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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마트에 대한 마음, 마음, 마음

by 호박씨


오후 4시 한창 자랄 나이의 중고등학생들이 출출해질 때면 한인마트를 향해 걸어간다. FIS 프랑크푸르트 국제학교에서 최근거리의 마트는 바로 한국과 독일의 교차점인 한인 마트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서양 청소년들이 시험 기간이라 간식을 해결하러 줄지어 한독 마트로 가는 뒷모습이 좋다. 국위선양이 별 것일까 싶다.

한인 마트 사장님은 많이 사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호박씨처럼 현지 마트에서 해결이 안 되는 극히 일부의 제품만 선별해서 사는 고객은 인사를 건네지 않으신다. 영양가 없는 손님으로 찍힌 바다.

호박씨가 한인마트에서 구입하는 것은 오직 다섯 가지 아이템이다. 냉동 오뎅, 참외와 배, 부추 그리고 호빵. 대체 가능한 상품을 찾기 위해 현지 마트를 쥐 잡듯이 헤집고 다녔던 호박씨가 시간을 두고도 해결하지 못한 것 들이다.


먼저 오뎅. 독일에서 생선 관련 제품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바라, 오뎅은 일찍이 포기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네 식구가 달려간 곳에 있던 것이 오뎅꼬치 였다면 할 말 다한 셈이다.

얼마나 얼려진 상태로 냉동고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얼린 오뎅이라 오뎅 꼬치를 만들면 끓는 국물에 닿자마자 흐느적거린다. 그럼에도 감칠맛 나는 그 비릿함을 잊을 수가 없어서 호박씨의 냉동고엔 오뎅이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한인마트 사장님이 5년의 시간 동안 호박씨의 얼굴을 기억했을 리는 없겠지만, 혹여 칭한다면, 오뎅녀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참외와 배는 워낙 고가라 자주 사 먹기는 힘들었다. 마트 신선 코너에 두 알씩 포장되어있는 것을 철에 가끔 사서, 치즈처럼 슬라이스 해서 먹어 향수병을 달랬다. 참외는 아프리카나 스페인산 멜론으로 대신해 보았다. 배의 경우는, 서양배 중에서도 부드럽고 달달한 것을 사서 익숙해져 보려 노력했다. 배는 풍미 차이가 커서, 호박씨를 닮아 개코인 딸은 서양배를 전면 거부했다. '이건 배도 아니야'라는 표정이 서양배를 처음 먹은 날 어린 딸의 얼굴에 선명히 떠올랐다.


초여름이면 젓갈 향 그득한 부추김치를 먹어야 하고, 겨울이 오면 팥이 든 삼립호빵을 먹어야 한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닌데 먹고 싶단 생각이 멈추질 않는 게 문제다.

한인 마트에 호빵 온장고가 들어오면 딸이 온장고가 있는 입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호빵 하나에 1유로가 넘는다. 한국의 호빵 한 팩 가격을 기억하고 있는 주부로써는 차마 사고 싶지 않지만, 딸이 고양이 같은 눈으로 쳐다보면, 이내 사주고 만다. 조그만 녀석이 먹어봐야 실컷 먹어봐야 팥 호빵 한 개다.

어둑한 저녁시간 한인 마트에서 집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나선다. 살짝 불은 호빵의 겉을 껍질처럼 벗겨내며 아껴먹는 아이를 보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호빵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눌러내니라 아이 옆에서 연신 침을 삼켜보았다.


처음엔 한인 마트는 먹는 곳을 파는 곳이 아니라, 향수병을 치유하는 곳이었다. 엄마의 밥을 기억하게 하는 곳이었다. 한국을 맛보는 유럽 속 점(Dot)이라 여겼다.

불닭볶음면이 대유행이었다. 국제학교 틴에이져들이 매운 것 먹기 배틀 삼아 불닭 볶음면을 먹고 인증을 올리는 일이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한국 전쟁과 북핵으로 유명했던 한국은 불닭볶음면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현장에 있었다. 비비고 군만두를 혼자서는 두 봉지도 거뜬히 먹어 치우는 독일 어린이들에게 한국은 맛있고 멋있는 나라일 것라 믿었다. 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은 냉동고에 군만두를 여러 봉지 구비해두며 애국한다고 혼자 뿌듯해했다.


한인 마트 사장님이 친절하셨으면 하고 마음 깊숙이 바랬다. 비싼 한국 마트에서 꼭 필요한 것만 사는 지갑 얇은 호박씨 같은 한인에게도 인사를 건네주시길 빌었다. 미국계 국제학교를 다니는 탓에 현지 독일어는 서툰 아이들은 한인 마트는 자기들끼리도 자전거를 몰고 가곤 했다. 아이들은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주재원 자녀들이니 한인마트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선하게 대해주시길 기도했다.





유럽은 화장실 인심이 박하다. 방광 용량이 아기 때부터 어마어마한 인간들인지, 아기 기저귀는 차에서 교체하는 건지 대형마트도 화장실은커녕 어린이 화장실도 찾기 어렵다. 아동 복지는 잘 되어있어도 화장실에 대한 복지는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전 유럽이 부실하다. 원체 방광도 약하고, 얘들도 어렸던 지라 화장실에 대한 에피소드는 호박씨의 글에서 빠질 수 없는 글 꼭지이다. 한인 마트에서도 예외 없이 화장실 소동이 있었다.


마트 안쪽 깊숙이에는 마트 사무실과 김치 조리실, 직원 화장실이 있다. 한국어로 화장실이라고 쓰여 붙어있다. 한인 마트를 처음으로 함께 가주었던 위층 한국인 S가 한인 마트에는 화장실도 있다며, 자신 있게 보여주고 따라가 사용했던 경험이 있었다.

작은 아이와 둘이서 한인 마트를 간 날이었다. " 엄마, 쉬" 하며 마트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독일 마트였으면, 마트 밖으로 나가, 화장실이 있는 식당을 찾아, 들어온 길을 둘러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직원 사무실 방향으로 들어가니, 한인 마트 사모님이 소리치신다.


"여기 왜 들어오세요?"

" 화장실 좀 쓰려고요."

" 거긴 손님용 아니에요. "

" 아이가 급해서요."

" 손님용 아니라고요. "


한인 마트에 데려다줬던 한국인 S 네는 대식가이고, 현지 마트를 입에 맞아하지 않는 편이라 한인 마트에서 한 번에 100유로 이상씩 쓰는 마트의 큰 손이었다. 사장님과 사모님 두 분 다 성격이 좋으시다며, 한국에 있는 S의 취업준비생 남동생도 독일로 와서 한인 마트에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지냈다.

손님용 화장실이 아니라 VIP용 화장실 었나 보다.

여기 아니면 구하기 힘든 냉동 어묵은 사가야겠기에 쉬가 급하다는 아이를 달래 계산대에 섰다. 화장실 이용을 막으신 사모님이 계산을 하신다.

" 엄마, 나 쉬 급해."

" 응. 조금만 참아. 얼른 집에 갈게."

화장실 이용에 대한 언급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계산을 해주신다.


한인 마트를 운영하신 지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부부이시다. 어린 두 딸과 독일로 이민 와, 인근 유럽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인 마트로 키워내기까지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다. 부부의 두 딸들은 장성해서, 독일 현지 명문대를 나오고, 부모님의 슈퍼에 나와 캐셔도 했다.

20년 전 독일도 화장실 인심은 팍팍했을 터이다. 20년 전 어린 두 딸들과의 시작은 지금의 독일보다 고되었을는지 모르겠다.

혹독한 날씨의 독일에서 한국인들 속에서 훈기를 찾길 바랬던 마음은 꺼져간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인데, 사는 동안 나의 처음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조건 없는 응원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르게 살아낼 것이라 다짐했다.



현지 마트에서 모든 것을 구하며 한인 마트는 웬만해선 안 가야겠다 한 것은 화장실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네이버 카페가 관계망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2015년, 독일 맘 카페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마트 직원은 항공용 박스 포장을 자르면서 김치 봉투도 같이 잘랐나 보다. 종갓집 김치의 윗부분이 커터칼로 반듯하게 금이 갔고 금 간 자리는 스카치테이프로 마감이 되어있었다. 투명 테이프로 여며진 김치 봉투를 사간 주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김치 봉투를 눕혀 냉장고에 보관했다.

다음 날 아침 냉장고 속 범벅이 된 김치 국물은 사진에 담겨 카페에 오르게 된다. 새어 나온 국물을 치우며 그제야 솜솜 종갓집 김치의 입구를 살펴본 주부는 커터칼자국을 발견한다. 스카치테이프의 접착력을 제거하고 삐집고 나올 만큼 김치 국물은 강력하다.

독일의 맘 카페 멤버가 되려면 댓글과 게시글의 조건이 까다로웠다. 게으른 호박씨는 카페 회원아 아니었던 지라 이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마트 입구에는 한국어 게시판이 있는데, 주로 한국어나 독일어 강습, 집이나 차와 같이 비용이 막대해서 한국인 간의 신뢰가 중요한 건에 대한 알림이 붙어 있다. 그날은 김치 사진과 사과글이 붙어있어 알림판이 새로워 보였다. 서너 문장의 사과 내용을 읽고 딸과 마트로 들어갔다.


마트에 왠지 사람도 없는 듯하다. 여느 때처럼 냉동 오뎅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호박씨는 눈 맞춤을 하며 인사와 함께 계산해주시는 마트 사장님의 친절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5년을 지내는 동안 단 한번 볼 수 있었던 그날 그분의 미소였다.

결심했다. 한인 마트를 졸업해야겠어! 정을 띠어야겠어! 이곳은 그냥 마트일 뿐, 한국이 아니야.

물건을 파는 곳일 뿐, 한국에 계신 엄마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정의 내렸다.




참외 한 알을 깎아먹다 보니, 한인마트가 궁금해진다. 참외가 3월부터 흔한 한국에 오니, 참외는 더 이상 꿀맛 같이 귀한 것은 아니라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싶다.

한인 마트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 중에서도 판매가 가능한 상품은 할인을 해서 팔았다. 유통 기한이 지났으면 폐기 처분하거나, 무상으로 나눠줘야 할 법 한데 그렇진 않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나 싶을 정도로 기한 지난 할인 상품들은 매장 입구에 한결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트는 할인 판매까지는 하는 알뜰함과 VIP 고객응대의 성실함으로 5년 내내 변함없이 번창했다. 케이팝의 유행과 프랑크푸르트 주재원의 증가로 마트는 날이 갈수록 흥하여,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깔끔한 새 건물에 2호 점도 낼 수 있었다.

더 부자가 되신 마트 사장님과 사모님은 호박씨 같은 이름 모를 손님에게 이젠 넉넉한 마음으로 인사와 미소를 건네실는지, 그리고 화장실은 여전히도 VIP 용인지 확인하고 싶어 진다. 참외가 아무렇지도 않아지니, 한인 마트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마트가 흔해 빠진 거라, 언 오뎅은 구하기도 힘든 한국이라 글로 한껏 여유 부려본다 여겨주시길.


대문 그림

에바 알머슨, Cook,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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