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친할아버지는 그 만의 화장실 사용법이 있으셨다. 작은 볼 일을 보면 한 번만에 물을 내리지 않는다. 두 번은 봐야 물을 내릴 수 있다. 2022년에 이 사용법에 대해 듣는 이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릴 테다.
30년 전 어린 할아버지 댁 화장실에서 나는 지린 내음은 싫어도, 할아버지의 실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아까웠다. 한 번 쓰고 사라지는 물이 보이지 않는 어디론가 가고 , 다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맑은 물이 되려면 얼마의 수고로움이 들어갈지 계산해보곤 했다.
그럼에도 남의 오줌 위에 볼일 보는 것은 싫었다. 남이 아닌데도 싫었다. 할아버지 몰래 물을 내리고는 볼 일을 보곤 했었다.
독일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은 비싸기로 유명하다. 주변 주재원들이 주재 기간 내내 아이들 탕목욕은 아니 될 일이라고 미리 겁을 주었다. 탕목욕을 하면 시간도 후딱 가니 좋고, 허리 구부려 아이들을 씻기지 않아도 된다. 한참을 놀고 나면 구석구석 때가 벗겨지니 풀어둔 거품 목욕제의 거품만 헹궈 버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매일 씻으니, 열심히 씻시지 않아도 된다고 셀프 타협도 해뒀으니 말이다.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비싸게 책정해둔 에너지 요금은 독일인들의 생활방식이다.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어 싶었다. 컨테이너 도착 전이라 집에 놀거리라고는 하나 없이 텅 빈 집이라, 매일 아이들을 탕 목욕하게 해주는 담대함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래도 주부니까 슬며시 걱정이 밀려온다.
공동 쓰레기장에 옆 동 터줏대감 할머니가 보인다. 독일 도착 이틀 만에 영어가 유창한 이 분을 쓰레기장에서 만나, 재활용 쓰레기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물값을 물어볼 사람은 할머니가 딱이다.
" 애들이 탕목욕을 워낙 좋아해요."
" 그렇다고 그걸 허락해주면 안 되지. 그건 당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잖아."
단호박이다. 원칙은 원칙 냉정하시다. 물 낭비는 절대 절대, 백번 천 번 안 되는 일이다. 다정한 할머니의 눈빛은 탕목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포청천이 되셨다.
좋다. 매일 이루어지는 탕목욕은 독일 문화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드니, 주재기간 동안 비밀로 해야겠구나.
받아 든 관리비. 한국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50%도 더 나왔다.
탕목욕 금지다.
" 여행 가면 동동물 할 수 있지, 엄마?"
동동물은 아이들과 탕목욕을 부르는 명칭이다. 탕목욕을 안 시켜주니, 호텔에 가서 남의 물로는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 옆 동 할머니의 ' 당신의 선택'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수도요금에 강제로 등 떠밀려 한 선택이지만, 절약을 선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6개월후 시립 수영장에서 수영 자격증을 따는 코스를 등록했다. 아이들이 일주일에 2번씩 수영장을 가게 되자, 수영장 가는 요일만 씻고 주말에는 교외의 물놀이장을 가는 식으로 물값 절약이 성사시켰다.
서울은 미세먼지가 심하던 때였다. 헤센 주의 촌동네인 오버오젤은 공기가 맑다 못해, 집 앞으로 사슴과 멧돼지가 출몰하는 청정 자연환경인지라, 한국에서처럼 매일 씻을 필요가 없지라며 또 다른 타협을 했다.
물 쓸 수 있을 때 깨끗이 씻으면 되지 하고 나니, 깔끔한 성격의 주변인들이 호박씨 양육법에 대해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일도 생겼다.
혹시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라는 책 보신 분 계실지 모르겠다.
주변인들에게 나로썬 설득력이 없어, 저명한 작가의 유명세를 빌어 본다. 사람 피부에는 수없이 많은 세균이 살고 있으며, 샤워 직후가 이 세균들이 가장 활발하게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라고 빌 브라이슨은 말한다. 열심히 씻어 본들 본디 나와 함께 하는 세균들이 몸에서 퉁겨져 나가는 기회만 엄청나게 늘어난다.
그냥 물 흐르듯 씻어야겠다 싶을 때 씻게 내버려 두십시오.
아는 만큼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다른 세상,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겪어온 이는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매일이 다르다. 나와 눈높이가 맞나 싶더니 어느샌가 고개를 들어야 아이와 눈높이가 맞는다.
알아서 목욕만 혼자 했으면 싶던 딸아이는 급성장기가 왔다. 머리가 자꾸 기름지니 알아서 하루에 두 번씩 머리를 감는 소녀가 되었다. 30분씩 뜨근 뜨근하게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불러야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아들은 씻으란 말이 없으면 세상 씻을 일이 없던 아이였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이 어디 그런 법이 있던가? 막히면 돌아가고 더 막히면 흐르기를 멈추고 기다리는 것이 물이다. 때가 되면 어느새 깨달아지고 바뀌는 때가 온다. 물 안 내린 변기가 싫어서, 몰래 물 내리던 소녀는 관리비 고지서를 아들에게 내밀며 잔소리를 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잔소리는 하기도 싫고, 듣기는 더 싫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다르게 행동하길 원한다면 부드럽고 우아하며 그럴 듯한 이유를 제공해주길 바라는 중년이 되었다. 40년 전 할아버지도 어린 손녀에게 본인처럼 물을 사용하라고 대놓고 말씀하신 기억은 없다. 행동함으로써 보여주셨을 뿐이다. 존중하고 존중받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 모두에겐 자신만의 너무나 고유한 문화가 있으니까.
대문 그림
박연 폭포, 겸재 정선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