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라 집을 둘러보니 어린이날을 챙길 어린이가 딱히 우리 집엔 없는 듯해 보인다. 케이팝 아이돌처럼 머리를 탈색한 초6의 딸과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중 2 아들, 둘 다 어린이라 부르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의 시간 5년과 코로나 2년으로 두 아이가 어린이를 졸업해버렸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방인 어린이로 살다 보면 이방인과 어린이의 두 가지 정체성 중에서 이방인으로써의 무게가 더해지는 때가 있다. 한국 남자 어린이 경우, 국제 학교 대부분의 차지하는 서양 여자 선생님들의 시각에서 이해하기 용이하지 않다는 것은 첫아이를 아들로 둔 엄마로서 동의하는 바가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철들지 않은 강아지처럼, 사람이 좋아서 그리고 친구가 사귀고 싶어서, 에너지가 넘쳐서 이리 사고 저리 사고 치는 초등 저학년 남자 애들을 보면 아들이 나 없는 데서 저러면 어쩌나 걱정도 하는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 딸 걱정은 다음에 본격적으로 해보도록 하겠다.)
토요일이면 Saturday Sports라고 칭하는 부모 참여 스포츠 교실이 있다. 미국인 아빠들이 주축을 이루어 코치와 보조 코치, 운영진을 맡아 계절에 따라 종목을 바꿔가며, 격주 토요일 3시간에 걸쳐 학교 운동장에서 운영된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국제학교다 보니 운동장은 종목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끔 야구장, 럭비장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날이 스산한 겨울 시즌에는 배구와 농구를 즐길 수 있는 체육관이 있다. 미국 교육이 단체 스포츠의 효용과 교육적 효과에 대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를 시설에서 느낄 수 있겠다.
우리 교육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데다가, 주재원 아빠에겐 주말은 없다고 봐도 무관할 만큼 바쁘므로 토요 스포츠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은 엄마들이 와 있는 경우가 많다.
새로 온 친한 엄마 둘이 아들들을 데리고 온 모습이 부러웠다. 이 두 아들들은 딸아이와 같은 학년, 초등 1학년이었다. P 엄마는 키가 꽤나 컸는데 알고 보니 배구 선수였던 적이 있다고 했다. P엄마의 딸도 늘씬하니 키가 컸고 둘째인 아들은 몸놀림이 가볍고 날쌔였다. 동유럽 파견에 이어 두 번째 주재임에도 P는 영어가 서툴고, 축구를 빼어나게 잘했다.
두 아들을 한 팀에 넣어두고 P 엄마와 친구 엄마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경기장 바깥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호박씨도 큰아이, 작은 아이 성별만 바뀌었지 학년도 비슷하니 한번 껴보면 어떻겠냐 싶은 마음도 있다. 호박씨는 경기장 떠나기가 쉽지 않다. 큰 아이는 축구는 잼병이고 모든 스포츠에 취미가 없다. 오로지 친구를 만나러 온 셈이라,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뛰라는 레이저를 아이에게 종종 쏘아주어야 한다.
작은 아이는 축구팀의 몇 안 되는 여학생인데, 다른 두 명의 여자애들과는 어울리지 못하지만 축구 실력은 뛰어나다. 경기가 시작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골을 넣지만, 쉬는 시간이 되면 혼자 있게 되어 곧잘 엄마를 찾는다. 와이파이도 열악한 국제 학교에서 그들을 위해 운동장에 있어야 한다면 마음이라도 그들에게 집중해주자 싶다. 그러니, 두 엄마의 수다가 궁금해도 호박씨는 아이들의 경기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휘어잡고 뛰던 P가 넘어졌다. 피부가 까졌는지 피도 나고 타박상도 있는지 아파서 쩔쩔맨다. P 엄마의 뒷모습은 보이는데, 뒤돌아 앉은 P 엄마에겐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조 코치를 하던 미국인 S 아빠가 P를 데리고 나와 아이스팩을 대어주고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옆에 앉아 P에게 한국말을 건네고 진정시켰다. 넘어지고, 피가 나면 Primary grade의 한국인은 사라지고 우는 남자아이만 남는다.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 운동장 건너편의 P엄마가 아들 소식을 듣고 올 때까지 나는 P엄마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달려온 P 엄마. S 아빠와 나에게 아무런 말 없이 우는 P의 손을 잡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 마음이 내달려온다. S 아빠에게 P 엄마 대신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울까 싶다. 나라도 고맙다고 해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좋아질까 신경 쓰인다.
언어가 통해도 뜻이 닿지 않는 순간은 삶 속에 얼마든지 있다. 오늘도 글을 쓰고 있는 거실 밖에서 부모를 향해 내지르는 어떤 아이가 들리면, 말이 닿지 않는 안타까움이 닮긴 소리에 함께 가슴이 타들어간다. 하물며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야 오죽할까 싶다.
상대에게 오해를 사든 안 사든 상관없는 나이란 없다. 어린이도 타인에 대해 신경 씀과 배려를 탑재하고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국제학교에서 저학년 한국인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선입견이 없기란 힘들 것이다. 무조건 아들의 편에 서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이었던 5년의 시간은 아들의 정체성은 어린이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반 외국인들에게 한국 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P는 영락없는 개구쟁이였다. 한국이었다면, P에게도 짓궂게 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졌을 터이다. 좁은 주재원 사회와 소수의 재 국제학교 한국인 사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철들지 않은 P는 딸아이 학년에서 유명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딸아이반 Art시간에 그리기 재료를 수집하기 위한 산행이 있었다. 독일 산은 경사는 얕지만, 성공적인 조림 사업으로 숲이 깊고 어둡다. 산행을 위한 부모 Volunteer 두 명 중 한 명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미술 선생님이 짜주신 세 개의 조 중 한 조의 책임자가 나였고, 나의 조에는 P가 들어있었다. Art 선생님은 통제 불가능한 미국인 아이 2명을 자신의 조에 집어넣는 지략을 발휘하셨기에, P 한 명만 잘 데리고 다니면 되겠다 싶었다.
딸아이 손을 잡고 눈은 P를 향했다. 무리 지어가는 6명의 조원들 중 1명은 눈을 관리하고, 딸은 옆에 있고, 나머지 4명은 따라오는 것은 잘하니 버겁지 않은 봉사시간이었다. 그렇다 내달려 나가는 P를 발견했다. 기다려보았다. P는 산짐승처럼 뛰쳐나가지 않고, 뒤를 돌아보고는 돌아오더라. 무리 방향으로 돌아오는 P에게 물었다.
" 무엇을 발견했니?"
P의 엄마를 닮은 동그란 구슬 같은 두 눈이 커졌다. P는 소리 지름과 나무람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나의 물음에 P는 뛰어갔던 이유에 대해서 찬찬히 설명했다. 몸이 빠른 P는 말은 또박또박한다.
호박씨의 아들은 몸은 느리되 말은 조리 있고 빠른 편이다. 요 나이 때의 아들이 생각났다. 후회가 밀려왔다. 2년 전 아들에게도 지금 P에게 건네는 말처럼 상냥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P는 그러고도 뛰어다녔지만, 처음 내달아 달려 나갈 때보단 가까이서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고 무리를 찾고, 나와 눈이 맞췄다. 말 안 드는 한국인 P는 간데없고, 8살 아이의 영혼이 내 눈동자에 와서 닿았다 떨어졌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을 건네는 마음가짐이 전부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산행 전 딸아이는 P가 하는 한국 욕과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각 교과 시간에 벌을 받는 P의 하루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었다. 산행 이후 딸아이가 P에 대한 이야기가 적었던 것은 내가 부렸던 작은 마법 때문인 아녔을까? 바라봄을 바꾸고 마음을 담아 건네었던 나의 질문 한 번이 P의 국제학교 생활에 따뜻한 포옹 한 번은 되었기를 바라본다. 살며 아들에게 모든 세상의 오해를 받게 되고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그날은 꼭 P와 연습했던 영혼의 눈 맞춤을 아들에게 해 줄게 되길 또한 바라본다.
대문 그림,
미하일 쿠가츠, 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