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박씨 Aug 14. 2022

환영받지 못하는 취업

여름휴가로  늘 시댁에 갔다. 독일을 가기 전에도 독일 다녀와서도, 아버님이 말기암으로 고생하신 작년을 제외하고 한결같이 해운대로 휴가를 갔다.



여왕의 오후를 오픈하고 열흘 만에 가는 시댁에는 작년 가을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오십 평의 아파트에 덩그러니 어머니만 계신다. 살아 계실 때 아버님은 외출도 외식도 싫어하셔서 여름은 물론이고 어느 명절이고 부엌데기처럼 해운대 시댁에만 줄곧 지냈다. 콘도처럼 편하게 여기고 오라는 말씀을 삼 개월 전부터 하셨다. 다른 데 갈 곳이 있으면 가지만 오고 싶으면 해운대로 오라고 거듭거듭 전화하신다. 

내키지 않는다. 아토피가 있어 바닷물 닿는 것이 따갑고 싫다. 나를 닮아 아토피가 있는 큰  아이도 해변가와 바다를 싫어한다. 네 명 중 과반이 해수욕을 꺼리고 어머니 본인은 바닷물은 얼씬도 안 하시는데, 해변에 다녀오라고 성화시다.

아이들은 독일에서 다 키워내서 십 대인데, 같이 휴가와 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싶은데 어머니의 기억 속엔 나도 얘들도 마냥 어리고 아들과 며느리는 늘 젊기만 한가보다.

" 해운대는 일부러도 오지 않나?"

기장 아난티 힐튼과 오시리아 개장으로 썰렁한 해운대는 어머니의 주장을 무색하게 했지만 말이다. 




출발 전날 여왕의 오후 아메리카노 행사를 진행해서 커피머신도 나도 열일 하고 있었다. 아주버님이 울산에서 치과를 하시는 큰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 휴가비 아끼려고 해운대 오는 거겠지만, 그래도 시어머니 생각해서 오는 마음도 조금은 있지 않겠나 하고 나는 생각해." 

 휴가비를 아끼려고 시댁으로 휴가를 간단 말인가? 본인은 하지 않을 일을 상대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의 원천은 어디인지 궁금하다. 치과의사를 남편으로 둔 큰 시누이니 휴가비를 아끼기 위한 선택을 해본 적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파라다이스 해운대에 애프터눈 티와 망고빙수는 30만 원 상당이며 예약 잡기 쉽지 않을 만큼 인기가 좋다 하신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과 다녀오라며 예약을 해주신다고 한다. 백번 고맙다고 하고는 전화를 마무리했다. 커피 손님이 매장에 들이치는데 전화를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디저트 카페를 오픈했고, 일하고 있는 중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남편도 말하지 않았나 보다. 큰 시누이는 전혀 알고 있는 눈치가 아니다.


오전에 싸 둔 짐과 아이들을 데리고 매장으로 오라고 남편에게 일러두었다. 완성된 매장을 처음 본 딸아이 눈이 휘둥그래 졌고, 아들은 동생이 만든 달콤한 마들렌을 즐겼다. 남편은 3만 원 정도의 디저트를 본인 카드로 사고 시어머니를 챙겨다 드린다 했다. 박스 가득 채워 넣고 해운대에 들고 간 여왕의 오후 마크가 찍힌 디저트 박스가 자랑스럽다. 이걸 내가 이룬 거지 말입니다 싶은 생각에 미소가 떠올랐다. 

5시간 만에 도착한 시댁. 어머니는 아파트 앞에 나와계셨다. 반갑게 마주해주시는 어머니께 박스를 안겨드리고, 동생이 디저트 카페를 오픈했다고 말씀드렸다. 잘 못 알아들으신다. 귀가 어두우셔 보청기를 끼시는 탓도 있지만, 동생의 창업은 어머니의 관심사가 아닌가 보다. 또한 나의 취업도 어머니와는 관련이 없는 듯하다. 


 10시 나절에 도착했지만, 다과상을 차렸다. 남편이 여왕의 오후 디저트 박스를 열어 어머니께 권한다. 어머니는 원체 밀가루가 들어간 빵이나 과자 종류는 입에 대지도 않으신다. 소화도 안되시거니와 드셔 본 경험이 없으셔서 맛있다 생각하지 않으신다. 남편이 눈치를 보며 시댁에 있는 3일 동안 어머니께 몇 번 권했지만, 드시지 않았다. 결국 박스 채 냉장고 행이다. 


아침을 차릴 때마다 민트색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은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어머니의 원칙이시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미리 반찬이며 국이며 준비해두셔서 차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리 준비해두니 불 앞에 서서 음식 할 일 없을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감사할 일이다. 말씀하실 때마다 일을 덜어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식구들이 아침을 먹고 나면, 혼자 시댁 주방에서 민트색 박스를 꺼냈다. 냉장고에 넣어 뒀는데도 어찌나 맛이 좋은지. 휘낭시에며 마들렌이며 꿀맛이었다. 더 이상 어머니에게 드시길 권하지도, 취업을 했노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동생이 창업을 했다고도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해도 별 수 없는 일이다. 시원한 휘낭시에의 달콤함이 위로해 준다. 당장 가족이 응원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섭섭해할 필요 없다. 하루씩 채워가는 여왕의 오후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 달콤함을 함께 누리는 이가 이미 많기에 든든하다. 의미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남이 달아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나저나 큰 시누이가 크게 쏘신 해운대 파라다이스 휘낭시에보다, 냉장고에서 꺼내먹은 여왕의 오후가 더 맛있으니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고슴도치 자기 새끼 이쁘다고 이러는 건지, 아님 객관적으로 그러한 건지 모르겠다. 애프터눈 티세트를 30%도 먹지 못하고 왔다. 남편도 한입 먹고는 더 이상 손도 대지 않는다. 

" 여왕의 오후 아메리카노가 더 맛있는 거 같아."

파라다이스 CEO 님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여왕의 오후 파티시에가 들으면 더 환하게 웃을 일이다. 

하하하하하! 파라다이스는 이겼고, 다음은 힐튼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호박이 넝쿨째 여왕의 오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