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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ug 15. 2022

여왕의 오후 바리스타는 커피 못 타던 존재

 커피도 차도 꽤 만든다. 손맛이란 것의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 메이드, 손으로 만든 것에는 기운과 진동, 영혼까지도 실린다. 무엇보다 맛의 비밀은 조물닥 조물닥 접촉한 시간 동안에 깃드는 아닐까 한다. 

광교  대로의 쇼핑몰도 아니고, 호수 공원 언저리의 건물 뒤쪽 상가동에 위치한 가게에 들어와 음료를 달라고 한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며,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인데도 문을 밀고 들어온다. 

 아무리 커피 1,500원 행사를 한다고 해도 나 같으면, 편의점 가서 아는 브랜드의 아는 맛 음료를 사 먹을 것 같은데 무거운 여왕의 오후 문을 밀고 들어와 내게 음료를 청한다. 여왕의 오후 매출을 올려준다. 이게 감동이 아니라면 무엇이 감동일까? 

마감까지는 동생이 하고 식구들 저녁 준비를 한다고 3시쯤 퇴근하기에 마감의 맛은 파티시에인 동생만이 맛을 본다. 

" 언니, 언제 손님이 *** 이였구, 우린 재구매 비율이 20%가 넘는다!" 

애정이 샘솟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단골이란 말이 얼마나 달콤한지는 장사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아 한잔을 주문해도 고맙다. 고마움이 우러나 신나서 커피 머신을 켠다. 암말 없이 빨대 꽂아 목을 축이며 나가는 이들의 손을 바라보면 미소가 솟아난다. 내가 만든 것이 그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순간에 오는 쾌감이란, 뭐라 설명하기 쉽지 않다. 




경영학과 전공이 패션을 하고 싶다고 의류회사에 입사했다. 학벌과 열정을 봐준 서울대 출신 CEO와의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주어지지 못했을 기회였다. CEO 외에 그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뻔했다. 패션이라고는 꿈만 꿨지 실무는 1도 교육받지 못한 여대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팀의 대리들이 '뭉'이라고 불렀었는데, 그것은 사고뭉치의 줄임말이었다. 

일을 못하면, 커피라도 잘 타야 했었던 것이었다. S대 정도 나왔으면 커피는 잘 타야 하는 것이었는데, 전혀 그러하지 못했다. 믹스 커피를 탕비실에 구비해두면 될 것을, 회사는 비용을 절감하는 알뜰하기 정도가 극강이어서 인스턴트커피 따로, 프림 따로, 설탕 따로 구비되어있었다. 

덩치가 산만한 팀장은 나를 포함한 같이 입사한 여자 동기들에게 아침마다 커피 심부름을 시키다가, 계속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나에게만 커피 주문 하기 시작했다. 아침 되면 깨지는 것은 나였으니, 커피 시키기도 편했을 것이다. 


" 한약이야?"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다. 문제는 물이었나 보다. 커피라도 잘 만들고 싶었다. 그나마 커피는 맛있게 타네 또는 공부 말고 쓸모가 단 한 개는 있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온 신경을 닮아서 탔는데 한약 맛이랜다. 

그럼 본인이 타 먹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거구의 몸이라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던 팀장님에게는 커피를 타기 위해서 탕비실에 들락 거리는 수고가 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필요해 보였더랬다. 

커피 한 잔도 맛나게 못 타는 학벌만 좋은 저 여사원은 팀에서 날려버리는 게 최선이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비서실 겸 경영관리팀으로 끌려갔다. 아끼던 CEO가 고개만 돌리면 돌리면 보이는 회장실 바로 앞 팀이었다. 

한 달을 다니고 잠적을 했다. 사직서도 남길 용기가 없었다. CEO에게 이메일만 한통 보냈다. 패션회사가 어떤 맛인지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진 이름이였으며 아직도 그 회사 이름만 발견하면 없는 쥐구멍에라도 몸을 디밀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커피 머신을 켜 예열을 하고, 그간 조사한 최상의 레시피 조합으로 커피 머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아메리카노, 까페라떼 뭐든 도깨비방망이처럼 맛나게 만들어내서 상품으로 팔려나간다. 호박씨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식구들에게 밥을 차려 주고는 맛있냐고, 맛이 어떻냐고 재차 물어보기가 일쑤였다. 요샌 식단과 메뉴를 생각할 시간이 줄다 보니, 냉장고 열어서 되는 데로 저녁을 차리고 있는데 주부 경력이 되다 보니 다 먹을 만하다. 주재원으로 한식 먹기 힘든 상황에서 5년이나 지내다 보니, 모든 재료가 손 닿는 곳에 있는 현재가 고맙기 그지없다. 독일 주재 기간도 음식 솜씨 향상에 기여한 바가 크다. 

먹어 보면 꽤나 솜씨가 좋은데, 남편은 습관처럼 퇴근하면 밥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먹는다. 사춘기 아들은 짜릿한 것만 즐기니 마지못해 와서 않으니 다 먹을 때까지 말 한마디가 없다. 그래서 늘 물었다.

" 맛있어? 응? 맛있어? "

존재 가치를 구걸했었던 것 같다. 


여왕의 오후에 출근하고 나서부턴 식탁에 앉아한 입을 먹으면서부터 자랑이 늘어진다.

" 와, 오늘은 또 왜렇게 잘한 거야. 진짜 못하는 음식이 없구먼." 

저녁 반찬을 집어 들며 이렇게 큰소리를 치다 보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 무사히 돌아와 모인 이 순간 만을 즐길 뿐이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에 저녁밥이 이리 맛 좋은 거다. 그들도 그들로써 최선을 다했기에 이렇게 무사히 모여 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 빠지게 칭찬을 구걸하지 않는다. 힘들게 그들의 하루를 나에게 보고하라며 걱정하는 듯한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여왕의 오후는 맛도 좋지만, 정신 건강에도 좋다. 일단 나부터 살아나는 중이다. 새로워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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