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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14. 2022

하룻밤의 꿈

첫날 방문자가 30명이 넘었다. 오전 매출이 20만 원이 달성됐다. 예상하지 못한 바였다.

가게문을 열면서 사람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한다면 세상은 웃을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소리라 할 것이다.

완벽주의자에 공황 장애 환자에게는 맞는 소리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싶어 오픈 전날 하루 종일  주절거렸다.


"내일 다섯 명이나 오겠어? 구움 과자 퇴근할 때 다 가져가겠지 뭐."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다섯 명. 다섯 명. 다섯 명.

개똥이라 천하게 이름 붙인다. 낳은 자식이 줄줄이 죽어나가고 이젠 더 이상 아이를 먼저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는 개똥이라 부른다. 운명에게 말하는 거다.

" 우리 집에 네가 데려갈 귀한 것은 없다."


7월 28일 목요일 그날이 왔다.

첫 수능날이 생각났다.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마음이 편안했다. 드디어 이 짓거리도 끝이구나 했다. 공부의 기역자도 안 쳐다보고 살아야지 했다. 못 보면 재수하면 되지를 수백수천만 번 되뇌었다.

동생과 나 우리 둘, 친정 엄마까지 우리 셋은 여왕의 오후를 계약한 날부터 오픈날까지 노래를 불렀다.

" 안되면 영어학원 하자."

르 꼬르동 블루 런던에 베이킹을 배우러 간 것이지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내가 국제 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남편 주재를 따라간 아이들이 국제 학교를 다닌 것이었기에,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 네이티브 스피커이다. 그러니 쟁쟁한 영어 학원계에서 우리가 발 붙일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문처럼 외운 것은 안되면 말지 였다. 중얼거린 순간마다 우리에겐 두근거림과 쿵쾅거림이 다가왔다.


공황장애와 양극성 신경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첫 창업 그리고 첫 개업은 떨리고도 남을 일이다. 이제 막, 공황 장애를 조금 알아가고 있는 나와 신경정신과 약을 20년째 먹고 있는 동생에게 버겁고도 남는 일이다. 화병이라 이름 부른 엄마의 불안증에도 마찬가지였다.

27일 수면 유도제를 먹고 내일을 위해 잘 자야겠다 싶어,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동생에게 다음날 잘 잤냐고 물으니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 언니가 5명 온다고 했잖아. 그 말 듣고 나는 푹 잘 잤지."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5명은커녕 20명도 넘는 손님이 여왕의 오후를 찾았다.

첫 손님으로 동생의 제자들이 왔다. 영어 과외받던 꼬마들과 그 엄마들이 찾아와 오만 원어치를 팔아 주었다.

음료 여섯 잔을 만들어야 하는데 머리가 하얘졌다. 제빙기 얼음이 바닥 여기저기 떨어졌다. 에이드 메뉴는 왜 한다 그렇가지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친정엄마가 손수 만든 수제청은 케이크에도 들어가서 에이드로 쓰면 딱이겠다 싶어 파는 것. 수제 에이드라고 하면  핸드메이드 디저트를 파는 가게 콘셉트와도 잘 맞지 싶었다. 오픈 전 주에 열 번도 넘게  연습하고 배 터지게 시음했던 것인데 닥치니  뭐가 뭔지 기억이 안 난다. 김연아 선수가  새삼 갓 연아로  느껴진다.


"천천히 할게요. 오늘 오픈 첫날이니 봐주세요."

공황장애가 오고 나서부터  엄살과 변명이 늘었다. 예스맨이었던 나는 뭐든  주어지면 잘 해내야 한다고 했었다.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 더 못하더라. 못하는 것도 모자라 병까지 나더라.


지인들이 몇 차례 오고 가더니 매출은 10만 원으로 떨어졌고, 우리에겐 시간이 주어졌다. 피로가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 우리 매장 연지 한 1년 된 것 같다." 

" 나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 문 닫고 집에 가서 잘래."


태평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월세는 한 달 뒤부터 내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여유가 만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것처럼 이 순간들이 달콤하다. 대단하다 또는 부지런하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칭찬도 잘 듣고 있으며 박 사장이라 부르는 명칭도 배시시 웃으며 들어내고 있다. 하룻밤의 꿈이라면 꽤나 긴 하루다. 하루살이의 평생도 하루고, 억겁을 사는 바위의 하루는 천년만년이니 하루의 길이는 상대적인 것이라 믿는다. 첫날 같은 마음으로 1주, 1달, 1년이 지나가길 바라본다. 오늘처럼 내내 달콤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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