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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에게 feat. 카놀라유

by 호박씨


유채꽃의 계절이 온다. 끝도 없이 펼쳐진 유채꽃을 매해 즐길 수 있었으니 복 받았다.

노랑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매력이 있는 색이다. 허니 머스터드나 커스터드 크림처럼 맛깔난 색이기도 하고 먹을 수 없지만 배부르게 만드는 황금의 컬러다.

독일에서 처음 만난 노랑은 유채꽃은 아니다.

난민처럼 이민가방과 트렁크를 구겨 넣은 공항 택시 속에서 바라본 달. 무시무시하게도 눈을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큼직한 보름달은 지평선에 닿을 듯했다. 위도가 다르니 달 크기도 다르다. 뭐든 큰 나라니 달도 크다. 훤하네 하고 바라보기엔 붉다. 레드 자몽처럼 핏빛 어린 누런 달. 뭉크 그림처럼 마음을 불안으로 물들인다. 첫날의 아슬아슬함이 하늘 가득 걸려있어 낯선 나라가 내 속마음을 읽고 나를 얕볼까 더럭 겁이 났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살아지더라.

무섭게도 누런 달이 걸려있던 들판은 여리고 보드라운 유채꽃들이 주인이었던 것을 봄이 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 둘 다 국제학교에 무사히 등교를 하고 잠시 짬이 나면 시립이나 구립 주민 운동센터를 찾아다녔다. 저렴하게 독일어로 방과 후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내리라 싶어 돌아다니다 보니 레몬색 들판이 친구처럼, 그림처럼 창밖에 펼쳐져있었다.

그들은 관상용 꽃으로 심어진 것이 아니다. 종자유를 짜내기 위한 작물이다. 필요로 심긴 것이라 빈틈없이 빽빽하게 들을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주재원으로 일하려고 간 유럽이다. 영어 해내야 한다고 다니던 국제학교였다. 주어진 기간 안의 성과라는 것을 거둔다며 경주마처럼 주변 돌아보지 않고 달리던 삶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나도 별 수 없이 한 떨기 유채꽃 같은 들판의 생명이다.

미친 물가에 앱 장보기를 하면서 백 원, 십원 단위까지 살피는 요새다. 식용유는 백* 튀김유가 제일 싼대, 자꾸 카놀라유를 담는다.

봄이라서 그런가 보다. 혼자여도 함께인 듯 마음이 가득하게 해 주던 유채꽃들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노랑노랑 한 카놀라유를 사고 부엌 한편에 세워둔다. 유채꽃 꽃다발 보듯 식용유를 바라보며 주부의 시간 속에 자아라는 단어를 꽂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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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chael Hel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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