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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엔 발렌타인데이를 생각한다지요.

by 호박씨


로마의 성인 밸런타인은 징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황제의 명을 어기고 결혼을 주선했다고 한다. 독일서도 이 날은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날이었다. 초콜릿을 주고받았던 20년의 모두를 젖히고 기억에 남는 밸런타인데이는 2017년 2월 14일이다.


큰아이의 국제학교 2학년, 금발의 그림 같이 예쁜 분이 Homeroom 국제학교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6개 반의 2학년 담임 선생님들 리스트를 사전 조사해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인 교실에 배정받았으면 좋겠다 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Ms. Anderson이 아이 담임이 되어 적잖이 당황했다.

미국계 국제학교는 1학년까지 Primary school 유치원 소속이라 2학년이 Elementary, 초등학교 첫 학년이다. 그러니 아이는 어땠을지 몰라도 엄마는 어마어마한 긴장을 했다. 아이의 한국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는 이미 2015년 1월 한국을 떠나오자마자 친정으로 옮긴 주소지에 배달되어왔다. 아이의 실제 초등학교 건물 입성은 2016년 8월에 되었으니, 내 초조는 묵을 대로 묵었다.

앳되 보이는 새 선생님이라니, 선생님 자신도 학교와 타국이 버벅되지는 않을까? Open house 데이에 들어보니 결혼을 하면서 독일로 오신 것 같으니, 새 학교에 새 나라도 모자라 새로운 관계라니, 의심 어린 눈초리로 앤더슨 선생님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같다. 하루가 끝나고 친구를 찾아 놀이터에서 죽치고 있던 우리들 곁으로 앤더슨 선생님이 지나가자 눈이 밝은 작은 아이가 졸졸 선생님을 쫓아 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큰아이는 뻘쭘하니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 선생님은 오픈하우스에 한번 봤을 작은 아이를 기억한다.그녀를 향한 의심은 그만해도 되겠거니.

엘레멘터리는 처음인 데다 첫 아이를 보냈으니 모르는 게 많아 그녀에게 질문 세례를 해대도 그녀는 긍정으로 답한다.이 학교가 나도 처음이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알아보겠다. 솔직하고 밝은 이 말에 반한다. 초등 첫 담임 복이 터졌다 싶다.


학부모 상담이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신다. 내용은 유치하지 않고, 깊은 울림이 있으며, 문장은 단순한 책이 내가 생각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Cynthia Rylant의 'Henry & Merge'였다.

국제학교 2년 차, ESL ( English as Second Language) 졸업을 하고 싶어 안달 난 아들에게 맞는 책을 망설임 없이 권한다.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헨리, 그리고 아이만 한 사이즈의 큰 개 머지.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이고 간단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영어는 이렇게 삶을 그리는 창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ESL을 그럴듯하게 일찍 졸업하는 것, 아이가 남보기에 잘해내기에 집중했었던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선물한 책이다.


국제 학교 1년의 한 중간인 스키 브레이크 언저리의 밸런타인데이였다.

아들이 작은 종이를 한 개 들고 온다. 선생님이 정해준 반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이 친구의 장점, 사랑할 만한 점을 알려야 하는 것이 쓰기의 포인트다. 밸런타인데이 카드이기 때문이다. 매년 밸런타인데이 행사 시즌이 되면 달달한 것을 먹는 준비를 했었는데, 한국에서 우린 이 날 실컷 단 것을 먹을 준비를 했었던 것 같은데, 손바닥 만한 빨간 종이에 그 사람의 빛나는 면을 찬찬히 생각해서 채워 넣어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그려내야 하는 이는 브라질 여자 아이 M. 선생님은 부러 다른 성별끼리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정해두셨다.

종이를 앞에 두고 식탁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는 M이 가진 세 가지의 멋진 점을 적었다.


다음날 아이 손에는 반 여자아이 E가 쓴 아이에 대한 칭찬이 있었다. 수학을 잘하니 스마트하다. 유머가 있다. 세 가지를 써서 건네었는데 돌아온 건 두 가지니 본전은 못 챙겼다만, 어제 아이가 쓰던 빨간 종이와 같은 종이는 반 접혀 아이들이 가위로 오린 핑크 하트가 두셋 붙여 있는 모습이다.E 도 어제 내 아이를 생각하는 저녁 시간을 갖었으리라. 관심 어리 시선으로 반 친구를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앤더슨 선생님만의 마법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오는 기억들이 나를 찾아올 때 온다. 내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답이기보단 오답일 확률이 더 많다. 사람 보는 눈 좀 있지, 세상 좀 알지 하며 어깨에 들어간 힘을 이젠 빼보자 싶다.

2년 후 작은 아이가 2학년이 되어 앤더슨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길 6월, 1학년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하던 날부터 노래를 불렀다. 8월 새 학기에 앤더슨 선생님은 출산 휴가로 자리를 비우셨다. 귀한 인연은 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귀한 것이다. 나를 찾아왔을 때 귀하게 여기자, 부디.


동생이 새벽2시까지 만든 화이트데이 아깽이들. Sold out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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