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의 마지막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롱샹 교회였다. 오늘 만나고 온 건축가 승효상의 드로잉들을 보며 떠올린 것이 롱샹 교회였다. 롱샹 교회도 승효상 작가의 작품도 보지 못하였음에도, 롱샹 교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달 내내 토요일마다 전시를 보러 갔으나 아이들은 한 번도 데려가지 않고 혼자 이길 자처했다. 나를 경계자로 내몰아 즉시하고,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려고 했던 행동이었구나 싶다.
경계 밖의 자라고 일컫기엔 지금은 미미한 존재이지만, 적어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느꼈다. 밀려 밀려 떠밀려 가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 암담했다. 어떤 뒷모습을 보여야 자식에게 어미가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해 좌절감을 느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보았다. 건축가의 전시에는 아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다. 지난 한 달 간의 여정을 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내몰아 맞닥드린 벌판에서 느끼는 고통은 경계 안의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고 인간적이게 한다. 진짜 건축가는 공간으로 서성임과 성찰의 시간을 만든다.
유럽에서 건축물 속에서 공간의 온도, 시간 그리고 소리, 냄새를 체험하게 된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면서 부랴부랴 다니다 보면 느낌과 영감은 간데없고 지식으로만 건축물을 알아차리기에 바빴다.
갤러리에 들어가자마자 아들이 가우디를 떠올린다. 가우디의 이름은 모르면서 ' 스페인에서 그.. 엄마.. 거기... 알지?'
응. 알지. 알다마다.
푸아그라 만들듯 아이의 뇌를 벌려 지식만 집어 넣은 어미에게 아이는 기억을 내민다. 고맙다. 아이가 끄집어 내는 스페인에서의 시간들이 압구정동의 갤러리에서 시공간을 넘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우리는 한참 그 날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까사 밀라 옥상에서 우리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숙연함을 갖추라고 말하는 이 공간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몰랐었다. 아이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은 것은 , 아이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까사 밀라 내부에 전시되어있던 수없이 많은 가우디의 드로잉을 보면서, 가우디의 철학을 염탐했다. 사진 찍기 바쁜 관광객들 사이에서 드로잉들 하나도 놓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하도 집중하고 드로잉을 보는 덕에 덩달아 한참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산, 불, 바람, 물, 나무, 자연의 모든 것을 담아낸 가우디는 조물주가 되고 싶었나 보다 했다.
승효상 건축가의 유튜브에서 수守졸拙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졸이라는 단어는 거칠고, 서툴며, 질박하다는 의미이다. 시민을 압도하는 아파트라는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가 작품을 졸拙이라는 단어에 담으려 한다. 60억의 신고가를 경신하는 H 아파트가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압구정의 작은 갤러리에서 승효상 건축가는 '불안'을 이야기한다.
집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집은 목적이 아니다. 삶이 목적이다. 부동산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오늘이 내 삶의 목적이다. 하루를 어찌 살지에 대한 생각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목적을 잃은 채 **동에 산다고 **아파트에 산다며 타인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어떻게든 위안받아보려고 했다. 그러니 집에 있기 싫어 카페로 간다. 생각하고 사색하고, 소통하고 싶어서 닭장 같은 집 밖으로 나오려고만 한다. 캠핑, 카페, 전시를 가도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어쩔 수 없다지만 진짜 어쩔 수 없는 건지 궁금해진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이 아파트다. 공동건축물을 통해서 기계를 예찬하고 모더니즘을 찬양하던 르 코르뷔지에는 2차 대전을 거치며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내동댕이 친다. 기계를 위한 건축이 아닌 ,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한다. 삶과 죽음, 영생과 영혼을 위한 공간을 무신론자가 짓게 된다. 그리고 그는 위대해진다.
100년 전 르 코르뷔지에가 버린 건축 디자인, 아파트에서 40년을 살았다.
잠 안 오는 밤 , 아들이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다 자신의 드림하우스를 그려냈다.
"엄마 나는 말이야, 아침에 해가 잘 들어오면 일어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들을 거야.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갈 거야. 일찌감치 퇴근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쉴 거야. 일터가 멀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 좋아. 난 가구는 필요 없어. 침대만 있으면 돼."
cozy 하고 natural 한 mute의 공간이 그려졌다.
승효상 건축가님의 드로잉과 모형을 신나게 보는 중2가 꿈꾸는 삶을 응원하려면 어찌 살아야 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