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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14. 2022

글쓰기가 레퍼런스가 될까?

핸드폰과 노트북의 암호가 브런치 100이다. 브런치에 글을 100개 올리고 나면,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글들을 종이로 출력하여 '난 널 거절할 예정이다'는 눈빛을 한 출판사 편집장에게 글을 내밀어보겠다. 요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매일 스탬프 찍는다.  하루에도 100번넘게 핸드폰 암호와 노트북 암호를 입력하니 스탬프 찍기로써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지 싶다. 

" 엄마, 핸드폰 lock은 패턴으로 하면 편한데. 바꿀 줄 몰라? 도와줄까?"

엄마가 설마 바꿀 줄을 모르겠냐. 이 중딩 아들아. 





 100개의 글을 쓰고 나면 조와 같이 용기를 장착하고 출판사를 돌아다녀 보겠다 마음먹은 것이 올해 1월 1일이었다. 목표를 향해서 1일 1 브런치를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계속 들여다보니 꽁꽁 숨겨두었던 꿈이 때는 이 때다 싶은지 밖으로 나앉았다. '나 네가 알아주길 많이 기다렸단 말이야' 하며 원망할 법도 한데, 내 꿈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원망을 모른다.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예술에 대해서 글을 쓰는 연배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예술 기획자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사람 같이 살면 되겠구나 싶어 마음의 멘토로 새겨 넣었다. 그녀가 살아온 바대로 따라 살다 보면 그녀의 현재와 똑같은 나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 같다. 


멘토 분의 이력을 읽다가 꿈에게 말했다. 

"  난 돈 없어." 

" 얘들 학원비는 있어도 꿈, 너를 대학원 보낼 줄 돈은 한 푼도 없어." 

꿈에게 도로 들어가라고 협박을 해본다. 지금은 안되니까 기다려. 계속 기다려왔는데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하냐고 한마디를 하지 못하는 꿈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꿈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싶어서 손을 뻗어보다가 거둬들였다. 


다시 멘토의 레퍼런스를 읽는다. 선생님의 이력에는 사람은 하나도 쓰여있지 않고 학교와 책, 출강 기관만 있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그 자리까지 이르신 것이라 착각하기 십상이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이력에 한 줄을 더할 방법은 책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출간 작가가 되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을까? 선생님의 권위의 양대 산맥 중에서 당장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책을 내는 것이다 싶다. 숨만 쉬면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노트북 앞에 다시 앉았다. 출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글은 단 한 줄도 안 써진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잘해야 한다 하면 잘하지 못한다. 실수 없어야 한다고 시작하면 실수를 한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예정이라 출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글을 써야 한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담박하기 그지없는 나의 뇌는 말 그대로 졸았다.  'ㄱ'자 한 자도 처넣지 못한다. 첫 문장은커녕 제목도 정하지 못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브런치 작가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날이 있었다. 주재원이라는 혜택을 받았으니 경험한 바를 세상에게 돌려줘야겠다 마음먹었다. 책으로 세상을 더듬거리는 나이다. 연애도 육아도 책으로 배웠다. 누군가도 나처럼 주재원 와이프로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살이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주재원 와이프 지침서는 왜 없을까 아쉬워하는 순간에 내미는 따뜻한 손이 되고 싶었다. 시간을 거슬러 2015년의 나에게 내미는 한 권의 책이 되자 했다. 

80여 개의 글이 쌓여 여기까지 왔다. 내 글을 팔아 꿈에게 등 돌릴 돈을 마련하겠다는 꿍꿍이가 생기고 나니 글은 써지지도 봐지지도 않는다. 꿈과 돈에 대한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쓰는 순간만큼은 나였다.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손목과 허리 통증을 참아내며 자판을 두드리는 내가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브런치의 하트와 조회수를 분모로 두고 분수를 만들고, 내 글이 책으로 변신한 확률일 것이라 여겼다. 조회수가 한자리인 날은 편집장에게 거절당한 것 마냥 풀이 죽어 있었고, 조회수가 100을 넘은 날은 마치 손에 책을 쥔 냥 마음으로 책을 인쇄하고 있었다. 


글과 꿈에게 고백한다. 

너희 둘을 엮지 않을게. 아무래도 너희 둘에게 서로 힘이 되어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인 것 같아. 글을 팔아 꿈을 위한 돈을 만들겠다고, 너희 둘에게 의지가 되어라라고 하기엔 난 너무 초짜야. 육아라곤 1도 모르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를 그만 다니기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하고, 엄마를 선택했던 내 과거를 반복하는 것 같아. 

글아, 너는 너로서 세상에 나아가. 글, 너는 세상에 나아갈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너로서 즐겁고, 살아갈 힘이 되니 네가 있어서 행복해. 감사하다, 글아. 네가 없었으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꿈아, 더 이상 기다리란 말 하지 않을게.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거야. 말없이 기다렸던 너를 위해서 오늘부터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볼게. 내가 선생님으로 삼은 분이 매일 하는 말이야.

" 인복이  많아요. "

결국 꿈, 네가 세상 밖에서 모습을 갖추고 서 있는 그날을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일 것이라 믿는다. 

 너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소리 지를게. 도와주세요라고 말할게. 너를 위해서 용기라는 것을 가득 장착해볼게. 기다려 줘서 고마워, 꿈아. 





부엌에서 글을 쓰는 날은 부엌 티슈각이 비기 일수다. 작은 아이 컴퓨터가 새 거라 작은 아이가 학교 간 시간을 틈타 글을 쓰는 날은 아이 책상에 티슈가 그득이다. 힘들었다고만 고백해대는 글을 그만 써야겠다. 주재 살이 나가기 전날 눈물 젖은 글을 읽는다면,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려 들지도 모른다. 휴지 그만 사용하고, 눈물 중지 버튼을 누르고, 지난 시간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써야겠다. 

아프면서 성장할 테니 괜찮다고 말해주겠다. 아플 때 그대만 아픈 것은 아니라고도 이야기해주겠다. 

" 와, 저도 다른 나라 살아보고 싶어요."  

라는 부러움 섞인 말에 말문이 막힌다. 내 글을 읽게 될 누군가는 막힘 없이 이렇게 대꾸했으면 좋겠다.

" 주재원 빡십니다. 호박씨 책 읽어보세요. 인생이 나라가 달라진다고 다르진 않아요. " 

부러움 섞인 말을 건네는, 한국에서 계속 살아온 이에게 칭찬과 존경을 쏟아붓고 싶다. 한국인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치는 글이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이다. 부디 현재를 사랑하고, 지금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한국인이 되길 기도하는 간절한 목소리이다. 


글을 제물 삼아, 꿈을 향해 나가기는 포기다. 꿈에겐 귀인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 믿는다! 호박씨의 귀인, 나타나 주세요. 되도록이면 빨리요. 체력이 저질이라서 오래 못 기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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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scape 76-3-2021, 이건용,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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