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인간 하정우'를 이제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다 책이 출간된 연도를 보고 놀랐다. 2019년이라니.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감정선이 섬세한 '인간 하정우'를 발견했다. 하정우 씨는 기꺼이 자신은 남성이라 불리기보단 인간으로 불리길 바랬다. 대립의 시각이 아니라, 공존의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내 마음 같은 문장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남과 여의 문제에 대해 부드럽게 말하는 유명인의 영민함이 느껴져 질투가 났다.
독일에 있던 2018년, 미투 운동이 한국에서는 한창이었다. 꿈틀거리는 폭로의 기운을 대륙 건너에서도 초록창 뉴스의 스크린을 통해 느꼈다. 포털로 뉴스를 보던 독일 시간 오후 3시는 한국시간으로 오전 7시 언저리다. 친정엄마의 기상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하면 한 시간 정도는 편안하게 그 간의 서로의 생활에 대해 나눌 수 있다. 웬일로 엄마가 먼저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약국의 조제실은 약사 한 명이 일할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조제하시기 편하게 약통을 꺼내 주려고 옆에 서있다 보면 몸이 부딪히는 일이 생기기 일쑤다. 직원이 약사인 아버지가 조제실에서 불편한 접촉을 했다며 그만두겠다고 울며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엄마의 깊은 한숨이 느껴졌다. 아빠를 도와 조제 보조업무를 1년 했던 나로서는 어떤 상황일지 그려졌다. 한 사람의 공간에서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조심하지 않으면 닿게 되는 일이 생긴다. 약사 업무에만 집중하는 담박한 성품의 아버지를 아는 엄마와 나는 직원의 오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엄마에겐 가혹한 일이다. 아빠는 동료이기도 하지만 남편이기도 하니 말이다. 직원은 같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이였으니 엄마 표현으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대화였다고 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엄마가 안정제를 들이켜고는 겨우 내게 사정을 털어놓는다.
엄마는 끈기 있게 직원과 소통했다. 직원은 파트타임 업무를 중단하지 않고 6개월 정도를 더 근무하다가 월급을 더 주는 다른 약국으로 옮겼다. 엄마가 아빠에게 주의를 주고 자세히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그 일은 친정에선 입 밖으로 내기 꺼려지는 일이다.
나를 약국 보조 업무로 채용하고 나서, 아빠는 내가 독일로 가고도 경력단절 주부들에게 파트타임 업무를 맡겼다. 아빠는 딸의 고민을 해결해 주듯, 그들에게 가정 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여럿 제공할 수 있음에 기뻐했다. 지금도 아빠가 스스로에게 가치부여를 하는 것의 일 순위가 주부 일자리 창출이다.
국제학교에는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타국에서 아이를 케어하는 아빠들도 종종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아빠들은 적극적으로 학교 자원봉사와 행사에 참여하는 편이다. 양육을 하는 아빠들을 접하는 일은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깨알 재미가 있다. 창처럼 그들을 들여다보면, 엄마라서 여성이라서가 아닌 부모라서 하는 행동과 말을 관찰할 수 있었다. S와 P는 큰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입학을 한 남자아이들이었는데 마침 아빠가 아이들 학교 적응기에 학교로 연일 등장해서 나의 눈 카메라에 포착할 기회가 많았다.
S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S의 아빠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S의 엄마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S의 엄마는 외국계 회사의 법인장이었고 독일에 있는 기간 동안 부사장으로 승진도 하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S의 어린 동생이 유치원에 입학하자 S 엄마가 셋째를 낫겠다고 했다. S 아빠는 흥분하며 사정을 토로했다.
'나에 대한 배려는 1도 하지 않는다.' , ' 이제 나도 내 시간을 좀 가시려고 하는데 저렇게 방해를 한다.'며 나를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S 아빠는 본인의 직업을 프리랜서라고 당당히 이야기했다. 양육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자신은 언제든 작사가의 일로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S 아빠를 보면서 내 마음을 다잡곤 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이 시간들 속에서 나의 능력을 불안해하지 말자.', ' 움츠러들지 말자' 했다. S 아빠는 자신이 얼마나 고되고 벌 받는 듯한 독박 육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늘 소통하고 싶어 했다. 수다쟁이 S 아빠였다. 이만큼은 할 수 있고, 이만큼은 못한다고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정의 내리곤 했다.
P는 호날두 저리 가라 싶을 만큼 인물이 좋은 아르헨티나인이다. P의 엄마는 햇살을 머금을 색의 금발에 따뜻한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미 미녀였다. P의 엄마가 스페인어만 구사하고 영어에 자신 없어서 유치원 출입을 하지 않았다. P 아빠는 방과 후 수업, 설명회 등에 연신 나타났다.
첫 방과 후는 단연 축구다. 독일 왔으니까 축구, 남자니까 축구 이 뻔한 레퍼토리밖에 아는 것이 없던 호박씨를 알리려니 부끄럽다.
방과 후에 아이들을 넣어두는 이유는 정규 과정이 일찍 끝나는 국제학교에서 부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자기 계발을 위해서 아이가 방과 후를 신청하겠다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재 첫 1,2년에 타국에서 낯선 학교에 한두 시간 더 있기를 선택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어른들의 시간 외 업무에 대해서는 인권 박탈 수준으로 공론화된다. 반면 아이들의 방과 후는 부모의 그럴싸한 이유, 아이들을 위한 다는 이유로 박탈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었기에 후회막급이다.
부모의 자유 시간을 위해 아이들이 방과 후 축구를 하고 있으니, 축구 교실 앞에는 미리 와서 기다리는 부모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 천금 같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마음은 같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끔 나같이 아이를 축구에 넣어두고도 불안해하는 소심한 부모도 있다. 축구 수업은 1시간인데 30분 전부터 둘째를 데리고 강당 앞에서 아들이 축구를 즐기는지 궁금해 염탐을 할 생각이었다.
텅 비어있을 강당 앞 벤치에 신입생 아빠구나 싶은 느낌이 오는 뒤통수를 하고 있는 P의 아빠가 있었다. 동질감을 느껴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 우리 얘도 저기 있어요."
하염없이 강당 밖에서 유리 너머 아이를 보는 그에게 다가간 순간. 아, 깜짝이야! 디즈니 인어공주의 왕자님 ( 왜 왕자 이름은 늘 기억을 못 할까) 같은 사람이 초승달 눈을 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뒤통수도 얼굴만큼 잘생겼었더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말을 걸었을 터이다. P 아빠의 잘생김에 한 방 먹었다.
" 국제 학교 온 지 한 달 됐어요. 아들이 축구는 엄청 좋아하는데 말이 안 통할까 봐 걱정이에요."
생각은 다 같다. 엄마건 아빠건 성별에 상관없이 우리는 자녀를 기르며 같은 생각을 한다.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서로를 북돋워주고 우애를 키우던 마케도니아 병사들처럼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동질감을 갖게 된다.
P 아빠가 건네는 말속에 담긴 감정은 나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 아이가 새로운 공동체를 금방 적응해가길 바랬다. 아이의 마음을 읽기를 소망했고, 적응 과정이 너무 힘들지는 않기를 기도했다. 아빠도 엄마와 같다.
서구의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그 짐이 무겁겠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한국 남성보다야 자유로울 것 같다. 그들에겐 말이라도 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 표현을 할 수 있음에 그들은 한국 아빠보다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싶다.
남편은 말 못 하는 벙어리처럼 아이가 어떤지 묻고 싶어도 대화의 단추를 열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아이에 대한 사랑을 파묻어 두고 살며, 세상에 던져질 아이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지도 모르겠다.
여성이라서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 자꾸 오는 요새다. 딴생각을 해댈 자유와 울고 웃어도 되는 자유가 있는 여성이라서 다행이다. 엄마라는 이름하에 삶에 강인한 남성성을 갖출 기회를 잡아챌 수 있어서 행복하다. 다시 태어난 데도 난 여자로 태어날 것이다. 엄마가 되어 남성과 여성을 갖추고 싶다. 욕심 많은 호박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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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uple, 프란스 할스,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