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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데 매운탕과 튜브 명란

by 호박씨

끼니 챙기기에 열중하는 남편을 보면 고맙기도 하다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식욕을 돋워 주겠다고 뭘 먹을지 주말 되면 한참을 고심한다. 평일 본인 아침을 챙겨 먹겠다고 과일이며, 두유며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보기 앱으로 주문해달라고 독촉한다.


" 당신이 독일서 아침 챙겨준 적은 없지."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아침을 누가 챙겨 줘야 먹나 싶다가도, 챙겨 먹는 것이 노역인 공황 장애 환자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싶다. 도무지 식욕은 없는데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독일에서의 그나 지금의 나나 마찬가지이다. (주부의 가사 노동도 출근이라 정의하겠다. )

남편이 유럽법인장은 아니지만, 본인이 맡은 아이템에 관해서는 유럽 시장의 장이였다. 본인 밑에 독일 직원 네 명을 채용하고 그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 여기서 잘 해내야 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쏟아지는 업무와 접대에 맞닥 드리다 보면 식욕은 흩어져버리곤 한다.


3년 차쯤에 남편 얼굴은 반쪽이 되었었다. 결혼 직후 두께가 두배가 된 남편을 보고 시어머니와 시누들이 관리 안 하면 아저씨 된다고 뭐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주는 것은 뭐든 해 먹었었더랬다. 그 살들이 유럽 주재원 3년 차에 원점으로 돌아가버렸다. 한국 백화점서 장만해 간 정장 바지가 헐렁해졌고, 청바지는 줄줄 내려가고 남편의 하루 담배량은 한 갑을 훌쩍 넘겼다.



먹고살려고 하는 것인데라고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먹는 것으로 하여금 팍팍한 자본주의로부터 오는 허망함을 메꾸려 들기도 한다. 먹는 것만큼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대접받는다는 기분 더불어 존중받는 느낌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제 먹던 매운탕을 덥히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5분 만에 휘리릭 아보카도 명란 비밤밥을 챙겨 먹었다. 카이저 돔에 살던 독일 선제후도 못 먹었을 법한 아침을 차려 먹으며 갑자기 삶의 기쁨을 논하고 싶어졌다.


토요일 저녁, 오늘의*라는 수산물 플랫폼에서 반나절만에 매운탕 밀 키트와 튜브 명란 알을 주문했다. 깨끗이 손질된 대구 네 도막과 무엇 하나 더 넣지 않아도 되는 칼칼한 양념 구성에 단돈, 2만 3천 원이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싶다.



독일에서 매운탕을 먹겠다고 한다면, 흰 살 생선으로는 Dorade라는 돔과 친해져야 한다. 독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인데, 우럭의 비늘을 가진 도미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생김새는 영락없이 붉은 도미와 같고, 비늘이 우럭처럼 짙은 회색이다. 흰 살 생선이라 국물이 고소하고 달다. 생물은 살이 제법 단단해서 칼집을 넣어 구운 뒤 간장 양념을 끼얹어 먹어도 제맛이다. 중식이 먹고 싶은 날은 도미 탕수 하듯 도라데를 통으로 넉넉한 기름에 노릇하게 튀겨 낸다. 그 위에 식초와 설탕, 간장으로 만든 탕수육 소스를 부워낸다.


대단한 요리 실력을 갖고 있기에 갖가지 도라데 요리에 도전한 것이 아니다. 먹는 것에 대한 기억들이 떠밀려 오면 도리가 없다. 내 손으로 해 먹어야 한다. 배달이나 밀키 트는 꿈 꿀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선 수산이 있는 에데카 Edeka 슈퍼의 생선 코너는 고가의 수산 코너다. 포세이돈이라 붙인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웬만한 슈퍼에는 신선 생선은 없는데, Rewe 슈퍼 정도 되면 정육 코너는 있지만 생선 코너는 남루하기 짝이 없다. 에데카의 포세이돈은 오버 오젤 주변의 유일하고도 쓸만한 생선코너이고 집에서 걸어서 10분 차로는 5분이었다. 유럽 주재원 환경으로는 호사 중의 호사다.

에데카 생선 코너가 없었더라면 생물 생선을 사기 위해 30분을 차를 몰아 어마어마 주차료를 내가며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 Kleinmarkthalle나, 이태리식 수산 시장을 가야만 한다.

튜브 명란 알 또한 감동이다. 연핑크빛 튜브속 명란 알은 간도 세지 않다.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만들어 먹으니 꿀맛도 이런 꿀맛이 없다.

독일에서 명란 알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보자. 어디 한 번 구해보는 거다. 마트 한 켠 조림병 코너에 캐비어는 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갑상어알이 아니라 명태알이다. 포슬포슬하여 혀에 작은 알알들이 느껴져야 하고, 감칠맛이 도는 짭조름함이 제격인 명란젓 말이다. 캐비어로 대신 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몇 번 캐비어를 들었다 놨다 했다. 먹어본 일이 없는 캐비어를 사는 용기를 내기에는, 그리고 비빔밥을 해 먹기에는 캐비어를 숭상하는 많은 미식가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그만뒀다.


믿는 구석은 출장자들이었다. 후쿠오카 면세점처럼 다양한 형식의 명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한국 면세점에도 명란젓이 있다. 양념 간이 세서 명란젓이 시뻘겋긴 하지만, 독일 캐비어 보다야 낫다.

문제는 날라다 주시는 분인데, 1년에 한 번 한국에 간 남편에게 1년어치를 사다 달라 할 수 없고, 다량으로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그 맛도 마음에 들진 않았다. 남편의 친한 동료나 옆집 주재원 남편 분의 한국행이 있다고 하면 안면 몰수하고 명란젓을 부탁했다. 스티로폼 박스에 정갈하게 담겨 있으니 가격은 비싸고, 맛은 100점 만점에 70점였지만, 고생 끝에 구한 명란 비빔밥을 해 먹으면 꿀맛이다.


두세 번의 클릭으로 반나절만에 도착한 튜브를 보니 기가 막혔다. 집에서 꼼짝 안 하고 기똥차게 맛난 밀 키트와 명란 알을 보니 감사함이 하늘 찔렀다. 아파트 현관 앞도 아니고 우리 집 바로 앞까지 갔다 주면서 배달되었다는 기사의 문자에는 ^^웃는 이모티콘까지 붙어있다. 독일에서 장 보면서, 식당에서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단 한 번이라고 있었던가? 3유로짜리 Tea값을 안 내고 튄다는 누명을 써서 길거리에 세워지기나 했지, 단돈 3만 원에 배달에 이모티콘이라는 감정 담긴 서비스를 제공해겠는가?


제대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무엇을 먹는지 또한 잘 해내야 하는 건가 싶은 희한한 기분이 든다. 더 저렴하게 배달을 받을 수는 없는 건지, 어떤 밀키트가 더 맛있는지 나만 모르는 건지에 대한 불안감이 따라다닌다. 어디에 뭐가 맛있다더라 하는 정보는 쏟아 넘치고도 남는다.


살이 빠져 체격이 반쪽이 되고, 공황장애를 겪고, 지독한 흡연가가 되는 주재 생활이지만,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어보자면 선물 같은 시간이다. 손바닥 만한 튜브에서도 명란젓을 구하려 했던 지난한 시간들이 묻어 나온다. 집 앞에 배달되어온 밀 키트에 감동하고, 기사의 웃음 표시 하나에 감사한다.

호박씨는 이렇게 요새를 지낸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가만히 바라보며 삶의 솜털 하나하나까지도 온전히 느끼려고 느릿느릿 살아간다. 한국, 서울, 강남 복판에서 독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주재라는 시간이 준 선물 맞다. 맞고 말고...


앙리 마티스, Harmony in Red,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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