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 발령이 나고 부랴부랴 샀던 캐논 프린터가 쿨럭거리더니 멈춰버렸다. 2014년 12월 코스트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말 수고했어, 캐논 E569.
주재 발령이 나자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사들였다. 코스트코를 통째로 컨테이너에 싸 넣고 싶었다. 코스트코가 2015년 광명에 오픈을 하고 나는 코스트코빠가 되었다. 변변한 마트도 없던 우리 동네의 삶의 질이 격상된 기분이랄까? 가장 가까운 코스트코가 집에서 안 막히면 30분, 막히면 1시간도 걸리는 양재점은 이였다. 겨우 주차를 하고 줄 서서 피자를 먹는 고생을 해야 했었는데, 새로 생긴 광명점은 사람이 없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3번의 나들목을 세어가며 10분의 하이웨이 운전을 즐겼다. 운전의 DNA는 깨알만큼도 없는 나였지만, 차라고는 한대도 볼 수 없는 서해안 고속도로는 나만 운전 잘하면 되는 거였다.
1년 후 나처럼 코스트코를 그리워하는 미국인 친구 T와 가까운 코스트코를 가고야 말겠다며 , 구글맵으로 거리를 계산해보았다. 유럽 대륙 내의 유일한 코스트코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Villebon-sur-Yvette ( 못 읽겠다. 이게 하나의 도시 이름이라니...). 700km을 한 번도 안 쉬고 운전해 가면 6시간 만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 OMG!"
독일 가면 프린터도 못 살 거야 싶은 말도 안 되는 걱정에 프린터 한 대와 4년의 주재기간 동안 필요한 블랙 잉크, 칼라 잉크도 산더미만큼 샀다. 프린터는 친구가 없던 아이들의 또봇, 시크릿 쥬쥬 색칠 공부를 출력해주었으며, 스캔 기능도 있어 각종 문서를 보내는 데에 큰 이바지를 하였다. 수고가 많았어서 정이 많이 들었다. 다시 바다 건너 돌아와 여전히도 내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잘 도와주고 있는 그가 나는 기특하다.
캐논 고객센터 말이 국제전자센터에서 방문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하루빨리 그를 살리고 싶은 나는 프린터를 데리고 가서 고쳐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생각보다 무겁다. 집에서 5분 거리라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점심시간에 잠시 내려 달라고 했다.
그의 병명은 롤러의 늘어짐이었다. 종이를 빨아들이는 롤러는 원래 소모품인 부속이라 시간이 지나면 교체해줘야 한다고 하신다. 간단하다. 병원비 만팔천 원, 진료시간 10분. 여러모로 맘에 드는, 잔병치레도 없는 그다. 남편의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완치된 그를 데리고 나올 수 있게 돼서 좋았다. 데리러 올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 길 건너 맞은편이 보이는 전자센터 앞 벤치에 프린터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국제센터 맞은편에는 2014년 12월 출국 일주일 전 방문했던 아버지 친구분의 치과가 있다. 나는 운전에 자신이 없다. 집에서 치과, 다시 치과에서 아산병원으로 갈 담력이 안된다. 매일 애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부모님의 약국으로 출근하는 정도, 코스트코 가는 길을 외워 쇼핑가는 길밖에 모르니 사실 운전한다고 말하기도 뭐했다.
서울의 남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이동하는 긴 동선에 영하의 날씨, 게다가 두 꼬마와 함께라면 택시를 탔었으면 될 터였다. 그러나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언덕 위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6515번을 타고 서울대 입구역까지 간다. 독일이라는, 주재 살이라는 더 큰 역경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니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오기 같은 거였을 테지.
아이들과 나는 서울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교대역으로, 교대역서 다시 3호선 남부터미널역으로 향한다.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오는데 5살인, 만 나이는 갓 네 살이 된 둘째는 자꾸 뒤처진다. 어디선가 들은 과학 상식인데, 추운 날 키가 작은 아이들의 경우 아래층 찬 공기 때문에 키 큰 어른들보다 더 차갑고, 더운 날에는 덥혀진 땅과 가까워서 더 덥다 했다. 영하의 날씨라 잔뜩 입혀가지고 나왔다더니 아이는 뒤뚱뒤뚱 걷는다. 안 그래도 먼 거리인데 옷까지 두텁게 입혀놨으니, 딸아이에겐 쉽지 않은 여정이다.
남의 나라에 가면 치과가 어디에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의 역경 베스트를 꼽는다면 치과의사 없는 무인도에서 썩어가는 이였다. 나는 무인도 가기 전 사전 점검하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치과를 예약했더랬다.
아버지의 대학시절 친구이신 치과 선생님은 독일 가게 되어 축하한다며 진료비도 안 받으셨다.
"선생님, 독일 가면 교정이 공짜예요. 제 주걱턱 교정해보면 어떨까요?"
"이뻐져서 뭐하게?"
"그러게요."
"지금도 이뻐. 그리고 교정하면 잇몸을 다 흔들어 논다고. 그러면 나이 들어서 고생해. 그냥 살아. 나중에 고생하지 말고."
아버지 친구분이 맞으시다. 내 아버지처럼 간단명료하시고 꾸밈도 없으시다.
맘이 가벼워진다. 이쁘단 말을 때문인가?
독일 거주자는 의료보험 가입이 의무로, 비자 발급 시 보험가입이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의료 보험은 저렴한 공公보험과 비싼 사私보험으로 나뉜다. 법인이 주재원의 소득을 증빙해주므로 사보험 가입이 가능하며, 회사가 주재원의 사보험비를 부담한다. 사보험은 공보험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와 빠른 병원 예약이 가능하다. 사보험 보장 항목 안에는 각종 병원비가 들어가는데 회사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치아 교정이 포함된다.
나는 부정교합 일명 주걱턱이다. 11살에 교정을 알아보았었는데, 통증도 심하고 끼니 못 먹는 날도 많다고 해서 치아 교정을 하지 않았다. 물론 비용도 부담스러웠고... 한 방에 끝나는 안면윤곽술의 고통을 2,3년 정도의 기간으로 나누어 체험한다고 들었다. 공짜인데 안 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주재원들 사이에 있는지라, 아픔도 감수하고 주재원 와이프들은 다들 교정을 한다. 아픔이 있다는 건 공짜는 아닌데... 치과의사가 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으니, 나에겐 교정을 안 할 명분이 생겼다. 걱정 하나 덜었으니 맘이 가벼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산병원으로 나서기 전에 치과 건물 1층 본죽에서 죽 두 개를 주문했다. 애들은 반도 못 먹었다. 한 접시만 시켜도 우리 셋이 먹을 양이다. 그래도 아깝진 않았다. 이 따뜻한 죽은 남의 나라 가면 없으니까 말이다. 독일 가보니 죽집은 진짜 없었다. 쌀 만나기도 힘든데 죽이 있을 턱이 없다. 반도 못 먹은 죽이 아까워 포장해달라고 했다. 날은 추운데 남은 죽을 챙기랴 아이들 손을 잡으랴 번거롭다. 그래도 꿋꿋이 본죽 쇼핑백을 들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아들의 탈장 수술을 해주신 소아 비뇨기과 선생님께 아들의 야뇨증 약 1년어치를 처방받았다. 나가서도 밤쉬가 계속되면 어쩌나 걱정을 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아들은 신기하게도 컨테이너 이사를 한 날부터 밤 쉬를 멈추었다. 아이도 닥칠 변화를 예감하고 긴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5년 동안 나와 아이를 괴롭힌 야뇨증은 한국을 떠나면서 우리를 떠났다. 출국 준비를 하니라 정신이 없어서, 아들의 XL 사이즈 기저귀가 밤새 전혀 젖지 않은 날이 며칠 이어졌지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독일 나가서도 한 달가량은 평소처럼 기저귀를 채워서 재웠다. 이불 빨래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그렇게 했었고, 문득 아이의 야뇨증이 나았음을 깨닫는 여유가 생긴 날도 왔다.
치과 선생님은 우리가 돌아오기 한해 전, 2018년에 돌아가셨다. 한국 가면 치과 가야 하는데 하니 아버지는 친구가 간암 판정을 받고 채 한 달이 안돼서 가셨다고 말씀해주신다. 간판을 떼어내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니 돌아가신 치과 선생님의 성함이 적힌 간판은 건물 정면에 그대로 달려있다. 본죽도 그대로다. 길 건너에서 건물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2014년 12월로 돌아가 있다. 교정으로 예뻐지고 싶었던 서른 끝의 나는 이제 곧 마흔 중반이며, 야뇨증을 앓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치과는 텅 비어있고, 난 지금 8살 먹은 캐논 E569와 함께 길 건너에서 빈 병원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