖고 있던 것을 잃는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누워있으려니 성질이 낫다. 남편을 너무나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는데, 나에겐 애정이란 감정은 한 톨도 없고, 원망만 가득했다. 이 낯선 상황 속 미움 가득한 나는 내가 접하기에도 낯설다. 남편에겐 묻지도 않고 그만둔 회사였는데, 막상 남편은 외출도 하고 출근도 하는데 나만 고생한다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천번씩 들었다.
이런 마음은 첫아이가 나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만인이 인정해주는 복지 좋고 여유로운 대기업에 다니는데, 나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독박 육아의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한집에 있는데 왜 이렇게 불평등한 것일까에 대한 풀리지 않는 불만은 계속해서 나를 뒤흔들었다. 이 감정은 아이들이 아기를 벗어나자, 유아 육아가 자녀양육으로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상황이 바뀌자 감정은 사라졌고, 원망의 대상이던 남편을 바라보던 나의 시각도 달라졌다. 남편은 바뀐 점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독일에 도착하자 이 감정이 종목만 바꿔 다시 출현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침마다 산책 겸 장보기를 갔다. 동네 슈퍼 Edeka에서 장을 보는 것을 1시간여의 산책의 마지막 코스로 잡는 의식이었다. 혼자 걸을 수 있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게 혼자만의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에데카의 계산대는 담배를 팔며 교환업무를 담당하는 오피스 겸 카운터까지 포함하여 총 5개다. 에데카는 리들이나 알디 보다는 고가 제품이 많은 슈퍼여서 저렴한 슈퍼보다는 소비 환경이 잘 갖춰진 편이다. 일단 저가 슈퍼에는 없는 화장실이 있으며, 카운터 수도 저가 슈퍼 대비 배가 넘는다. 슈퍼에 화장실이 있음에 매번 감사해하곤 했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적잖이 놀랄 바이다.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다발이니 다음에 풀어내도록 하고 일단 카운터 이야기로 돌아온다.
9시는 8시에 오픈하는 에데카 슈퍼로써는 러시아워는 아니다. 9시의 이른 아침 주 방문자는 연금생활자로 생활의 여유가 있으며, 아침잠이 적은 독일 할머니들 정도다. 따라서 에데카 카운터는 2개 정도만 열려 있는 상태이다. 이 두 카운터 계산원들의 근무 시간도 근무 요일도 일정한 지라, 나는 이제 계산원들의 얼굴을 외우게 된다.
그녀는 독일인이다. 짙은 머리색, 동그래서 귀여워 보이는 얼굴형이 전형적인 독일인과는 달라 유럽이나 터키 등에서 그녀의 먼 조상이 또는 그녀가 부모가 독일로 이주해 왔겠거니 짐작해본다. 슈퍼에서 계산을 하는 행위는 하루 중, 유럽 생활 중 내가 하는 의사소통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계산대에 가기 전에 늘 긴장을 하곤 했다. 나를 긴장으로 무장하게 해 준 가장 큰 역할을 해 준 것이 에데카의 그녀다.
유럽에 사는 나에게 일상은 일상일 뿐이니, 하루 종일 긴장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를 처음 대하던 날 에데카는 나에게 익숙한 곳이니 긴장을 적잖이 풀고 있었던 내가 느껴진다. 슈퍼가 등급이 있겠냐만은 다른 슈퍼 대비 고가의 물건을 파는 슈퍼가 에데카다. 나에게는 에데카에서 장 볼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받는 남편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도 나름 고가 주택 인접 지역이며, 비싼 등록금을 내야 다닐 수 있는 국제 학교 엄마들이 늘 방문하는 곳이 에데카이니 나는 그들에게 인터내셔널 한 인간으로, 주재원쯤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랬나 보다.
하루를 산뜻하게 출발하고자 마음먹고 오늘의 산책 의식을 마무리하는 나는 사실 에데카 계산대에서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으려고 한다. 나의 하루를 위해서 말이다. 카운터가 두 개이니 두, 세 명의 사람들이 계산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에게 계산하면 어떠리 하며 아무 줄에나 서서 계산원을 바라본다. 사람들에게 'Hallo 안녕하세요', 또는 'Morgen 좋은 아침입니다'를 건넨다. 내 계산 순서가 되자 그녀는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인사를 하지 않는다.
인사 안 하는 것쯤이야 뭐 그리 대수이겠는 가만은 내 머릿속은 그녀의 시선과 눈빛에 대한 해석으로 가득하다.
2019년 11월 남편의 한국 귀임 발령이 나고, 남편은 사무실 독일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파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들 5명은 모두 독일인 여직원이라고 했다. 법인장님과 독일인 여직원들로만 구성된 그날의 저녁 식사는 무사히 잘 끝났다. 5년 간의 독일 생활 동안에 집으로 수 없이 많은 외국인들을 초대해서 밥을 해먹인 나라 5명쯤은 사실 일도 아니다. 그들은 내가 차린 음식을 남김없이 해치워주었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산 고가의 나무 장식품을 남편과의 석별의 선물로 나에게 안겨주고 갔다.
나의 독일 집 부엌에서 바라보는 5명의 여직원들은 에데카의 계산원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젊으며 살집이 있고, 반짝거리는 영민한 눈을 하고 있으며, 짙은 색의 머리칼을 갖고 있다. 그들은 남편과 긴 시간 함께 일했고, 남편을 존중하며 간간히 유머를 섞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그들에게 남편은 함께 일한 말 잘 통하는 동료이지 아시안이 아니다. 남편은 남성도 한국인도 아닌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이며 친구로 그들 사이에 어우러져 있다. 남편이 부럽다. 그에게만 주어진 저 시간들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진다.
에데카의 계산대에서 나는 한국인이다. 아시안 여성이다. 그녀는 나에게 간단한 아침 인사나 눈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Hallo를 해보았다. 처음에는 그러했다. 나 여기 있고 나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독일은 여전히 일상에서 현금을 주로 사용한다. 현금을 내야 하는 경우 그들이 말하는 독일어 숫자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후에 나는 현금을 쓰지 않고 현금과 같은 체크카드를 사용한다. 그 당시에는 현금을 사용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잔돈 던짐을 받기 전이였다. 상품이 놓이는 자리에 잔돈을 던져 놓는다. 내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방금까지 장본 것들을 추스르던 내 앞에 돈을 툭 내려놓는다. 누구에게나 하는 Chuss 잘 가요 또한 없다. 나에게만 잘 가요를 하지 않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나는 여기 왔다가 간 적이 없는 사람 마냥, 아무것도 산 적이 없는 듯이 에데카에서 사라질 예정이다. 장 보는 것이 끝났으니 나는 홀로 슈퍼 문 밖으로 나설 테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장본 것을 들고 걸어갈 것이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를 쥐고 있다가 퇴근한 남편에게 말한다. 미묘하고 사소한 일상을 그에게 잘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감정과 경험을 정리하고 나눌 상대가 나에겐 남편뿐이니 말이다.
"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그럴 때는 그냥 무시해."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른다. 찰나를 그와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나는 그에게 털어놓았고 그는 들어주었다. 그러니 그의 해결책을 따라보자.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내내 그냥 그녀를 무시해 보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 감정이 해소되진 않는 것이다. 그녀를 붙들고 왜 나에겐 인사하지 않냐며 나는 투명인간이냐고 멋들어진 한국어로 쏘아붙이지 않는 이상, 나의 상처는 위로받지 못할 예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녀 외에 남은 다른 한 계산대를 늘 이용하며, 그 계산원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않고 인사해주길 바라는 것이 뿐이다.
독일인인 동료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관계를 맺는 시간들을 갖은 사람은 내 남편이다. 나는 집 밖에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부터 한국인이다. 나는 한국인도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검은 머리의 동북아 인일뿐이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사실 관심 없다. 그런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투명인간 취급은 안 받으리라. 남편에게 아무리 토로한들 그는 공감과 해법을 나에게 선사할 수 없다. 해결은 내 손으로 해야 한다.
복수를 해야겠다. 외침이라도 질러내야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독일에서 살아야 할 시간은 수도 없이 많이 남아 있다. 내 존재를 무시하는 한 독일인 때문에 에데카 슈퍼를 가지 않을 수는, 산책을 하지 않을 수는, 내 하루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사명감도 있었다. 나는 이제 독일어도 다 읽을 수 있고, 영어도 독일인만큼은 할 수 있으니, 나를 포함한 아시안을 뭉뚱그려지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하는 이들에게 한 개의 돌멩이라도 던져 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던진 돌멩이는 그들에게 파도는커녕 물결 하나조차도 일렁이게 만들 수 없을 테다. 그래도 던져는 봐야 내 속이 편하고, 던져봄으로써 독일을 사랑하고 싶었다. 남편에게는 저리도 따뜻한 독일이 왜 나에게만 차갑단 말인가? 그러니 한 번의 돌팔매라도 해서 내 존재를 알려 따뜻함을 구걸하고 싶다.
돌팔매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나에게 복수의 기회가 온다.
"혹시, Edeka에서 Payback 해봤어요?"
페이백이란 20유로 이상 구매하는 경우 원하는 현금을 구매 대금에 합쳐 결제하고 ATM처럼 현금은 주는 방법이다. 내가 100유로의 현금이 필요한 경우, 20유로어치 물건을 에데카에서 구매한다. 120유로를 결제해달라고 계산원에게 말하면, 20유로는 장본 물건값으로 결제되고, 100유로는 현금으로 주는 제도다. 현금 사용이 많은 독일은 ATM 기계나 은행 지점이 많지 않아 페이백 서비스를 시작하지 주부들에게 이 서비스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익히 나는 이 서비스를 사용해서 남편에게 돈을 뽑아오라는 말을 해야 하는 수고와 은행으로 가야 하는 시간을 덜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오늘 나와 점심 식사를 한 K는, 유럽은 처음인 데다가 독일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 영어, 독일어도 힘들어 페이백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마침, K와 점심을 먹은 곳이 에데카 옆 이태리 음식점이었다. 나는 지금 페이백 하는 법을 알려 드리겠다고 에데카로 K를 데리고 갔다.
점심시간이라 5개의 카운터가 모두 열려있다. 독일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점심 값이 부담스러운 이들이 많아 가볍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오븐용 파스타나 각종 샐러드가 많이 구비되어있다. 한국의 편의점이 하는 역할을 슈퍼가 한다고 보면 되겠다. 편의점이 없는 유럽은 슈퍼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점심시간이 슈퍼로써는 가장 바쁜 시간 중 하나라 봐도 되겠다.
1시가 넘은 시각, 아침 시간에만 있는 줄 알았던 그녀가 카운터에 있다. K가 말한다.
"저분은 엄청 불친절하던데요. 우리 다른 줄에 서요."
언어가 되지 않는 P가 하는 말에 나는 뜬금없이 울컥했다.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이가 느끼는 감정이 나와 같은 것이다. 불공평하다. 나는 저 계산원이 알아들을 수 있게 어떤 의사 표시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P처럼 순순히 그녀를 피하고만 있다. P와 나는 계산원에게 1도 다를 바가 없다. 성가시게 자꾸 눈에 띄는 머리 검은 아시안이다.
" 괜찮아요."
속에서 뜨끈한 것이 차오르면서 나는 P를 줄 세웠다. P를 위한답시고 온 것이었는데, 나는 P앞에서 굳이 복수를 해야겠다 싶다.
P의 계산 차례다. 역시나 그녀는 힐끗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지 않는다.
P의 물건을 다 계산하자 그녀가 우리를 쳐다본다. 얼마인지 말해주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어차피 체크카드로 할 것이니, 어차피 얼마인지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할 거니까.
" 100유로 페이백 해줘요."
나의 독일어를 잘 알아듣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표정을 내게 보였다. 눈을 돌리며 구시렁거렸다. 처음부터 말할 것이지 결제가 다 끝나고 나니까 이제야 말한다며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웅얼거렸다. 결제를 취소하고 100유로가 더해진 결제 버튼을 누르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한국어로 말한다.
" 어차피 해줄 거면서 더럽게 뭐라 하네 진짜."
100유로의 현금을 내미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내뱉은 나의 한국어.
나는 보았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을.
그녀는 내 한국어를 알아들었다.
" Danke schon. 고마워. Chuss. 안녕."
다시 독일어로 바꿔 말한다. 그녀에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너의 친절에 고마움도 느끼며, 너의 불친절함에 절망도 하는 그런 사람이란다. 그러니 나는 네가 방금 나에게 해준 페이백에 고마워.
그녀는 내 한국어에 답이 없다. 알아듣는 P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 언니, 앞으로는 기분 나쁜 일 있으시면 한국어로 욕하세요."
잘난 체다. 그간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면서 마치 복수의 전문가인 양 뽐내는 호박씨.
나는 인간이다. 독일인과 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잘난 체하며, 슬픔과 절망에 눈물짓기도 하는 사람이다. 하루의 시작에 맑은 공기를 주는 독일의 숲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또 무탈한 범사로 채우고 싶어 하는 인간일 뿐이다.
나의 한국어 돌팔매는 에데카 독일 계산원의 삶에 한낱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흘러간 음성이었겠다. 하나 나는 여기 이렇게 그날의 1초도 놓치지 않고 기록할 수 있는 안 투명인간 호박씨다. 나만 고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불공정함은 하나도 겪고 싶어 하는 자기애의 끝판왕 호박씨이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