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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이십니다.

- 야뇨증과 탈장 수술

by 호박씨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도, 민간 비방이라는 닭똥집을 갈아 먹여도 소용이 없었다. 6살에겐 너무 쓴 한약을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먹이는 노력을 해도, 6시 이후에는 물도 못 먹게 하는 고역을 아이와 함께 겪어도 아이의 밤 오줌은 멈추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남편도 실수가 오래갔더라면서 행여라도 내가 본인 아들 탓으로 돌려 아들 구박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셨다. 남편의 실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뿐이었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자연히 없어지려면 7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 어머니는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도 본인 고생 이야기는 일체 없으시고 괜찮다, 크면 괜찮다 라고만 하신다.


마지막으로 간 H한의원에서는 밤에 채우던 기저귀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 조언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땐 청소년용 기저귀 자체가 안 나오던 때여서( 지금은 굿나이트라고 야뇨증용 기저귀가 시판되고 있다.) 정말 드물게 있는 북유럽의 덩치 큰 아이들이 쓰는 기저귀 중에서도 가장 큰 사이즈의 기저귀를 사서 착용해 아이를 재웠다. 그것도 6살의 소변 양을 감당하지 못해서 새어 나오기 일쑤였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에겐 지릿한 냄새가 낫다. 그 기저귀가 채우지 말라니!

이 비싼 한의원이 정말 마지막 기회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조언을 내 온 힘을 다해 행해보리라 생각했다.


" 또 쌌어!"

한밤중에 오줌 벅벅이 된 아이를 깨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바꿔주기를 , 정도가 심한 날은 세 차례나 하게 되었다. 자기 전 아이 머리맡에 새 잠옷과 새 이불을 두 개씩 마련해두고 수시로 아이를 확인하고 깨고 자기를 거듭했다. 자도 잔 듯하지 않았다. 아들도 그랬을 것이다. 자다가 야단을 맞았고 심지어 어떤 날은 그 6살에게 엄마가 귀청 떨어지게 소리를 지르며 혼자 씻으라고 했었으니까 아들에게도 악몽도 그런 악몽은 없었다.


3개월을 그렇게 보내고 나는 더 이상 H한의원을 가지 않았다. 길고 긴 검색 끝에 6살이 되면 야뇨증 판정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치료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어린이 비뇨기과 있는 아산병원을 향했다. 2014년 10월이었다. 아이와 나의 전쟁은 여기 까지야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엄마가 더 이상 너의 꿈에 괴물로 나타나지 않을게 하는 기도를 중얼거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 탈장입니다. 오늘 수술하실 수 있으세요? "

" 네? "

" 전혀 모르셨나요? "

아이의 고환을 보자마자 선생님은 수술 스케줄을 잡으셨다. 탈장이라니....

드물게 아기들의 고환이 늦게 성숙하는 과정에서 탈장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간 야뇨증이 있었냐고 물었으나 그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하지만 탈장 사실도 모른 체 아이를 그렇게 구박을 했었다니 눈물이 핑 돌았다.

" 어머니, 수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탈한 장이 염증을 일으키거나 괴사 하면 급성으로 아이가 심한 복통이 겪었을 수도 있어요. 큰 일 없이 지금 발견한 게 다행이세요. "


다음날로 수술 스케줄을 잡고, 큰 아이는 수술 전 입원 수속을 밟았다. 이웃집 언니 J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기다릴 테니까 말이다. 그날 J언니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J언니는 두 번도 말하지 않고 평소 내가 둘째를 데리러 가는 시간에 딱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고 잘 이해되도록 설명해주었으며,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둘째 저녁까지 해먹이며 돌봐주었다. 남편에게는 언니에게 너무 미안하니 제시간에 퇴근해 달라고 부탁했다. 야근에 회식이 거듭되는 그였기에 미리 당부를 해두었다.


큰 아이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 엄마, 나 안 아픈데 왜 수술을 해야 해? "

" 응, 네 고추에 네 장이 들어가 있어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데."

장이 이해가 안 된 건지 , 수술이 무서워서인지 입원하기 싫고 집에 가고 싶다고만 했다. 아산 병원 지하 아케이드에 가보니 레고가 있었다.

" 내일 수술받고 저 레고 중에서 하나 사주께."

십만 원짜리를 집어 든다. 병원 지하라 엄청 비싸구나. 그래, 뭔들 어때. 지금만 모면하면 되지. 내일 퇴원하면서 꼭 사줘야 한다고 약속에 약속을 하고는 병실로 올라오던 때였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나 독일로 발령 났어. 12월 말쯤 주재원으로 나가야 해."

" 갑자기? "

오늘은 왜 이렇게 스펙터클한 날인 걸까? 어제의 나는 상상도 예측도 하지 못한 일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탈한 장, 괴사의 위험성이 있는 장을 가진 큰 아이를 데리고 독일에 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부터 시작해서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 엄마, 레고 꼭 사줘야 해!"

" 응응."

7천 원짜리 레고도 안 사주던 나는 얼이 빠져 아들에게 사주겠노라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날 레고가 디피 되어있던 자리, 그날 그 레고의 가격, 아케이드 안 푸드코트에서 나던 음식 냄새. 연결 고리라고는 한 개도 없는 그 장면에서 나는 예고편도 없이 주재원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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