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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몰라도 욕심은 난다.

by 호박씨

딸 친구 J는 윤 당선인의 옆집에 산다. 초6에겐 대문 나서면 카메라가 여럿 있으니 신기한가 보다. 딸아이가 J네 집에 놀러 갔다 오고 나면 아파트 놀이터에 귀여운 경찰견들이 돌아다니고, J네 집 앞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몇 명 이어서 세어본 이야기를 해준다.


정치는 문외한이다. 마흔 넘어 대통령 투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짐작이 가시리라. 결혼 전에는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일면식 없는 이에게 권리를 양도하기 망설여져 투표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는 시댁과 친정에서 몇 번을 찍어라 하고 오더를 하달하시기에, 부러 투표장을 가지 않았다.

정치와 친해질 생각이 없는데 정치와 맞닥드리곤 한다.




2015년, 매주 금요일이면 오버 오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의 가정집에 모여 손바느질을 했다. 퀼트 선생님은 독일 살이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주재원 와이프 S 이셨다. 두 아이가 독일 현지 유명 공대에 입학하고나니 S도 본인만의 강점을 살린, 자신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셨다. 타국에서 빈 둥지를 혼자 지키시긴 힘드셨을 것 같다.

(S 선생님과의 첫 만남 이야기 https://brunch.co.kr/@a88fe3488970423/73)

S분의 오랜 지인과 내가 퀼트 교실의 창립 멤버였다. 우리 둘을 시작으로 많은 날은 퀼트 교실에 6명 정도가 모였다. 매주 금요일 10시에 모여 우리는 손바느질을 했다. S선생님은 독일 날씨를 견디기 위해 퀼트 이불을 만드는 숨은 고수셨다. 긴 독일살이에 디저트 만드시는 솜씨도 훌륭했다. 바느질을 하고, 수제 디저트를 먹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다. 소통은 카카오톡, 회비는 1회에 10유로, 바느질이 끝나고 함께 점심은 먹지 않는다가 퀼트 교실의 룰이였다. 2시간이 원칙이었으나 선생님의 외출이 없으시다면 3시간도 선생님의 거실 한편 바느질 교실이 열린 테이블에서 바느질을 할 수 있었다.



입소문으로 모객에 성공하여, 6명이 모였을 때가 마침 정유라 씨가 독일에 있을 때였고, 연일 독일 말농장으로 세상 시끄러웠다. 교민이 많은 프랑크푸르트니 갖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유라 씨는 개를 많이 키웠다. 애니멀 호더에 대한 처벌과 신고 정신이 투철한 것이 독일 시민 문화의 특징이다. 정유라 씨의 옆집 독일 할아버지는 그 집의 일거수일투족을 메모에 수기로 적어, 신고했다고 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숫자와 키우는 개, 개들 산책 횟수 등 침울한 날씨의 독일에서 할아버지는 날씨에 걸맞은 첩보영화를 한편 찍으셨다. 참고로 독일은 개 산책 시간이 입법화 되고 있다.


정유라 씨가 도피를 하면서 남은 개들은 한인 교회로 책임이 넘겨졌다. 개들이 입양되거나, 입양이 안되면 동물 보호소에 갖다 줘야 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람이야 끔찍하게 딸을 사랑하는 엄마가 있으니까 어찌 잘 살게 되겠지만, 이 개들은 거처가 사라졌다. 동물법이 엄한 독일이라, 한인 교뮤니티의 중심인 한인 교회에는 개들을 맡아 기를 곳을 찾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개 키우고 싶다고 조른 지가 여러 해였던 지라 정유리 씨야 어딜 가든, 그 개들 중 한 마리를 데려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손바느질을 했다. 그 맘 때 퀼트 레슨에서 바느질하던 것은 딸아이의 잠 친구가 될 여자아이 인형이었다. 잠 자기를 힘든 딸아이에게 개 대신 선물해줄 요량으로 공들여 바느질했다.






" 엄마, J가 그러는데 옆집 대통령 이사 간데."

J가 딸에게 이웃집이 빌 예정이니 우리가 이사를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같은 중학교에 배정을 받게 되고 아침마다 매일 같이 등교하면 어떻겠냐며 둘이서 계획을 짠 모양이다.

" 엄마, 그 집으로 이사 가면 엄마 글 쓰는 방도 생기잖아. 우리 J네 옆집으로 이사 가자. 옆집 팔라고 내놓을 것 같아."

전세라는 좋은 제도도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아파트 전세는 우리 집 전세금 빼서 묻고 더블로 가야 한다는 점을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하다가 엄마의 방이라는 대목에서 뇌가 멈췄다. 방이 생긴다는 상상에 광대가 5초간 승천했다.

독일 갈 때 샀던 7살짜리 컴퓨터를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이 대면 수업을 하는 날이면 아이들 책상 중 하나를 빌어 쓰고, 식구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저녁시간이면 지금처럼 식탁에 등을 붙이고 키보드를 두드린다. 방이 생긴다면, 하다못해 책상이라도 생긴다면 브런치 공모전에 단박에 대상 먹는 글이 써질 것 같다.


2년 전, 코로나로 생활이 불규칙해진 아이들과 나의 루틴을 잡겠다고 미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른다는 단어를 쓰기에는 언덕 수준이지만, 같은 시간에 일어나니 살도 빠지고 생활에 중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검찰총장 사퇴 전후여서 연일 미도산 주변 대법원 앞에 미묘한 기운이 감도는 때였다.

그날도, 눈에 붙은 눈곱을 띠며 미도산 등산길 초입으로 걸어가다 일행 두 명과 오는 윤당선인과 마주쳤다. 호랑이 눈빛을 가진 이구나 라고만 했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싶다.

우리 집 전세를 연장 계약하기 전이었고 , 지금처럼 대출규제가 심하기도 전이였다. J네 옆집 계약에 대한 화두를 꺼내 볼 것을 싶다. 당선될 예정이시니 전세 놓고 가실 껀지, 매매하고 가실 껀지 물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딸과 딸이 요새 죽고 못 사는 J의 핑크빛 꿈, 매일 같이 학교 가기가 실현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J네 집엔 개가 2마리나 있어서, 딸이 J의 두 개 산책 헬퍼를 자처하고 나섰다. J네 이웃사촌이 탐날 이유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연일 신문에서 이 분의 거취가 문제인데, 이게 이 분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다.

정치는 문외한인데, 정치가 주변에서 계속 얼짱 거리니 앞으로는 관심도 가져주고 친하게 지내봐야 하는 걸까?

내 방이 생길 수만 있다면!


대문 그림

책가도, 이형록, 조선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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