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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03. 2022

상갓집에 경고등을 세워본다.

가족 단위로 주재원 발령이 나는 순간, 주재원 와이프에게도 세트로 임무가 주어진다. 회사가 나와 아이들까지 덩달아 보내주었고, 지낼 거처에 비용을 부담해주고, 아이들 학비도 내준다. 남편이 집중적인 워킹 모드에 들어갔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될 수 있다는 주재원 와이프이니 유공자 마냥  안식년처럼 즐기면 좋으련만. 5년 중에 독일에서의 그 누구도 생각 없이, 미션 없이 지내진 않더라.



독일에 도착한 한 달 동안 남편의 얼굴을 맞대한 시간은 12시간도 안 됐을 것이다. 야근에 접대에 그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는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마음의 여유도 없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면 화를 냈다. 내가 더 힘들어라고만 했지 네가 더 힘들어라고 할 깜냥은 서로에게 되어주지 못했다.


술이 약한 남편이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왔다. 출장자가 오거나 윗선이 나오시면 소주 한병도 못 먹는 그가 술 장구를 쳐줘야 한다.

"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한국으로 끌려들어 가게 될 거야."

몸도 못 가눌 만큼 취한 남편이 하는 소리 속에는 공포가 담겨 있다. 말속에서 두려움을 읽지 못하고 말을 예언으로 받아들이고는, 돌아가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생각하느라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술이 덜 깬 얼굴로 일어난 남편은 어젯밤에 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다. 한국에 가야 하냐고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한다.

" 내가 그런 말을 했어?"

그에게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으로 끌려 가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술김에 마음을 내뱉는 그가 안고 있는 무게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가 가족을 유럽으로 보내준 회사를 향해 어떤 태도를 가지든 나야 휴가 나온 듯 놀았으면 아마 브런치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황장애도 오지 않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의 상갓집에 앉아있으니, 독일 살이 5년에 코로나 2년으로 만나지 못한 외가 식구들의 얼굴과 속속 마주한다. 7년이라는 시간이 그들의 얼굴에 묻어난다. 삶의 본 경기를 치르고 있는  사촌들 얼굴에 중년이 켜켜이 쌓여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사촌 오빠 D 또한 입사 7년 차에 중동으로 발령이 났다. 오빠는 가지 않을 것을 결정했고, 그로 인해 한직을 맴돌고 다녔다. 새언니가 말한다.

" 거기가 훨씬 좋져?"

마스크로 가려져 있어 새언니의 표정은 알 수 없어, 그녀의 눈 속을 한참 들여다봐야 한다. 어찌 답을 해야 하나 우물쭈물하고 있자, 기다리지 못하고 언니가 답을 치고 나온다.

"얘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인데!"

어제 상갓집에서  새 언니가 본 우리 얘들이 둘이서는 영어로 이야기한다며  말을 마무리한다. 주재 기회를 자기 발로 차 버린 오빠에 대한 원망은 아직도 새언니에겐 가득하다.


새언니에게 듣고 싶은 정답은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새언니처럼 직업이 교사인 주재원 와이프들이 주변에 넘쳐났었다.

주재원 와이프의 삶은 환상적이어서, 휴직하고 나온 부인네들은 곳에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국제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영어가 절로 얘들 입에서 술술 나와 앞으로 내내 아이들의 영어 걱정은 잊고 살아도 된다.

그런 기회를 오빠가 차 버렸기 때문에 지금 언니의 삶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언니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안다.


가족이 아니었다면, 상갓집이 아니었다면,  최선을 다해 새언니를 따로 만나려 했을 것 같다. 브런치 주소를 알려주고,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며 글을 읽어 주길 부탁했을 것이다. 고3인 조카의 성적에 대해서 말하며 눈빛컴컴해지는 언니가 듣고 싶어 하는 정답을 이야기해주기엔  충분히 뻔뻔하지 않다. 또한 그녀를 사흘 밤낮을 만나 주재의 실체를 알려주기엔 충분히 용기가 있지도 않다.


 유럽 여행 다녀온 이 마냥 아이들의 영어를 뽐내며 유럽표 명품 가방을 자랑하기엔 철이 들어버렸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면 주재원 와이프가 된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녹음기처럼 Replay 하기엔 오빠와 새언니의 어깨가 너무 처져있다. 코로나가 사그라들고 차차 한국에서 그들을 볼 기회가 있을 터이니, 어떤 기회든 다시 새언니가 말을 걸어오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중년의 경고등처럼, 한국살이의 사이렌처럼 세워둔 이 글들을 보여줄 날을 기대해본다.


대문그림

빛의 제국, 르네 마그리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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