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 유치원 입학 둘째 날, 아이 둘을 넣어놓고 뒤돌아 집으로 가려니 유치원 건물 동 1층의 카페테리아에 밤색 머리가 눈에 띈다. 한국 엄마들이 있구나.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여성 중 한 명은 아들 반 남자애 엄마 T, 어제 눈인사를 나눴다. 다른 한 명은 처음 본다. 연배가 좀 있어 보인다.
" 1번지 후임이구나. 나보다 어릴 것 같은데, 나이가 어떻게?"
내가 어디 살고 있는지, 남편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알고 계신다. 초면인데, 본인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밝히신다는 점이 특이하다 싶다.
이제 이분이 궁금한 것은 호박씨의 나이다. L의 말끝이 숭덩 잘려나간 것을 보니 서열 정리를 이미 하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호박씨는 동안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뱀파이어 소리를 듣는 편이다. 후에 알고 보니 L은 노산으로 아들 하나를 둔 엄마라 학교에서는 본인의 또래를 만나기 힘든 전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나이가 많은 점에서 서열 정리를 해야 본인이 편하신 걸까, 아니면 비슷한 노산 엄마를 찾고 계신 걸까? 나이를 밝히고 나자 얼굴이 한결 편안해지신다. 이걸로 면접은 끝났나 보다 했다.
이번엔 졸업한 학교를 물으신다. 한국을 살아갈 때는 공부 잘하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전업주부 여성으로 살아감에는 공부 잘하는 것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내내 아픈 곳이다.
" S 대 나왔어요. 경영학부."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끝도 없이 흔들리던 20대의 절반인 5년을 지낸 곳에 대해 읊조리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이제 L의 차례다. 그녀의 학교를 밝힐 차례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는 셈 치고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본인 나이도 안 밝히셨다. 국제학교 이틀째이니 이런 밑지는 거래도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호박씨는 1초의 망설임 후에 학교를 밝혔는데 L은 5초를 망설인다. 옆에 앉은 T가 L을 구해주려는 의도였는지, L의 순서를 가로챈다.
" 나 S대 경영학과 나온 사람이랑 소개팅했었는데, 엄청 똑똑하더라고요. 호박씨 S대 경영학과 나왔는데 왜 집에서 놀아요? 전 중앙대 영문과 나왔어요."
지구 종말이 와서 당신에게 선택지로 남은 이웃은 T와 L 뿐이다. 누구를 선택하시겠는가?
선택에 도움이 될만한 이 두 사람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T의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녔는데,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를 다니는 내내 T는 남편의 회사를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호박씨의 눈에는, T남편은 낮밤 안 가리고 일을 했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아, 1인 법인으로 독일 주재 근무를 해나가는지 햇수로 5년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국제학교 학비가 여간 비싼 게 아닌데, T의 아들이 초등 입학 학년이 되자, 남편이 회사와 딜을 해서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게 입학금을 보조해줬다 했다. 중소기업 복리로써는 파격적인 T아들의 입학기를 듣고, T 남편은 능력자이구나 했다.
그럼에도 T와 나누는 대화에서 이틀에 한 번은 이런 말이 나왔다.
" 개나 소나 대기업 다니네."
이제 L에 대해서 알아보자.
L이 호박씨에 대해서 그렇게 꿰뚫어 보고 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L의 아들은 친구 만들기가 서툴러 국제 학교의 모든 한국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녔다. 교장실과 상담실을 밥먹듯이 드나들어야 했던 L은 멀쩡한 아들이 짓궂기 로써니 큰 대수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들을 감쌌다.
L의 아들은 2014년 호박씨의 선임 딸과 같은 반이 되고 어김없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호박씨의 선임은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한인타운이라 불리는 1번지에 살았다. 장차 호박씨의 집이 될 예정이었던 1번지는 국제학교 정문을 나서면 처음 만나는 저층 아파트로, 8가구 중 한국인 가구수가 50%가 늘 넘는 오버 오젤의 한인타운 중에서도 한국인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공간이다. 국제학교로 이어지는 도로명이 첫 번째 Ein이 붙어 국제학교 한인들은 일번지라 불렀다.
선임의 와이프는 친한 사람들을 초대하는 국제학교 비공식 카페테리아처럼 1번지 집을 사용했고, 발도 넓고 오지랖도 넓었다. 외롭지 않은 독일 생활을 하셨던 것 같다. 호박씨에게 선임 와이프를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번지에 사는 내내 선임 와이프에 대한 이야기는 내 귀에 들어왔으므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를 퀼트 이불보 짜내듯 5년 동안 그려보곤 했었다.
선임의 딸과 L의 아들이 같은 반이 되고,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두 분은 각자 통역을 대동하여 상담실에 모여 목소리를 높이기 일쑤였다. 선임 와이프는 분을 삭이기 힘들었는지 2014년 11월 독일에 발도 디디지 않은 호박씨에게 국제 전화로 한 시간 동안 본인과 L 아들과의 일을 쏟아냈다. 학교에 극악무도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랑 같은 반이 되지 않길 빈다고 했다. 막상은 아이의 이름은 밝히질 않았고 내가 얻은 정보는 성별이 남자고 국적이 한국인이라는 것뿐이었다.
한 시간의 통화를 끝내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름을 모르는, 같은 학년에 있다는 남자아이는 누구일까? 독일의 국제학교에 있는 얘는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는데, 알파벳만 겨우 아는 천둥벌거숭이 아들은 잘 지낼 수 있으려나 싶은 생각에 그날부터 밤잠을 설쳤다.
L은 선임이 떠남을 반가워했고, 후임으로 오는 호박씨와 호박씨 아들은 더 반가워했다. L에게는 좋은 차와 큰 집, 잘 나가는 남편이 있었지만, 1번지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낮의 한가운데 전화를 걸어 1번지 우리 집 앞이니, 커피 한잔 주겠냐고 청하곤 했다. L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은 5년 내내 그녀의 대학원 석사 논문이었는데, 깨알 같은 글씨 사이즈 때문에 본문을 읽을 수는 없었다. 논문을 쓸 수 있는 능력자인 L에게 하나뿐인 L의아들은 교우관계에는 능력이 없어, 이제 막 도착한 호박씨의 아들을 생일파티에 초대했더랬다.
큰 아이 학년의 한국 남자애들 엄마는 T와 L을 포함한 단 4명뿐이었다. 당시에는 돈독했었는데, 이들 중 누구와도 연락이 닿진 않는다. 그들과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쇼핑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고향과 학교, 어린 시절까지도 알고 있지만 인연은 닿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키보드 앞에 앉아 오늘처럼 그녀들에 대해서 떠올리면, 안타까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말이 닿지 않고, 정서는 더 닿기 힘들며 가족 외에는 관계 맺기가 힘든 상황 속에 처한 주재원 와이프라는 여성에게 안타까움이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내민다면, 그들은 분노할 것이다. 호박씨의 연민 따위를 받기엔 팔자가 환상적이라고 그들이 도리어 화낼지도 모르겠다.
긴긴 독일의 밤, T는 한국 드라마를 튼다. T의 어린 아들에겐 한국에서 사 온 학습지를 건네주며 10장 풀기를 명한다. T는 물보다 싼 독일 맥주를 딴다. 한국으로 치면 50평은 족히 되는 정원 딸린 저택, 독일의 저녁 7시 T는 불안함을 콜라보한 혼술을 한다. 그녀 옆에서 T의 아들은 혼공을 한다. T의 남편은 야근을 시작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다운타운 사무실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운다.
L은 오버 오젤의 한국식 학원에 아들을 넣어놓고 쇼핑을 한다. L에겐 당장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L은 학원가 옆 쇼핑센터 드러그스토어 DM에 가서 10유로 언저리의 화장품이나, 마른 간식거리를 괜히 사본다. TKMAXX라는 명품 아웃렛에 들러 옷장에 있는 것과 비슷한 명품 셔츠를 한 벌 더 사본다. L의 남편은 유럽 출장 나오신 임원을 접대해야 하므로 오늘도 프랑크푸르트의 한국식당에서 소주를 거푸 마신다. 2차는 와인이라 평소 해둔 와인 공부가 오늘 빛을 발할 예정이다.
그들에게 호박씨는 어떻게 비췄을까 궁금하다. 그들과 닿지 않는 인연의 원인은 호박씨의 연민 어린 눈빛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아니면 오늘 이렇게 그들을 글감 삼기 쉽게 하기 위한 하늘의 묘수였을까? 연락이 닿았다면 이 자리에서 실컷 그들을 어여삐 여기기 힘들었을 것 같다.
대문 그림
마리 바시키르체프, The meeting, 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