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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by 호박씨

"안녕하세요."

경비 아저씨가 구부정한 등을 펴시며 공고판에 공지를 부치고 계신다. 독일의 주거지도 공동주택이였지만, 경비실은 없었다. 8가구, 3개동으로 구성된 빌라에 가까운 저층 아파트이지만 엄연히 공동주택인데, 경비 아저씨가 안 계시니 불편함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인터넷 서비스가 안 되는 경우, 갑자기 물이 안 나오는 일도 5년을 사는 중 몇 번 발생했는데 물을 이가 없었다.

건물 지하실 입구에 전화번호가 여럿 쓰여 있는데 이것이 관리인의 전화번호인지 알 수 없다. 도착하자 마자야 궁금한 것 투성인데다 독일어가 까막눈이기 때문이였다. 관리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전화번호가 있으니 연락을 해보면, 받는 분이 영어를 못하거나 그분의 독일어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2차 문제가 생겨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되곤 했다.


경비 아저씨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신도시 지역에 새로 생긴 멋진 아파트들도 경비는 없다. 독일 어디에서도 공동주택 관리인을 만난 적은 없다.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독일의 주거환경상, 본인이 알아서 관리하는 것을 그 기본으로 한다. 주재 발령 난 이들 대부분 아파트에만 살아봤지 단독주택 살아본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정원에 자연과 가까운 삶, 앞마당 바비큐 파티의 호사을 누리려면 독립적으로 살아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수요일만 되면 3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내어놓고, 아파트 계단을 쓸고 닦는 이가 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분이 일종의 아파트 관리인인가 싶다. 그럼 이 분하고 친분을 쌓아둬야겠다.

독일에서는 간고기를 먹어줘야 한다. 간고기 한팩에 3천 원 정도다. 한국에 있는 입장에서 보면 수입 소지만 독일에서야 독일 소가 국산다. 특유의 누린내도 나고 한우보다 고소한 맛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착하다. 간 고기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만만한 게 햄버거 패티다. 독일 도착한 지 몇 주 되지 않았던 차에 시도해 볼만 한 일은 가격이 저렴하고, 마트에서 많이 쌓여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인이 방문하는 수요일 점심, 아이들에게 몇 번 해줘서 잘 먹었던 햄버거를 2개 더 만들어본다. 계단을 쓸고 닦는 일을 시작하셨을 때 즈음해서 패티를 굽는다. 우리 집 앞을 물걸레로 닦고 있을 때 포일에 싸서 관리인으로 추측되는 그에게 내밀었다.


180cm 정도의 키에 꽁지머리를 하고, 두툼한 작업복을 입은 이 젊은이 관리인이다. 후에도 눈인사는 잘했지만 청소 일을 하는 중에는 말을 건네거나 웃는 법이 없었다. 정해진 업무를 로봇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완수하고 그의 픽업트럭을 끌고 사라진다. 그의 고용주는 아파트 소유주들의 연합이며 그가 제공할 서비스는 세 개 동의 공용 쓰레기장 관리와 건물 내부 청소이다.

아직 뜨끈한 패티를 빵 사이에 끼워 넣고 그에게 다가갔다. 서구인의 표정은 5년 내내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그날 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추측된다.


그는 몇십 년째 해오던 일을 하는 것이지만, 막 독일에 도착한 이에게 그는 새로움 그 자체다. 우리 집 앞을 청소하고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치우는 그가 남의 나라에 도착해 접한 몇 안 되는 독일인이다. 내가 만든 버거는 배달 속도 덕에 뜨끈함을 유지하고 있으니 맛이 나쁘진 않았겠지만, 후에 지나고 보니 독일은 워낙 수제 버거가 유명해서 대단한 맛은 아니였겠다. 그럼에도 포일에 싼 둥글고 따뜻한 것을 받아 든 그는 긴 말이 없다. 좋은 발음의 Thank you를 건네고 얼떨떨함과 기쁨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2호선 탈 일이 있어 옆 단지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10분 걸음으로 교대역으로 향했다. 옆 단지는 시대를 풍미했던 고급 아파트고, 근래는 재건축 이슈로 세상에 회자되는 아파트다. 너른 단지 주차장 벤츠 트렁크에서 골프채를 꺼내는 일은 도시 비둘기 만나는 일만큼이나 흔하다. 50대 남성이 골프백을 꺼내자 옆에 서있던 경비아저씨가 받아 든다. 현관까지 날라다 줄 예정이신가 보다. 골프백 주인은 아저씨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고, 경비 아저씨는 허리를 좀 구부려 관우의 청룡언월도 모양의 그것을 받아 든다. 청룡언월도의 소유자가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지 알고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싶어진다. 동간 간격이 넓어 훤한 주차장이라 걸어 가던 속도만 슬며시 늦춰본다.

두 남자는 말은 주고받지 않고 골프백만 주고받으며 아파트 현관으로 향한다.


서비스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부로 살다 보니,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며 10년이 넘게 지내고 나니 궁금해진다. 궁금해져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답을 아시는 분, 버거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젠 꽤나 솜씨가 좋답니다. 특별히 독일제 간고기로 만들어 드릴게요. 수입산도 알고 보면 국산이랍니다. 어디서 그 버거를 먹느냐에 따라 수입산과 국산의 정의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서비스의 한계를 정의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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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졸당, 승효상,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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