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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 하우스 다오

by 호박씨

2010년 첫 독일 주재 기회가 무산되고 남편이 잠을 이루지 못해 했던 이유는 단순히 커리어에 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편 회사는 규모가 있는 편이라, 수많은 직원 중 동기들끼리 해리포터 패거리처럼 친해서, 동기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이다 정도는 짐작하고 지냈다. 신혼집 위치에 따라 서울 집값 분포도가 나오는데, 남편은 서울서도 전셋값이 가장 싼 동네에 신혼집을 마련했으니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답하기를 꺼렸다.

지금이야 누가 집들이를 하냐 할 텐데 그땐, 팀원들을 초대해서 신혼 집들이도 했었다. 집들이 언제 하냐고 팀장님이 물어도 그는 얼렁뚱땅 넘어가야 했다. 남편은 4남매의 막내이고 연배 있으신 시부모님 밑에서 보수적으로 자란 탓에 예의가 중요한 사람이었으니, 집들이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초라한 신혼집 때문에 집들이 초대는 결국 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주재 직전 프랑크푸르트 법인으로 출장을 갔다 온 남편이 말한다.

"우리 집은 정해졌어. 괜찮지? "

엥, 괜찮다는 게 뭐지? 나는 하우스에 살고 싶은데.... 드림하우스! 단독주택! 하우스 중의 하우스 3번 아인파밀리엔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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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출장 간 열흘 동안 나는 눈이 빨개지도록 밤새 웹서핑을 했다. 임보빌리안immobilien, 독일 부동산 웹사이트에 들어가 매물도 보고,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서 사진으로 감도 잡아가면서 무럭무럭 하우스의 꿈을 키워갔다. 단독 주택엔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단독 주택은 일 많아요 라는 사람들의 자랑 섞인 경고를 읽으면서도 나는 굴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5살, 3살이었던 어느 날, 현관문에 편지가 꽂혀있었다.

아랫집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나는 대학의 강의를 나가고 있는 평범한 지성인이다. 정말 시끄러워도 너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간곡히 부탁하건대 조용히 좀 하고 살자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문체는 깍듯했지만, 편지의 내용은 자세했다. 나는 베란다에 말아 넣어두었던 대형 뽀로로 매트 2개를 거실과 부엌에 깔았다. 20평 남짓의 집이라 거실을 대각선 방향으로 아이가 뛴다고 해도 1초가 안 걸렸지만, 8시가 지나면 아이들을 신신당부했다. 뛰지 마라, 웃지 마라, 울지 마라. 편지의 내용을 떠올리며 조심 또 조심하라고 아이들을 혼냈다.


문제는 작은애였다. 야체증이란 병명이 있다. 아기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보채는 증상이다. 아기가 다 그렇지 하겠지만, 작은 애는 태어나자마자 밤 8시가 되면 2시간 넘게 울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 작은 애는 업고, 큰아이는 걸려서 병원을 나선 적도 몇 번이었다. 체온도 정상이고 낮의 컨디션도 좋았는데 밤만 되면 우니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아이는 쌔근쌔근 잠이 들곤 해서 2번여 집을 나서 보고 야체증이라 짐작하고, 목놓아 우는 아이와 밤을 버텼다. 그 와중에 시끄럽다는 편지. 3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밤에 목놓아 우는 아이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울 거면 이불속에서 울라고 했다. 나는 편지가 무서웠고, 편지를 쓴 사람도 무서웠다.


추석이었다.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간단히 차와 과일을 먹겠다고 들르셨다. 어른 다섯, 아이 한 명이 방문하셨으니 작은 나의 집은 10명의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인터폰이 왔다. 아랫집에서 너무 시끄럽다며 항의를 했다고 경비분이 연락을 주신 거였다. 우린 모여 앉아 과일 먹고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하필이면 오늘까지 연락이 오다니. 시어른들이 무슨 일이냐며 물으셨고, 씩씩한 막내 시누가 그간 사정을 꼬치꼬치 묻고는 아랫집으로 나를 끌고 내려가셨다.

그분을 드디어 만났다. 그 남자는 명절인데 집에 혼자 있었다.

"저희 지금 뛰는 사람 한 명도 없고요. 일곱 명이 어른이라 이야기만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이 상황인데 시끄러울 리가 없다며 시누이가 남자에게 들어가 봐도 되겠냐고 청했다. 그 남자는 들어와서 얼마나 시끄러운지 한번 들어보라며 허락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 그 집 8시에 애들 목욕하죠? 소리 다 들립니다. 제가 그 집 스케줄을 다 알아요. 집 앞에 담배꽁초 혹시 보신 적 있나요? 그거 제가 피우고 간 겁니다. 몇 번을 올라갔는지 모릅니다. 제가 차마 벨 못 누르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내려간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

소름 끼쳤다. 정중하고 차분한 그의 말투는 편지와 결을 같이 한다.

처음엔 편지였지만, 그다음은 인터폰이었고, 또 그다음은 우리 집으로 올라왔으며, 또 하루는 라디오를 최고 음량으로 화장실 안에다 틀어놓고 하루 종일 외출을 해버렸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밤 11시경에야 아이들과 나는 비로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약 5개월 후,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해가 들지 않는 1층으로 이사를 했다.


남편에게 독일 집은 서울 전셋값 평균보다 한참 저렴한 우리 동네를 탈출하는 동아줄이었고, 나에게 독일 집은 아랫집이 없는 주택이었다. 그림 같은 집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잠을 청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우리 둘째를 이불로 뒤집어 씌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집이 나의 드림하우스였다.


사실 법인으로 출장을 나간 남편은 집부터 알아보았었다. 전기세나 수도세 등의 관리비를 제한 주재원의 월세는 주재원 지원 항목이다. 직급에 따라 월세 지원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지원이라고 해도 한도를 꽉 채우기보다는 한도보다는 조금은 싼 월세를 얻는 분위기였다. 아니, 그가 그렇게 눈치로 짐작하고 있었다. 전임의 보눙의 월세는 지원한도 보다 월 200유로, 30만 원 정도 저렴하다. 법인장님이 남편에게 말한다.

" 전임 집에 그냥 들어가지? "

이 경우, 회사 차원에서는 복비가 절약된다. 전임자가 한국 귀임하고 빈집에 남편이 바로 들어가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집을 구하는 기간 동안 소요되는 레지던스 비도 절약된다. 전임자의 귀임과 후임자의 파견이 동시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파견되자 마자는 회사 주변 레지던스에서 지내다가, 집이 구해지면 입주하길 대부분이었다. 법인장님의 말씀은 전임자의 집도 인계받는 것이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것이셨다. 이 장면에서는 그러하다. 그 시간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내가 잠 안 자고 독일 집을 찾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전임 분의 Wohnung 보눙 전경과 집안 사진이 담긴 남편의 핸드폰도 뿌리치고 말이다. 그의 출장 기간 동안, 한 달도 안 남은 컨테이너 이사 준비를 하니라 진이 다 빠져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무슨 힘이 그리 났는지 모르겠다. 출장에 , 긴장에 그 나름으로는 속이 시끄러웠던 남편은 내 날뜀을 받아 줄 여력이 없다.

" 나보고 어쩌라고? "

" 그 집에 안 들어간다고 해야지!"

평소 같으면 요모조모 자상하게 설명해 줄 남편이지만, 하늘 같은 법인장님 말씀은 거역할 수는 속상함과 선택지가 없는 법인 주재원의 입장을 그는 길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안된다 한마디다. 나도 속상했다. 빌라에 2층이라니.... 그간 밑집 남자 때문에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한 것은 나만이지 남편은 1도 우리의 고생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들 : " 엄마, 한국 아이스크림 왜 이리 맛있어? 난 월드콘 캐러멜 맛이 제일 좋아."

호박씨 : " 그래. 많이 먹어. 근데 월드콘이랑 비슷한 맛 다른 것도 많잖아. 왜 월드콘이 제일이야? "

아들 : " 종류가 많잖아. 오리지널, 초코, 캐러멜. 3가지 중 선택할 수 있잖아."

호박씨 :" 넌 캐러멜 맛만 먹는데 다른 종류가 왜 필요해? "

아들 : " 내가 골랐잖아. 다른 맛 안 먹어도 고르는 재미가 있어, 엄마."


월드콘도 골라먹어서 좋은데. 집도 골라 살아야 좋은데. 삶이 이렇다. 월드콘 하나를 사 먹어도 선택지가 여럿이어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참말로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던, 그래서 이젠 그립기까지 한 나의 독일 집은 선택의 자유 없이 내게 다가왔다. 그땐 초대하지 않은 손님 마냥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골라먹는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아니 맹렬하게 우리의 독일 집이 정해지고, 나의 주재 준비는 다음 단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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