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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Day

by 호박씨

컨테이너 이사가 내일인데 5살 딸을 데리고 향한 곳은 예술의 전당이었다. 언니의 호두까기 공연을 보러 가야 했다. 언니의 공연을 가는 것은 늘 내 선택이다. 엄마를 포함한 그 누구도 언니 공연을 보러 가자고 하는 이는 없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프리마돈나의 공연인데 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긴 남의 나라 살이에 앞서 비빌 언덕을 찾고 싶다. 남의 나라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순간에 닥치는 공포는 이런 이름인 것 같다.

" 나를 황인종의 한 명으로 대하지 말고, 컨테이너 짐 싸기 전 날도 발레를 보러 가는 문명인으로 봐주라."

소심하게 서쪽을 향해 질러보는 소리 없는 몸짓이다. 세상을 향해서 외쳐보는 소리 없는 부탁이다.


" 쓸데없이 이런 날 공연을 보러 가냐?"

친정아버지는 큰 딸에게 무엇을 해라 또는 하지 마라는 말씀이 없으신 편이다. 짐을 싸다 말았고, 물건들을 버리다 말아서 엉망진창인 상태가 내 집의 현 상황이었다. 냉장고라도 해결해주려고 출동하신 친정엄마랑 함께 온 아빠가 한소리를 하신다. 이 와중에 한가롭게 예술이나 보러 가냐며 아빠 마음 바닥 밑 불안함을 꺼내 보여주신다.


코 앞에 놓인 주재의 무게에 대한 감당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설렘은 물론이고, 두려움도, 삶에 올 변화에 대한 예감도 오직 나의 것이다. 주재 발령이 난 남편도, 친정 식구도 헤아리지 못한다. 오차가 없는 소통이 있을까? 다만 알아차려주기 위해서, 이해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추측해볼 뿐이다.




사촌 언니가 네덜란드 발레단에 갔다가 돌아온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프리마돈나와 전업주부가 같은 레벨이냐고 하겠지만, 타향살이의 작은 팁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다. 네덜란드에서 복귀한 언니의 춤사위를 보면서 유럽도 살만하구나라는 응원을 받고 싶었다. 14살, 어린 나이에 혼자 러시아를 갔다 왔으니 언니는 해외 살이에 대선배다. 무대 위의 그녀를 보면서 스스로의 불안을 잠재워보는 거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라고 말이다.

이 정도의 이유로 컨테이너 이사 전날 발레를 보러 간 원인으론 충분하지 않다. 5년의 유럽 주재 살이 전날 가는 곳이 예술의 전당이었던 이유는 7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외할머니는 문정동의 본인 집에 혼자 계신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년 가까이 10평 남짓의 아파트에 계신다. 주재 임기 전 인사를 드리려고 문정동 댁 가까이 한정식 집에서 식사를 대접했다. 외출도 외식도 가능하셨던 외할머니는 독일서 돌아와 다음 해에 100살이 되셨고, 외출은 커녕 혼자 지내실 수가 없는 상태셨다. 돌아와서 아이들과 얼굴을 뵈러 갔을 때 나도 아이들도 알아보셨다. 아이들 나이와 생일을 기억하셨다. 나이를 계속 잊는 호박씨보다 맑은 정신이셨다.


지난주 해물죽을 드시고 탈이 나셨단다. 평일 낮에 할머니를 돌봐드리는 요양보호사 분이 친정엄마에게 전화도 자주 하셨단다. 주말엔 보호사분이 안 계시고, 엄마와 외삼촌이 번갈아서 할머니를 방문드려 왔다. 할머니에게 싸다 드릴 음식을 하니라 토요일엔 바쁜 엄마가 자꾸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를 해서 딴소리를 하신다.


오후에 엄마의 얼굴을 보러 가니 엄마는 눈시울을 붉혔다. 기저귀를 차기 시작하신 할머니, 그리고 요양 보호사분이 이야기하시는 할머니의 상태, 모든 것이 불편하고 마주하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함께 가자고 했다. 할머니가 집안 온 군데 똥을 묻혀 두셨다고 해도, 둘이 같이 가면 어떻게든 무슨 수든 나지 않겠는가? 말은 이리해도 엄마에게 제안하기까지 몇 초간은 망설였다고 고백하는 바이다.


일요일, 엄마와 할머니 댁 앞에서 만났다. 각자 지하철을 타고 왔다. 엄마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막상 도착한 문정동 할머니 댁은 깔끔하셨다. 다만 알아보시지 못했다. 눈은 뇌의 거울이라 했지. 할머니는 눈을 맞추지 못하신다. 코로나로 뵙지 못하는 시간이 노인을 이겼버렸다.

" 아파. 아파."

몸을 일으키거나 돌리려고 하면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신다. 어디가 많이 아프신 건가 싶어서 진통제를 드리니 손을 탁 내리치신다. 아프시다면 약은 드실 텐데, 안 아프시다고 하기엔 내지르시는 소리가 잦은데, 어찌해야 할까 싶다.


이럴 땐, 딴청을 핀다. 고민 앞에선 일탈이 하고 싶다. 진짜 답은 환기와 전환에 있곤 하더라.

할머니 집엔 그림은 걸려있지 않다. 가족들이 액자에 넣어 올려둔 사진들만 가득하다. 사진 속엔 언니도 나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엔 프리마돈나인 언니의 얼굴이 있다. 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가장 닮은 손녀다. 엄마도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었더라면 갖고 있을 그런 눈매를 하고 있다. 웃으면 하얀 손톱 같은 초승달 생김새의 눈, 보통 사람 반쪽밖에 안 되는 언니의 골격도 할머니의 것이다.


발레리나의 모습을 한 100살의 노인을 시간이 두드려댄다.

" 아파, 아파!" 할머니의 외침이 지워지기 전인 금요일 언니의 공연을 보러 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같은 의상을 입은 포스터는 모객용이었나 보다. 언니의 창작극에서는 삶이 묻어난다. 진지하고, 조용하지만 명랑하고, 시끌벅적한 언니의 작품을 보는 내내 할머니를 떠올린다. 전쟁통에 할머니는 둘째 딸을 잃으셨다고 했다. 티푸스에 3살 난 딸아이가 죽고, 피난을 가고 그럼에도 살고 또 살아남아 2022년이 왔다.


할머니의 얼굴 같은 언니의 얼굴이 호박씨에겐 역사책이며 그림이다. 영화 같은 해피엔딩은 없으며, 삶이 영화보다 훨씬 슬프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준다. 독일 떠나기 며칠 전, Home sweet home을 만들어한다는 무게를 이기려 할머니를 뵙고 식사를 대접했었나 보다. 컨테이너 짐 싸기 전날, 언니 공연을 보러 갔었나 보다.

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하고 오늘 다시 언니의 공연을 마주한다. 친탁을 한 호박씨 얼굴과 닮은 점은 한 조각도 없어도, 드라마 보듯 나의 이야기도 저러할 것이라 위로한다. 인생 그것, 기꺼이 짊어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호박씨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대문그림

Dancing lesson, Thomas Eakins, 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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